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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김준의 섬 여행] 거친 파도와 바람에 기대어 산다 진도 조도
[김준의 섬 여행] 거친 파도와 바람에 기대어 산다 진도 조도
  • 김준 작가
  • 승인 2013.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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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스케치=진도] 배가 물살을 가르며 떠난다. 객이 떠나고 주인만 남은 섬에서 잠시 주인 행세를 하며 어슬렁거리다 다시 전망대에 올랐다. 150여 개 섬이 올망졸망 바다에 내려앉았다. 남쪽을 찾아가는 새들이 잠시 쉬는 모양이라던가, ‘새섬’이다. 지금의 ‘조도’라는 이름보다 훨씬 정겹다. 관매도, 나배도, 관사도, 소마도, 대마도…, 끝없이 이어진다. 센 바람을 헤치며 오는 길이 피곤했을까. 모두들 숨을 죽인 채 고요하다. 

조도 사람, 목포 수산업을 일으키다

‘새섬’ 무리 중심에 하조도가 있다. 다리가 놓여 상조도와 연결되어 있다. 진도항(구 팽목항)과 하조도 어류포를 잇는 여객선이 하루 수차례 오간다. 찾는 사람도 많다. 진도대교가 없을 때는 낙도 중의 낙도였다. 벽파진에서 진도읍을 거쳐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달려야 팽목항에 이르렀다. 일부러 큰마음을 먹고 나서야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진도항이 지금처럼 연안항으로서 큰 역할을 하기 전 조도 사람들의 생활권은 목포였다. 거리로는 진도가 가깝지만 목숨을 걸고 거친 물길을 두 번 건너는 것보다 물길과 바람을 타고 목포로 오가는 편이 나았다. 조기잡이로 일찍 어장에 눈을 뜬 사람들은 목포에 자리를 잡았다. 목포 수산업은 조도 사람이 장악했다. 지금도 목포수협 조합장이 되려면 조도 출신의 인맥이 아니면 어렵다고 할 정도다. 뱃길과 시장도 중요했지만 섬사람에게는 자식 교육이 가능한 도시라는 점이 중요했다. 또 바다에서 나는 미역과 조기를 담보로 객주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었다.

상·하조도는 물론 조도 인근 20여 개 유인도를 잇는 뱃길이 모두 목포로 연결되었다. 지금도 아침 일찍 목포를 출발해 20여 곳의 섬과 포구를 돌아 상조도 섬등포에 도착하는 여객선이 여전히 운항 중이다. 뭍으로 말하자면 완행열차쯤 될까. 사람만이 아니라 우편물도 마찬가지였다. 하조도에서 진도읍에 있는 자식에게 소포를 보내면 여객선 편으로 목포우체국을 거쳐 영산포우체국에 전달된다. 다시 진도읍우체국을 거쳐 자식들이 받았다. 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가 좋아야 나흘 걸렸다. 진도군에서 조도면에 공문을 보내도 마찬가지였다. 조도 관내 섬까지 도착하려면 일주일이 족히 걸렸다. 팽목항을 남해안권의 거점항으로 개발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되면서 이름도 ‘진도항’으로 바뀌었다(2013년 2월15일).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울돌목이 사돈 맺자고? 어림없지!
진도항에는 탈상바위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버지 탈상을 위해 섬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제가 바람과 파도로 항구에 주저앉았다. 뱃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배 오기를 기다리다 지쳐서 하는 수 없이 이 바위에 올라 조도를 향했다. 두루마기를 벗어 바위 위에 깔고 소주를 한 잔 따르고 망곡요배(望哭遙拜)로 탈상을 했다고 한다. 상제가 건너려 했던 진도항과 어류포 30리 길을 ‘장죽수도’라 부른다. 거칠고 빠른 물길 사이로 장죽도가 있다. 노를 젓거나 돛을 이용해 운항을 하던 시절에는 뱃길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장죽수도를 건너면 다시 울돌목이 가로막았다.

조도 사람들이 목포로 생활권을 정한 또 다른 이유다. 지금은 오가는 배가 많고 여름철이면 관매도 해수욕장과 하조도 신전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을 실어 나르는 배가 수시로 오간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으면 사람도 배도 꼼짝 못한다. 오죽하면 거칠기로 소문난 ‘울돌목’이 장죽수도에게 사돈 맺자고 하자 “당신네 물목도 물목이냐”며 거절했을까. 물길이 빠르다보니 좋은 점은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적조가 조도에는 얼씬도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조도 미역과 멸치가 유명한 것도, 조도 인근에서 잡힌 생선 육질이 좋은 것도, 다 조류 덕분이다.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무가 배보다 달콤하다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다 걸음을 멈췄다. 가게 주인이 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정말 배보다 달콤해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다듬던 무를 싹둑 잘라 내밀었다. 껍질을 잘라내고 먹기 좋게 다듬어주셨다. 한입 베어 물었다. 모두들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정말 달콤했다. 나주 배보다 달고 사각사각하다는 말이 허투루 하는 소리가 아닌 듯싶다. 

밭에서 그대로 겨울을 나는 조도 무는 겨울철 섬사람들의 소득원이다. 잘 갈무리하여 말린 조도 무말랭이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멋스러운 포장과 브랜드를 갖추진 못했지만 입소문으로 제법 알려졌다. 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더니 모두들 한 조각씩 집어 들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잊은 것일까. 

조도 특산품은 무만이 아니다. 멸치, 미역, 톳, 대파 그리고 최근에는 쑥이 더해졌다. 새 떼처럼 내려앉은 섬은 저마다 큰 몫을 하고 있다. 멸치는 죽항도와 청등도 인근 바다에서 낭장망으로 잡는다. 미역은 자연산 돌미역으로 독거도, 관매도, 맹골도 미역바위가 최고다. 친정어머니가 혼수품으로 준비한다는 진도곽이 이곳 미역이다. 미역국을 끓이면 사골이 물러도 조도 미역은 풀이 죽지 않는다. 부드러운 양식 미역에 길이 든 사람은 이 맛을 모른다. 몇 번 우려도 뽀얀 국물에 고소한 맛을 잃지 않는다.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대파와 쑥은 또 어떤가. 겨울철에 산자락은 물론 언덕진 밭과 심지어 논에도 쑥을 심었다. 그리고 덮개를 씌웠다. 겨울철 쑥으로 얻는 소득이 논밭 농사는 물론 바다 농사보다 나았다. 더구나 나이 들어서도 지을 수 있으니 이보다 효자가 어디 있는가. 조도는 묵힌 밭도 다시 일구고 있다. 해풍을 맞고 자란 쑥이 약효가 좋아 식용은 물론 한약방과 찜질방에 이르기까지 수요가 많다. 노부부는 상조도 동구마을에서 율목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1000평 남짓 쑥을 심어 5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조도에서 쌀농사를 지을 만한 곳은 하조도 창리와 육동리, 상조도 동구마을과 율목마을 간척 농지 정도다. 수지가 맞지 않는 벼농사는 언제라도 중단될 기세지만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대파, 쑥, 무를 심는 밭은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바다가 빤히 보이는 밭고랑에 아낙 열댓 명이 앉아 대파를 심고 있었다. 조도대교 밑에는 작은 배가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출렁였다.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낙도의 영화관 ‘등대’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등대로 향했다. 바다는 등대의 마지막 불빛을 삼키고 새색시 볼처럼 발그레하다. 해가 올라오자 등대는 신방처럼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등대지기(항로표지관리원)는 아직 기척이 없다. 정년을 앞둔 말년 고참의 여유를 맘껏 누리는 것일까. 철모르는 나그네만 섬 그늘에 몸을 의지하고 떠오르는 해를 지켜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배를 타고 온 관광객이 새벽을 가르며 등대전망대에 올랐다. 날씨가 좋으면 추자도는 물론 제주 한라산까지 보이는 명소다. 등대는 불만 밝히는 것이 아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엔 섬 주민들이 등대를 곧잘 방문했다. TV를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등대는 불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전제품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조도에서 한참을 가야 하는 맹골죽도 등대에도 1970년대 초반 TV가 들어왔다. 섬사람에게 당시 인기 드라마 <여로>, <파도>는 등대에서 상영하는 영화였다. 저녁을 일찌감치 끝낸 주민들은 초등학교에서 의자를 가지고 등대 마당으로 모였다.

이제 하조도등대도 도리산전망대와 함께 조도 여행의 중심이다. 1년이면 2만여 명이 찾고 있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동백숲이 우거진 곳을 지나 불쑥 나타난 등대를 발견하고 기뻐하던 그 옛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이제 공원도 만들어지고 버스가 문 앞까지 들어간다. 그래도 전봇대를 따라 걷던 ‘등대로 가는 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옛 모습을 그리워할 것이다.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해 섬을 떠도는 유도민(遊島民)이다. 갯마을을 찾아다니며 섬사람들과 어민들로부터 오래된 지혜와 미래를 찾고 있다. 최근 <바다맛 기행>을 새롭게 펴냈다.

INFO.
진도항(구 팽목항)에서 조도 창유항까지 하루 8회 운항 
시간 7:00(주말), 7:30(평일), 8:20, 9:50, 10:20, 12:00, 15:00, 17:00, 18:00 
운임 4200원(편도)
소요 시간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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