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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Best View] 나, 그곳으로 돌아갈래 강원도 태백
[Best View] 나, 그곳으로 돌아갈래 강원도 태백
  • 송수영 기자
  • 승인 2013.0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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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여행스케치=태백] 해발 1567m 태백산은 길이 평탄하여 약 2시간 정도에 오르는,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태백산을 단순히 이렇게만 여기는 여행객은 없다. 민족의 정기가 뻗어 내리는 백두대간의 중추인 때문이다.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태백은 볼거리가 그리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이곳은 눈을 사로잡는 풍광보다 그 의미가 더 큰 여행지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산을 뚫고 구문소로 흘러가는 황지천.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한반도의 시원,  태백
겉모습만 봐선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여느 지방의 작은 소도시. 한눈에 화려하진 않지만, 그러나 태백은 알면 알수록 참으로 남다른 고장이다. 

우선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낙동강의 시초 황지연못.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태백산 천제단. 많은 이들이 찾아 기도를 올린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태백(太白)이라 하면 크게 밝힌다는 뜻으로 우리말로 ‘한배달’, ‘한밝뫼’라 하였으니 과거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태백의 주산인 태백산이 계룡산과 더불어 남한에서 손에 꼽히는 영산(靈山)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과거 고지도를 보면 백두산과 태백산의 모양이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에서 매년 개천절마다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도 그런 의미의 연장선일 터. 매해 신년 벽두에 굳이 칼바람이 몰아치는 태백산에 올라 해돋이를 하는 인파가 넘쳐나는 것 역시 태백산의 특별한 정기를 의식한 때문이다. 

여기에 민족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강의 시원(始原)이 한 개도 아니고 무려 두 개나 태백에 모여 있다. 그 하나가 1300리, 남한에서 가장 길이가 긴 데다 산업화의 동맥이었던 낙동강이고, 다른 하나가 한반도 문화 발전의 터전인 한강이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한강의 원류 검룡소로 들어가는 길. 시원하게 뻗은 나무들이 맞아준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그뿐만 아니라 태백에선 이런 일이 현실이 된다. 삼수령을 경계로 떨어지는 빗물이 바람을 타고 살짝 동쪽으로 빗겨가면 오십천으로, 서쪽으로 가면 한강으로, 남쪽이라면 낙동강으로 흐른다. 다시 말해 바람이 순간적으로 바뀌면 불과 몇 cm의 차이로 빗물이 동해로 갈 수도, 서해로 갈 수도, 남해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시작의 터이자, 생명력 발원의 땅.

그러고 보니 이 산간의 작은 도시가 내 몸의 70%를 이루는 물의 원천이었던 게다. 금대봉 골 깊숙이, 불과 둘레 20여m 둘레의 검룡소라는 곳에 있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태백의 대표적인 겨울 풍경. 은백의 세상이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깊은 겨울, 늦은 겨울의 낭만 
650m의 고원 분지인 태백은 겨울이 연중 가장 길어 보통 10월 중하순부터 시작해서 4월 중하순까지 5~6개월이나 이어진다.  

다른 곳이 벌써 봄으로 눈을 돌릴 때 이곳만큼은 우직하게 여전히 겨울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시기 태백을 찾으면 눈 더미에 나이테가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린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쌓이고 또 쌓여 만들어놓은 그해 겨울의 연대기다. 이른 새벽 어슴푸레한 미명 아래 밖으로 나서면 매봉산, 함백산, 금대봉 등 골골이 파도치는 깊은 연봉 줄기 사이사이마다 습자지를 깔아놓은 듯 온통 하얗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등산 스틱과 아이젠으로 단단하게 채비하고 태백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모습.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태백산눈축제에 선보인 공룡 조각상.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그 산속의 눈은 도심에서 공해를 뒤집어쓴 질척질척한 천덕꾸러기 눈과는 아예 존재감이 달라, 홀릴 듯 매혹적이다. 그러므로 이 길을 걸을 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검룡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먼 설산에 시선을 빼앗긴 나는 그만 한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대자로 자빠졌다. 

태백의 겨울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명물은 자작나무 숲이다. 하얀 눈과 어우러진 자작나무의 파리한 수피는 그렇게나 낭만적일 수 없다. 숲속에 들어오자마자 다들 빅 스타를 만난 듯 카메라를 터뜨리기 바쁘지만, 실은 천천히 산책을 하며 마음에 오래오래 간직해 두어도 멋질 듯하다. 태백의 자작나무 숲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다. 그중 구와우마을 입구에 있는 초막고갈두식당 앞쪽에 있는 숲이 가볍게 즐기기에 편리하다. 여기에서 35번 국도를 계속 타고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쪽으로 올라가 삼수령 인근 상사미마을에서도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INFO. 초막고갈두식당
고등어·갈치·두부찜이 인기인 맛집이기도 하다.
위치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317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연탄.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깊은 주름 골골이 검은 탄가루가 깊이 파여 있다. 석탄재로 검어진 얼굴에 흰 눈동자가 희다 못해 서늘하다. 태백석탄박물관에 걸려 있는 옛 광부의 사진 앞에선 누구나 가난하고 질곡이 깊었던 지난날을 곱씹어 반추하게 된다. 

태백의 베테랑 문화해설사 신동일 씨의 목소리가 멀리서도 쩌렁쩌렁하게 들려온다. 

“말도 안 되는 TV 연속극을 두고 막장 드라마라 부르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아주 분통이 터집니다. 막장은 우리 아버지들이 가족들 배곯리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일했던 신성한 일터입니다. 이분들이 석탄가루를 하루 종일 마셔가면서 숙명처럼 탄을 캔 것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지요. 아침에 한번 들어가면 꼼짝없이 작업량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점심도 검은 재가 날리는 껌껌한 갱 안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까먹었습니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태백석탄박물관 입구. 실제 광산에서 사용하던 탑을 그대로 옮겨왔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상장동 남부벽화마을의 골목 풍경.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던 안도현 시인의 일갈이 태백에선 천 배 만 배로 무겁다. 마침 눈에 띈 진폐증에 걸린 광부의 폐 전시물이 눈앞에 있다. 처절하기보다 숭고하여 차마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1982년 9월 4일 <경향신문>엔 굵고 큼지막한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지난달 20일 상오 강원도 태백시 태백탄광에서 채탄 작업 중 지하수가 터져 매몰됐던 배대창 씨(41세), 손신관 씨(38세), 전재운 씨(47), 김기전 씨(23) 등 4명의 광부가 매몰된 지 만 14일 9시간 43분 만인 3일 하오 4시 43분쯤 극적으로 전원 구출됐다. (중략) 구조반원에 따르면 배 씨 등은 사고 당시 지하수가 터져 나와 갱 안이 매몰되자 막장 뒤쪽 40m 지점에 있는 대피소로 긴급 대피했다. 그동안 지하수와 갱목 껍질의 즙을 내먹고 서로를 격려하며 틀림없이 구조된다는 신념으로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다.”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3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탄광 개발로 강물이 으레 검은 줄 알고 살던 동네. 전국 무연탄 수요량의 75%를 캐냈다는 태백의 전설도 그나마 1990년대 중반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서서히 잊히고  있다. 

당시의 향토 사료나 생활용품 등 8282점의 소장물을 전시한 태백석탄박물관을 둘러보거나 과거 함태탄광 사택이었던 상장동 남부마을에 그려진 벽화를 통해 잊혀가는 광부들의 생활상을 잠시나마 짐작할 뿐이다.

INFO. 태백석탄박물관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700원
입장 시간  9:00~18:00(연중무휴, 입장은 17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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