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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눈꽃 여행] 설국을 달리는 순백의 겨울 낭만 환상선 눈꽃열차
[눈꽃 여행] 설국을 달리는 순백의 겨울 낭만 환상선 눈꽃열차
  • 조정원 기자
  • 승인 2013.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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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굽이굽이 산길 따라 하염없이 열차가 달린다. 소복이 눈 쌓인 창밖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온통 새하얗게 물들인다. 보고 또 봐도 자꾸만 눈이 가는 아름다운 설국, 나는 지금 환상선 눈꽃열차를 타고 있다.

눈꽃열차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매년 12~2월에 정동진, 대관령, 태백산, 덕유산, 화천, 춘천 등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지역을 당일, 무박 2일, 1박 2일의 일정으로 여행하는 관광 열차로, 오래전에 이미 전 좌석의 예약이 완료될 정도로 겨울 여행의 큰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중 오늘 여행을 떠나는 환상선 눈꽃열차는 서울역을 출발해 추전역, 승부역, 단양역을 거쳐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열차가 이동하는 코스를 선으로 이으면 둥근 고리처럼 보인다 하여 환상(環狀)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해발 855m,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전역.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겨울 눈꽃의 풍경이 너무나도 환상적이기 때문에 환상선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엇보다 차로 가기 힘든 오지 속의 간이역을 둘러보며 호젓하게 눈길을 거닐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총 550km에 이르는 거리로, 지나는 역만 120여 개, 터널은 무려 200여 개가 넘는단다. 이는 열차 승무원조차 다 외우지 못할 정도라고. 얼마나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가는지 알 만하다.


오전 8시 30분, 서울역 2층 대합실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기차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열차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420여 명의 관광객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눈 내리는 환상선~ 눈꽃열차에~.”

9시 4분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가 한적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자 한쪽에서 흥에 겨운 관광객이 ‘남행열차’를 개사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다른 열차였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건만 눈꽃열차에서는 다들 마음 좋게 포용하는 분위기. 창밖엔 소복이 눈이 쌓여 있고 기분 좋게 마음이 들떠 있으니 자연스럽게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다.

원주역을 거쳐 제천역을 지나자 기차는 점점 더 속력이 느려진다. 강원도 산맥을 따라 조금씩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10분 넘게 기다리면서 마주 오는 열차를 먼저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승무원 교대 시간이라며 열차가 멈추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창밖 풍경을 느긋하게 즐기며 만끽하는 모습이다. 

수많은 역과 터널을 지나 장장 4시간 30여 분을 달리자 잠시 후 추전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KTX 구간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정암터널을 지나면 바로 추전역이다. 4.5km에 이르는 깜깜한 터널을 지나자마자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추전역이 모습을 드러내니 그 풍경이 한층 더 드라마틱하다. 

추전역은 해발 85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이다. 싸리밭골 언덕에 위치하여 추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나라 기차역 중 평균기온이 가장 낮고 적설량도 가장 많은 곳이다. 사람 한 명 찾기 힘들었던 역이 1998년 환상선 눈꽃열차가 다니기 시작한 뒤로 줄곧 태백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눈꽃열차가 머무는 시간엔 역 인근에서 장터가 열리는데, 판매되는 품목은 곡물, 나물 등 대부분 동네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고 담근 청정 농산물이다. 가격은 아무리 비싸도 1만원을 넘기지 않으므로 부담이 없다. 팥죽, 어묵 등 따끈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간식거리도 입맛을 사로잡는다. 

추전역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사이로 눈 쌓인 철로 위에서 라면 파티를 열고 있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 관광객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컵라면을 먹기 위에 집에서부터 뜨거운 물을 가득 싸왔고, 내리자마자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후 바로 컵라면에 준비해온 물을 들이부었단다.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아주머니가 소주와 김치를 척척 꺼내며 농담을 던진다.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생전 처음이야. 궁금하면 500원.”

뜨거운 라면 국물과 시원한 소주까지 단번에 들이켠 아주머니들은 마지막 정리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순식간에 해내고 추전역 장터를 구경하러 바삐 걸음을 옮긴다.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눈꽃열차가 머무는 시간에만 반짝 열리는 승부역 눈꽃마을 장터.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오지 중의 오지, 눈꽃마을 승부역
추전역에서 1시간가량 더 달려 열차는 환상선 눈꽃열차의 하이라이트인 승부역에 정차한다.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 4km 구간은 기차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영동선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1962년부터 무려 19년 동안 승부역에서 역무원으로 일한 김찬빈 씨가 지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승부역은 / 하늘도 세 평이요 / 꽃밭도 세 평이나 / 영동의 심장이요 / 수송의 동맥이다.” 실제로 승부역은 사방이 가파른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어 그 안에 담긴 하늘이 아담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엔 꽁꽁 언 얼음 사이로 낙동강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 와중에도 발을 한번 담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물빛이 투명하고 맑다. 

승부역과 터널 사이에 놓인 좁다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영암선 개통 기념비도 볼 수 있다. 영암선은 영동선의 옛 이름으로, 영주에서 철암까지 87km 구간을 잇는 철로이다. 오지인 만큼 공사가 상당히 위험했다고 전해지는데, 1955년 당시 우리의 기술로만 건설한 철도라 그 의미가 남달랐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바로 영암선 개통 기념비이다.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얼음이 동동, 눈이 소복소복, 낙동강 따라 거닐기.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승부역에서 낙동강을 건너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눈꽃마을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반긴다. 이곳은 실제 마을은 아니다. 눈꽃열차가 머무는 시간에만 반짝 생기는 마을로, 장터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주황색 천막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데, 농산물을 판매하는 좌판과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좌판이 뒤섞여 있다. 마치 도심 속 포장마차를 찾은 듯한 기분. 육개장, 우거지국밥, 감자전, 메밀전, 동동주 등의 주전부리를 판매하는데, 손을 녹이고 입김을 불어가며 먹는 그 맛이 기가 막힌다.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승부역 눈길 따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정차하는 역마다 장터가 열려 지역 특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2013년 2월 사진 / 조정원 기자

눈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까지 즐기다 보면 승부역에서의 90분도 어느덧 금방 지나간다. 때마침 약하게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모래주머니를 찬 듯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그야말로 산과 계곡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만 같아 기분이 황홀하다.  

마지막 정차역은 단양역이다. 역사에 마련된 무대에선 노래자랑이 펼쳐지고, 그 앞으로는 단양 특산물 장터가 열린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칼국수. 뜨끈한 국물이 몸을 녹여주고, 배도 슬슬 불러오니 구성진 트로트 가락에 맞춰 여기저기에서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난다. 단양 군수님까지 나와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는다. 참고로 2월에는 코스가 바뀌어 단양역 대신 풍기역에 정차한다. 풍기역도 단양역과 마찬가지로 먹을거리 장터가 열린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입추의 여지가 없이 사람들로 빼곡한 서울역에 다시 발을 디디니 오늘 내가 만난 평화로운 설국이 마치 꿈속 풍경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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