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시장 여행] 광주 대인예술시장 "시장이 예술이네!"
[시장 여행] 광주 대인예술시장 "시장이 예술이네!"
  • 손수원 기자
  • 승인 2010.02.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밥상 그려진 벽.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 = 광주] 옛날 북적북적한 시장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손을 뻗으면 금방 잡힐 것 같은 광경이지만 세월의 흐름은 이 풍경을 단지 추억으로 만들어버렸다. 대신 광주의 한 시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시장과 예술이 만난, 조금은 생경하지만 그 모습마저도 정겹게만 보인다. 

광주에서 가장 ‘잘나가던’ 시장. 바로 이것이 대인시장의 옛 영광을 말해주는 말이다. 1959년 공설시장으로 시작된 대인시장은 예전에는 바로 앞에 광주역과 버스터미널이 있어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광주역과 터미널이 자리를 옮기고 대형 마트가 곳곳에 들어선 요즘, 사람들이 북적거릴 정오이지만 시장 안에서 분주한 것은 물건을 지키고 다듬는 상인들뿐이다. 

시장에 걸려진 피노키오. 사진 / 손수원 기자

이런 대인시장에 얼마 전부터 조그만 변화가 일어났다. 시장에 ‘예술’이 들어서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대인시장이 예술시장으로 거듭난 것은 2008년 광주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면서부터. 지역 미술가들이 모여 ‘복덕방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취지는 ‘삶으로 뛰어든 예술’이었다. 그렇게 시장의 빈 점포는 하나둘씩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바뀌었고 시장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바둑판 모양으로 이루어진 시장 안은 도무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그래도 눈썰미와 감을 믿고 한참을 걷는다. 20분을 쉬지 않고 걸어도 시장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시장의 규모가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다. 한 아주머니가 “시장 귀경 왔으면 여그저그 다 돌아볼 거이제 워째 5분마다 한 번씩 여그만 허벌나게 지나다닌다요?”라고 말하기 전까진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계속 같은 블록만 20분째 돌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역도선수 장미란 그림이 계속 보인다더니….

담 안에 담 넘는 소년이 그려져 있는 재미있는 풍경. 사진 / 손수원 기자

“쩌그 짱깡이 앞에 미나리라고 있는디, 거서 지도를 준게 거 함 가보제?”
짱깡이는 뭐고 미나리는 뭐고, 시장에 지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튼 아주머니가 알려주는 ‘쩌그서 왼짝, 담서 오른짝, 그담엔 왼짝…’을 외워 그대로 따라가니 ‘장깡’이란 간판이 붙은 가게가 눈에 띈다. 짱깡이가 사람 이름이 아니었구마잉….

하지만 ‘짱깡이’ 앞에 있다던 ‘미나리’는 가게는 있으나 사람은 없었다. 아주머니가 말한 미나리는 ‘미나里 상회’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곧 사람이 올까 하여 기다려보기로 한다. 

시장 주차장 벽엔 ‘광주의 아들’, ‘무등산 폭격기’로 불리던 선동렬 선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장깡 앞에 커다란 TV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리모컨을 다루는 사람이 대중없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번씩 채널을 돌리고, 보는 이가 없으면 끄기도 한다. 마치 마을회관 TV처럼 주인이 따로 없는 모양새다. 

“파는 거여. 29만원. 살텨? 안 사도 봐. 리모컨 여기 있응게.”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뜬금없이 리모컨을 나에게 쥐어주더니 가게를 비워두고 ‘마실’을 나가신다. 순식간에 내가 가게 주인이 된 모양새다. 

장깡이란 가게는 온갖 물건을 다 팔고 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의 면면이 재미있다. 요강이 1만5000원, ‘98프랑스 월드컵 공식 라이선스’ 마크를 단 팩소주가 5000원이다. 어릴 적 부엌에 놓고 쓰던 진짜 ‘곤로’는 단돈 1만5000원이다. 파는 물건 하나하나가 거의 ‘추억의 박물관’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한 점에 몇백 만원짜리 명품 도자기와 병풍 등도 함께 놓여져 있어 순간 식겁하고 등에 멘 가방이 도자기에 흠집이라도 낼까 매무새를 추스른다.

셔터를 여는 장미란 선수. 실제로는 셔터가 닫혀 있어야 그림을 볼 수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물건 팔면 다 존 일에 써. 하나 사.”
어느새 돌아온 주인아저씨가 “이 물건들이 다 기증 받거나 직접 구해온 것들”이라며 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물건값을 치를 때도 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대신 ‘불우이웃돕기함’에 직접 넣는다. 

“저그 앞 가게 주인 아짐씨랑 우리도 존 일 함 해보자고 혀서 같이 맹글었어. 시장에 사는 예술가 선상들이 물건을 맡기기도 허고, 상인들이 자기 집에서 하나쓱 가져오기도 허고…. 오다가다 손님들이 물건을 갖다주기도 혀. 나는 수집과장 겸 판매과장이고 저 아짐씨가 장깡 회장여.”

‘미나里 상회’에 마련된 건의함에는 누구나 소중한 의견을 넣어둘 수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가게의 과장자리를 두 개나 꿰찬 정안식 씨는 “나가 뭣 좀 보여줄랑게 이리 와봐”라며 가게 한 켠에 있던 노트들을 보여준다. 하나하나 손으로 쓴 노트에는 물건을 기증한 이의 이름과 날짜가 꼼꼼하게 적혀 있고, 또다른 노트에는 이제까지 수익금을 기부한 내역까지 빼곡하게 적혀져 있다. 

이렇게 장안식 씨가 ‘젊은 아짐씨’ 김선옥 씨와 장깡을 차리게 된 것도 예술시장이 만들어진 것과 시기를 같이한다. “젊은 예술가 양반들이 그리 열심히 우리 시장을 바꾸려고 노력허는디 우리라고 가만있을 수 있어?”

페트병, 막걸리병 할 것 없이 대인시장에선 예술작품이 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이렇게 시장과 함께 변화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화가가 된 상인’으로 유명한 곽일님 씨가 바로 그녀다. 
“머덜라고 나를 이리키 찾아쌀까? 넘헌티 보여주기 겁나게 부끄러운 그림인디….”
이날도 ‘함평오리닭’이란 간판을 내건 가게에서 닭을 손질하고 있던 곽씨는 뜬금없이 카메라를 들고 불쑥 찾아온 손님을 맞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가게 안에는 온통 곽씨가 그린 그림이 붙어 있다. 그녀의 그림은 화가들처럼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화가들보다 더 잘 그린 그림’이기도 하다. 그녀가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은 다름 아닌 닭이다. 
“시집옴서부터 나주에서 닭 농장을 했었제. 여그 시장으로 와서 닭 장사 한 것도 벌써 15년이 됐응게, 닭이 젤로 좋지 뭐.”

대인시장 안 ‘추억의 박물관’ 역할을 하는 장깡. 장깡은 장독대의 전라도 사투리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삶으로 뛰어든 예술’을 곽씨보다 더 잘 표현할 사람이 있을까? 이웃 가게의 흰둥이 그림, 저녁 찬거리로 사온 꽃게 그림 등 그녀의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누구나 웃음 지으며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나가 예술을 알긋어? 그냥 나가 좋아서 그리기 시작헌 건디 인자는 그림 안그리고는 심심혀서 몬 살긋어.”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세상 구경하는 재미도 더 쏠쏠해졌다는 그녀의 말처럼 사람들이 대인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그에 못지않게 변하고 있다. 이웃 장깡 판매과장님도 흥을 잔뜩 실어 “짚신이 1000원! 오강이 1만5000원~ 아 싸다 싸!”를 외치고는 이내 또 마실을 가 버리신다. 뭣이 그리 재미난 게 많아서 저렇게 자주 마실을 나가시는지 나도 따라 시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