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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섬 기행] 야생화의 섬, 안산 풍도
[섬 기행] 야생화의 섬, 안산 풍도
  • 손수원 기자
  • 승인 2010.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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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풍도에서 자라나는 꽃과 풀.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 = 안산] 풍도의 봄은 빨리 왔고, 일찍 졌다. 인천에서 2시간을 달려 풍도에 도착했을 때, 봄은 한바탕 꽃잔치를 벌이고 난 후였다. 하지만 애초에 때가 늦었다고 걱정하진 않았다. 무엇이든지 풍요롭다 해서 풍도(豊島)라고 부르는 섬이 아니던가. 그 풍요로움을 찾아 떠난 조금은 때늦은 섬 여행 이야기.  

“꽃은 어디로 가면 볼 수 있어요?”
아무리 꽃만 보러 온 건 아니라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무언가 사진이라도 남겨야 할 터,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섬에 들어오는 날부터 하늘에선 차가운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가만히 서 있어도 오금이 찌릿찌릿 안달이 나 죽겠다. 

“봄 야생화는 한 5일 전에 다 끝났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오늘 비가 와서 봄꽃은 오늘이 끝이겠구먼 그려….”
꿀렁대는 배를 타고 온 터라 속도 울렁거리는데, 마을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마음마저 울컥해진다. 

하루 한 번,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제3왕경호. 사진 / 손수원 기자
하루 한 번,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제3왕경호. 사진 / 손수원 기자

“이따 비 그치면 산에 올라가 봐. 그늘 따라 잘 찾아보면 아직 질긴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비까지 질질 맞고 서 있는 젊은이가 안쓰러운지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면 꽃이 있는지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어가며 설명해주었고, 가는 길엔 민박집도 알려주었다. 부디 비가 그치기 전까지 봄비에 꽃이 녹아 없어지지 않기를….

풍도에는 열댓 곳의 민박집이 있다. 풍도에 사는 주민이라 봤자 50여 가구, 100여 명에 불과하니 1/5이 민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풍도엔 재미있는(혹은 기구한) 이야기가 있는데, 불과 5~6년 전만 해도 풍도 주민들은 겨울이면 바다 건너 도리도라는 섬으로 가 계절을 나고 다시 풍도로 돌아오곤 했단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녁 7시에 불이 켜지고 10시면 불이 다 꺼졌었지. 전기가 세 시간밖에 안 들어와. 그러니 겨울을 어떻게 나긋어. 할 수 없이 도리도로 가서 조개며 낙지를 캐서 돈을 벌었지. 거기서 한 철 벌면 돌아와서 일 년은 거뜬했어.”
마을 뒷산의 밭에서 긴 낫을 들고 열심히 두릅을 따고 있는 ‘하나네 민박’ 이경애 할머니는 풍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수십 년 동안 섬을 오가며 생활하던 할머니도 24시간 전기가 들어오고 도리포가 화성시로 편입되어 더 이상 왕래를 할 수 없게 된 때부터는 풍도에서 민박집을 하며, 산에 두릅이며 둥굴레며 산나물과 약초를 심어 기르며 살고 있단다. 

이경애 할머니. 사진 / 손수원 기자

“나중에 도시 사는 우리 자식들이 여기에 와서 산다고 하믄 그때 묵고사는 데 지장 없으라고 미리 씨 뿌려두는 거지 별거 있어?”
풍도도 옛날에는 100가구도 넘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살던 섬이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자식 교육 때문에 육지로 떠나면서 지금은 여느 시골이나 다름없이 노인들이 더 많은 섬이 되었다. 그래도 요즘은 풍도가 야생화 섬으로 알려지면서 외지인들도 많이 찾아와, 마을에도 활력이 생겼다고 한다. 

할머니의 두릅밭에서 나와 산을 더 오른다. 풍도에서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섬의 터줏대감인 500년 된 은행나무를 지나 오른쪽의 오솔길부터 시작된다. 은행나무 옆에 빨간 천으로 간이화장실을 만들어놓은 모습이 재미있다. 과연 봄에 사람이 많이 오긴 했나보다. 

가파른 산길을 조금 오르니 다행히도 아직 잎을 떨어뜨리지 않은 꽃들이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록 변산바람꽃이나 풍도바람꽃 등 풍도를 찾는 이들에게 환영받는 꽃들은 모조리 졌지만, 다행히 풍도에서 가장 많이 자란다는 복수초와 현호색 등은 아직도 기세가 당당하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민들레도 풍도를 빛나게 하는 꽃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얼마 전까지는 산허리에서 한데 모여 꽃대궐을 이루었을 터인데, 지금은 듬성듬성 발길 아래에 뜬금없이 피어 있기도 하고, 나무 아래에 외로이 피어 있다. 떠나지 못한 자의 이유, 분명히 있을 게다. 이들은 아마도 늦게나마 섬을 찾은 이들을 위해 남은 힘을 다해 외로이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벼락을 맞은 고목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고 이런저런 넝쿨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원시림이다. 이 원시림과 어우러져 피었을 자연의 야생화 군락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쉬이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럴수록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하는 생각이 울컥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풍도도 예전 같지 않단다. 풍도는 아직까지 탐방로를 따로 만들지 않아 산에 오르는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 최고 붐빌 때는 하루에 200~300명의 탐방객들이 작은 산을 헤집고 다니니, 아무리 조심한다 한들 자연 꽃밭이 온전할 리 만무하다. 게다가 일부 양심 없는 사람들은 꽃을 다발로 꺾어 배경 좋은 곳에 다시 묻고 사진을 찍거나, 아예 포기째 뽑아 집으로 가져가는 이도 있다고 하니 풍도의 야생화 밭도 이제 지칠 대로 지친 기색이다. 

토종 봄 야생화인 노루귀는 털이 돋은 잎이 나오는 모습이 노루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꽃이 대부분 져버린 맨땅엔 사람들의 등산화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필시 얼마 전까진 저 자리에서 물오른 야생화가 봄빛을 뽐내고 있었을 게다. 그런 발자국이 한두 개가 아니다. 곳곳에 널브러진 사탕 봉지와 생수병, 일회용 스티로폼 도시락 상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과 풍도를 아끼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야생화밭을 격년제로 개방하거나 탐방로를 따로 마련해 야생화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자는 의견도 커지고 있단다. 우리는 이렇게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골칫덩이였던가….

꽃에 알록달록 모양이 들어 있어 ‘까치무릇’이라고도 부르는 산자고. 사진 / 손수원 기자

소위 ‘풍도 야생화 코스’라는 곳을 다 걷고 나니 다시 날이 흐려진다. 이제 다시 비가 내리면 내일은 봄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던 야생화들은 이내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 야생화가 가장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풍도의 여름과 가을 야생화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야생화를 제대로 보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여름이나 가을에 풍도를 찾는다 하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마을 골목골목을 누비는 기분이 마냥 즐겁다. 요즘의 여느 곳처럼 흙보다는 시멘트와 슬레이트가 더 많이 들어간 집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마당 한켠엔 커다란 가마솥이 놓여 있고, 수돗가에는 구멍이 송송 뚫린 돌로 만든 맷돌이 쓰임새를 잃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다. 

현호색을 풍도에서는 ‘땅구슬꽃’이라고 부른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미니 슈퍼’란 간판이 붙은 작은 구멍가게엔 주인 대신 벨이 가게를 지킨다. 물건을 사기 위해 벨을 누르고 잠시 동안 기다리면 옆집에 사는 주인이 나온단다. 구멍가게 옆엔 아담한 풍도분교가 있다. 작년까진 세 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올해 한 명이 졸업해서 이제는 전교생이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단다. 학교 앞 놀이터에 놀이기구가 대여섯 개, 농구대만 해도 두 개이니 아이들보다 놀이기구가 더 많은 셈이다. 

마을이라고 해봐야 눈에 보이는 것이 끝이어서 고작 10여 분을 걸었을 뿐인데 벌써 동네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오늘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저버려 섬을 둘러보는 것은 내일로 미루고, 숙소인 ‘기동이네 민박’으로 돌아온다. 

풍도에는 식당이 따로 없다. 대신 민박집에서 가정식으로 밥을 차려준다. 가격은 여느 곳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질은 감히 비교를 금한다. 온종일 둥굴레차로만 버틴지라 돌이라도 씹어 먹을 기세로 기동 엄마의 밥상을 받았을 때, 감격 그 자체였다.

풍도에서 재배하는 둥굴레도 꽃을 피웠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풍도에서 가장 많이 피는 복수초. 사진 / 손수원 기자

“기동이 아빠가 직접 잡아온 꽃게로 끓인 탕이에요. 요즘 꽃게가 제철이라 알이 꽉꽉 찼어요. 다른 것들도 기동이 아빠가 잡아온 거고 다 여기서 난 것이니 많이 잡수세요.”
알이 가득 찬 꽃게 한 마리가 작은 냄비에 퐁당 들어가 있다. 크기가 작은 게들은 매콤한 양념게장으로 버무려져 입맛을 돋운다. 집 앞마당에서 바닷바람에 말린 꼬들꼬들한 굴비는 또 어떻고…. 꽃게탕에 밥 한 그릇, 매콤한 양념게장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하여, 금세 고봉밥 두 그릇을 비워버렸다. 게다가 티백으로 우려낸 줄 알았던 둥굴레차는 웬걸, 밭에서 둥굴레를 캐서 말린 후 일일이 볶아 끓인 것이란다. 

풍도의 민박집에서는 대부분 이런 식의 백반이 나온다. 배가 자주 다니지 않는 곳이다 보니 육지에서 사가지고 오는 것은 쌀 정도가 다이고, 해산물이나 나물, 약초 등은 지천에 널렸으니 육지 사람들은 귀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여기서는 흔하게 먹는다.

풍도 전경. 풍도 앞바다는 뱃길이 있어 이런저런 배들이 수시로 지나다닌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마주앉아 소일거리하는 주민들. 사진 / 손수원 기자

다음날 마을에서 왼쪽 해안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제법 그럴듯한 나무데크가 깔려 있어 바다를 끼고 산책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다. 작은 정자가 있는 곳엔 멋진 갯바위가 있는데,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다. 풍도에서 상춘객들이 떠나면 이번엔 강태공들이 섬을 찾는다. 

섬 한 바퀴를 도는 데는 2~3시간이면 족하다. 바다와 갯바위들을 제외하면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지만 운동 삼아 걸어봐도 좋을 듯하다.

배를 타러 선착장에 이르니 기동이네 민박집의 ‘간판스타’ 기동이가 배를 타고 들어왔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모자간에 사진 한 장 찍자고 하니 꼭 붙어서는 일명 ‘돼지 뽀뽀’ 포즈를 취해준다. 요즘 애들 치고는 참 순박하고 착한 인상이다.

풍도는 약초가 많아 아낙들이 수시로 행낭을 메고 산을 오른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기동이네 민박’의 간판스타 기동이와 어머니. 사진 / 손수원 기자
‘기동이네 민박’의 간판스타 기동이와 어머니. 사진 / 손수원 기자

풍도를 떠나는 길, 마을의 터줏대감인 은행나무의 가지가 인사를 하듯 바람에 흔들린다. 물론 너무 빨리 섬을 떠나는 아쉬운 마음 때문이겠지만, 웬일인지 안개에 가려 섬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그 은행나무의 흔들리는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바람이 거세 풍도(風島)인 줄 알았던 섬이, 모든 것이 풍요로워 풍도(豊島)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 작은 섬은 꽃도, 인정도, 맛있는 먹을거리도, 볼거리도, 갖가지 사연도 풍요로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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