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거제도] 빠져들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도 그저 보고 지나치면 감흥이 덜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몸소 체험하면 몇 배는 더 즐겁다. 파닥파닥 은빛 멸치를 잡아 올리고 통발 속의 꽃게를 건져 올리면서, 거제도의 눈부신 풍경 속으로 흠뻑 빠져든 유쾌한 체험여행.
해안선 따라 낭만 드라이브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는 푸른 비단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운 바다와 올망졸망한 섬들로 곳곳에 환상의 비경을 품고 있다. 이토록 멋진 풍경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즐기려면 섬의 해안선을 에두르는 드라이브 길을 따라 달리는 것이 제격이다.
거제도에서 가장 유명한 ‘환상의 드라이브 길’로는 여차-홍포간 해안도로가 손꼽힌다. 거제도의 남쪽마을 여차와 홍포를 잇는 3.5km의 비포장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풍광이 빼어나다. 길옆으로 징검다리처럼 늘어선 다포도와 매몰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벼랑 아래 여차몽돌해변에서는 알알이 빛나는 몽돌이 색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또 다른 드라이브 코스로는 거제도의 ‘입구’부터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1018번 지방도가 있다. 사실 여차-홍포간 해안도로도 이 1018번 지방도의 일부 구간이다. 거제대교를 지나자마자 바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통영과 한산도 등 다도해가 빚어내는 절경을 감상하며 달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고 달리면 거제도 남서쪽의 숨은 드라이브 코스를 하나 더 만날 수 있다. 이름하여 ‘쌍근 해안길’. 이 길 역시 여차-홍포 해안도로처럼 바다에 바짝 붙어 산자락을 타고 고도를 달리는 길이다.
멸치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점점이 흩어졌다 겹쳐지는 섬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며 쌍근 해안길을 달린 끝에 쌍근마을에 닿았다. 거제도의 수봉인 가라산이 두 팔 벌려 마을을 에워싸고 있고,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해안선을 따라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이 아늑하다.
지도로 보아도 쌍근마을은 육지 쪽으로 둥그렇게 파여 있다. 이와 같은 지형 때문에 마을 앞바다에서 조류가 만나고, 물살도 거센 편이다. 덕분에 거친 파도를 헤치며 스스로 살을 탄탄하게 만든 해산물들이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특히 멸치와 멍게가 많이 잡히고 맛도 좋다.
여담이지만 지난 추석 때 거제도 멸치를 한 상자를 선물 받았는데 질이나 맛이 너무나도 훌륭했다. 국물 맛이 깊고, 볶아도 식감이 쫀쫀했다. 양이 넉넉해서 주변 사람에게도 좀 나누어 주었는데 감사 인사를 여러 차례 받았을 정도였다. 그 맛 좋다는 거제도 멸치도 분명 이 바다에서 살았을 게다. 오늘 그 멸치를 잡으러 직접 바다로 가볼 참이다.
멸치를 잡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쌍근에서는 정치망 어업법을 쓰고 있다. 바다의 중앙을 가르는 긴 그물을 거스르지 못한 멸치들이 그물 끝의 망에 갇히면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멸치잡이 어선이 포구를 박차고 바다로 힘차게 나간다. 출렁이는 파도에 장단을 맞추듯 작은 배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심해까지 나가나 싶어 뱃멀미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근해에서 속도를 줄인다. 어망에 쳐놓은 그물을 돌돌 말아 중심으로 점차 모아 들어간 다음에 온 힘을 다해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어기여차” 어부들의 우렁찬 함성이 멸치잡이의 시작을 알린다. 나도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함께 그물을 끌어 올린다. 그런데 어째 한참을 잡아당겨도 멸치 떼가 보이지 않는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는데, 아무래도 나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가 보다. 그때부터 슬쩍 힘을 빼고는 어부들에게 그물을 맡긴다. 쇳덩이처럼 무거운 그물을 우직하게 끌어올리는 어부들의 모습이 든든하다.
기나긴 그물질 끝에 멸치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점점 늘어나는 멸치 떼들에 “와~” 하는 탄성이 절로 터진다. 어느새 그물 위에서 멸치들의 은빛 비늘이 떼를 지어 파닥인다. 햇빛에 반사된 바다 물결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한 반짝임으로 눈이 부실 정도다.
“아따 오늘 취재 와서 그카는지 메루치가 솔차이 마이 들어왔네. 야들도 카메라를 아는갑다. 만선이네 만선이야!”
만선의 공을 우리에게 돌리니 슬쩍 꾀를 부렸던 게 부끄럽다. 하지만 어부들의 웃음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푸짐한 멸치만큼이나 푸짐해진 마음으로 뭍으로 향한다. 바로 2차 작업을 위해 건조장으로 직행. 제각각 몸부림을 치던 멸치들이 모락모락 김을 뿜는 찜통 속에 들어갔다 나오자 숨이 푹 죽었다. 모락모락 수증기와 구수한 멸치 냄새가 온 마을에 진동한다. 이렇게 찌고 말린 멸치는 마산, 통용 수협위판장으로 보내지는데, 그곳에서도 통통하고 쫀쫀한 ‘쌍근 멸치’는 1등급 멸치로 인정을 받는다.
멸치를 찌고 말리는 일을 거드는데, 함께 일하던 아주머니께서 멸치 한 마리를 입에 쏙 넣어주신다. 지금 막 그물을 탈출한 신선도 100%의 멸치가 입 안에서 살캉살캉 씹힌다. 하지만 이것은 맛보기일 뿐, 건조장 한쪽에서 멸치를 넣어 끓인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통발 체험 vs 그물 체험
작업을 끝낸 어부들 틈에서 개운한 ‘멸치’ 된장국 한 사발을 들이켜고는 다시 바다로 나간다. 창원의 한 회사에서 찾아온 단체 체험객들이 벌써 배 위에서 대기 중이다.
체험객을 태운 똑딱선이 바다로 나가고, 이내 인근 바다에서 통발을 거두는 체험이 시작되었다. 먹이를 넣어둔 통발을 줄줄이 걷어 올리자 낙지, 꼴뚜기, 꽃게들이 그 속에 들어차 있다. 배를 한 채 빌려서 거둘 수 있는 통발이 무려 50~100개나 되니 통발 안의 해산물 양으로 봐서는 체험객들은 오늘 본전은 뽑은 것 같다.
통발 체험이 끝나자 후릿그물 체험장으로 이동한다. 통발 체험은 배를 나누어서 탔지만, 후릿그물은 20~30명의 체험객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배가 바다 위에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면서 그물을 풀어놓으면, 뭍에서 그물을 양쪽으로 잡아당겨 물고기를 건지는 방식이다. 그 포물선의 크기만큼이나 무게가 만만치 않을 터. 체험객들이 그물을 잡고 ‘으샤으샤’ ‘아자자자’ 육중한 무게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지금 그물 당겨지는 것 맞나?” “아따, 이거 너무 힘드네. 몸살 나는 거 아이가?”
여기저기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는 동안, 포물선의 크기가 점점 줄어든다. 이윽고 양쪽에서 잡아당긴 그물이 뭍으로 빠져나왔다.
그 큰 그물로 바다를 쓸었으니 그물 안에는 고기뿐 아니라 온갖 해산물이 다 들어 있다. 거의 대부분이 미역인데 그 사이에서 파닥이는 고기들을 빼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나씩 건져 올릴 때마다 모두가 “핫꽁치다!” “돔이다!” 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투망이 두둑하게 차오를수록 함께한 이들 사이의 정도 돈독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