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Special 樂캉스] 평택 천연염색마을 명주에 꽃빛 피고, 삼베에 쪽빛 피고… 
[Special 樂캉스] 평택 천연염색마을 명주에 꽃빛 피고, 삼베에 쪽빛 피고… 
  • 최혜진 기자
  • 승인 2010.07.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천연염색마을 홍화밭.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평택] 이제껏 경험했던 염색 체험과 비교를 불허한다. 꽃밭에 흐드러진 홍화를 따서 새하얀 명주에 붉은 물을 들이고, 푸른 쪽잎을 따다 삼베를 쪽빛으로 물들이는 체험이라니! 자연의 색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천연염색을 ‘풀코스’로 체험할 수 있는 이곳은 평택 ‘천연염색마을’이다. 

방학이 시작되면 전국의 체험마을은 갖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그중에 빠지지 않는 단골 아이템이 바로 ‘천연염색’이다. 보통은 양파 껍질을 끓인 물로 손수건을 염색한 후에 햇빛에 말리는 과정을 함께 한다. 염료가 담긴 통에 손을 넣어 조물조물 주무르면 손수건에 노란색 물이 드는 것이나, 고무줄로 묶어둔 부분이 기하학적인 무늬로 변신하는 것을 체험하면서 아이들은 염색하는 재미에 푹 빠져버린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유학순 대표. 사진 / 최혜진 기자

그런데 평택 염색체험장 ‘천연염색마을’은 이러한 보편적인 염색 체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유학순 대표가 3,300㎡  땅에 쪽, 홍화, 메리골드 등 염료를 직접 재배하는 덕분에 천연염색의 ‘풀코스’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쪽 염색을 하려면 밭에 나가 쪽잎을 뜯고, 붉은 물을 들이려면 홍화를 직접 따서 염색을 하는 식이다. 그리하여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은 물론이고, 곱고 선명한 자연 그대로의 색을 얻으려는 ‘에코 주부’들까지 알음알음 찾아온다. 

“와, 꽃 색깔 한번 참 곱다!” 
오늘 체험을 위해 마을을 찾은 주부들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지금 눈앞에 유채처럼 흐드러진 꽃이 바로 ‘홍화’란다. 사방이 논밭으로 짜인 시골마을에 이처럼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더구나 모두 염색 재료로 사용할 꽃들이라니 마음껏 따도 좋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염료를 우린 물에 천을 넣어 조물조물 주무르는 천연염색의 마지막 단계. 사진 / 최혜진 기자

“꽃잎을 잡고 힘을 주어 ‘톡’ 하고 뜯으세요.” 
홍화를 가까이 들여다보니 노란 꽃잎 끝에 붉은빛이 감돈다. 유학순 대표가 일러준 대로 붉은빛이 진한 홍화만을 선별해서 채반에 담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지금 이 꽃들이 더욱 아름다운 색으로 피어날 것이란 기대감에 마음이 바빠진다. 

“아이들과 체험할 땐 꼭 이 말을 해줍니다. 평소에 이렇게 꽃을 뜯으면 절대 안 되지만, 지금은 염색 체험을 하는 것이라 괜찮다고 말이죠. 그러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꽃을 뜯느라 난리가 납니다. 아무래도 평소에 못하게 하는 것이라 아이들이 더욱 신이 나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흐드러진 꽃을 보는 기분도 즐거운데, 손수 꽃을 뜯는 것도 평소엔 할 수 없는 일이라 호사스럽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딴 꽃잎을 절구에 넣고 푹푹 찧어서 물에 담가 놓으면 수용성인 노란 색소는 물에 사르르 녹아 없어지고 붉은 색소만 남는다는 것. 이것을 햇빛에 말려 떡처럼 빚어놓은 것을 바로 ‘홍떡’이라 부른다. 예부터 붉은색을 낼 땐 이 ‘홍떡’을 염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메리골드 꽃잎을 똑 뜯어서 노란 물을 들여볼까? 사진 / 최혜진 기자

“이 홍화 염색이 쪽 염색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천연염색이랍니다. 화학 염료가 없었던 시절엔 궁궐 안에 홍염장과 청염장을 따로 두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민족을 ‘백의 민족’이라 부르긴 했지만, 아름다운 색을 추구하는 갈망은 꾸준했던 것 같다. 서민들이야 어쩔 도리 없이 새하얀 삼베옷을 입었다지만, 귀족들은 선명한 색의 옷을 입기 위해 귀한 염료를 구해 고되고 힘든 염색 과정을 감수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의복의 색을 제한했는데, 수차례 내려진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몰래 원하는 색을 해 입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단다. 최근까지 ‘붉은 내복’이 사랑을 받은 것도 이러한 우리 민족의 ‘색에 대한 갈증’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분석도 있다.  

‘홍떡’을 망에 넣어 물속에서 조물조물 주무르니 붉은 색소가 서서히 우러난다. 이제 염료가 담긴 큼지막한 ‘다라이’ 안에 새하얀 명주를 둘둘 풀어 꾹꾹 눌러준다. 미리 옷감을 준비해온 주부들이 자연에서 얻은 아름다운 분홍빛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처음부터 선명한 색을 내기는 어려우므로 보다 진한 색을 원하면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색깔 한번 참 곱다.” 체험을 하는 중에도 아름다운 색에 취하게 된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사진 / 최혜진 기자
자연의 빛깔을 고스란히 담은 멋진 작품이 햇볕과 바람에 선명하게 말라간다.사진 / 최혜진 기자

“아이들과 함께 체험을 하다보면 재미있는 질문이 쏟아져 나오죠. 꽃으로 머리카락도 염색할 수 있는지 묻기도 하고, 염료가 옷에 튀어서 물이 들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뒷걸음질치기도 하고요.” 
아이들의 상상력이 놀랍기만 한데, 유 대표는 이런 모습을 보며 다양한 염색 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염색 체험을 하나만 살짝 공개하자면, 쪽의 염료를 물감처럼 되직하게 만들어 얼굴에 묻혀가며 ‘추장 놀이’를 하는 것이다. 자연의 것을 고스란히 담은 재료이니 얼굴에 묻어도 전혀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아토피 피부염에 좋다고 한다. 

염료에 담근 갖가지 옷감이 모두 선명한 색으로 물들었다. 이렇게 천연 원료로 염색된 옷감은 좀이 먹지 않고 항균성도 강하다니 아름다움과 실용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명주의 물기를 탁탁 털고 햇빛에 널어 말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이제껏 힘을 쏟은 작품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며 선명한 색깔을 뽐낸다. 자연의 빛깔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