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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푸른 바다에 피어난 꽃섬, 가파도를 걷다
푸른 바다에 피어난 꽃섬, 가파도를 걷다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2.08.16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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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꽃 물결이 일렁이는 가파도의 풍경.
눈길 닿는 곳마다 꽃들이 흐드러져 있는 가파도의 풍경.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제주]자박자박 섬을 걷는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들이 흐드러져 있고 푸른 파도가 출렁인다. 제주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코스모스와 샛노란 해바라기가 가득한 가파도에 다녀왔다. 옅게 드리워진 구름과 슬슬 불어오는 바람이 섬 여행을 나서기에 적당한 날씨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은 오히려 햇볕이 너무 뜨겁다. 바람은 또 어떤가. 없으면 후덥지근하고 세면 다니기 힘들다. 오랜만에 나선 길인데 우려했 던 것과 달리 좋은 날씨를 만나 행운을 잡은 듯 마음이 들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가파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가파도.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청보리밭이 알록달록 꽃밭으로 

가파도는 제주도에 딸린 부속 섬 가운데 하나다. 전체 면적이 0.9㎢ 남짓한 작은 섬으로 120여 가 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모슬포 운진항에 서 여객선을 타고 15분 정도면 닿는데 여기서 5분 만 더 가면 국토 최남단 섬인 마라도다. 마라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가파도가 ‘대한민국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가파도는 봄철에 열리는 청보리 축제가 유 명하다. 하루에 천 여 명씩 섬을 찾던 발걸음이 수확이 끝나는 5월 말부터 뜸해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올해는 여름이 다 가도록 사람들의 발길 이 끊이지 않는다. 섬에 도착해 걷다 보니 그 이 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보리를 베어낸 후 비어 있어야 할 밭에 오렌지빛 코스모스와 노란 해바라기가 가득했다.

이제껏 가파도에서 청보리 사잇 길만 걸었지 꽃길은 처음이라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바람이 한 번씩 불어올 때마다 샛노란 꽃 물결이 일렁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화려한 꽃 들로 뒤덮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혹시 바닷속 용궁 정원에 온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해봤더랬다. 꽃밭에 파묻힌 사람들의 즐거운 환호 성에 덩달아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샛노란 해바라기가 활짝 피었다.
샛노란 해바라기가 활짝 피었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소망전망대.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소망전망대.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섬에서 가장 높은 소망전망대 

가파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가오리처럼 넓적하게 생겼다. 더구나 높고 낮은 곳이 없어 어 디나 평평하게 보인다. 섬에서 가장 높은 지형도 해발 20.5m 밖에 되지 않는다. 낮은 언덕 위에 전 망대를 설치했는데 그다지 높지 않은 데도 불구하 고 온 섬이 알록달록 카펫을 깔아 놓은 듯 훤히 내 려다보인다. 

소망전망대라는 어여쁜 이름이 붙은 이곳도 꽃물 결이 넘실거린다. 청보리 시즌을 제외하고 인적이 드물었던 섬이 이처럼 북적이게 된 데는 여러 사 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여객선사와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수확이 끝난 빈터에 꽃밭을 가꿔왔는데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금은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많은 여행자들이 찾고 있다. 청보 리가 진 후 피어나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꽃은 가을까지 이어진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 는, 섬 여행 버킷리스트 1순위에 올려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다. 

오렌지빛 꽃물결이 일렁이는 섬.
오렌지빛 꽃물결이 일렁이는 섬.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것이 꽃밭만은 아니다. 선 착장 부근에는 나지막한 지붕을 맞댄 옛집들이 올 망졸망 모여 있고, 푸른 바다 너머로 한라산과 산 방산, 송악산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리 보면 한라산은 어머니의 품이요, 나란하게 선 산방 산과 송악산은 우애 깊은 형제자매처럼 보인다. 뒤 를 돌아서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풍력발전기와 수평선에 걸쳐진 마라도가 한눈에 잡힌다. 어 디 한 곳 막힘없이 탁 트인 시야와 병풍처럼 둘러 쳐진 전망이 말 그대로 기가 막히다. 

눈길 닿는 곳 어디나 소박한 섬마을의 정취가 묻어난다.
눈길 닿는 곳 어디나 소박한 섬마을의 정취가 묻어난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소박하고 정겨운 섬마을 

선착장이 있는 상동포구부터 반대편 가파포구까 지, 섬을 가로질러 놓인 길은 소박한 풍경의 연속이다. 전망대를 지나 마을 안길로 접어들면 가파 초등학교가 나타난다. 섬에 있는 유일한 학교로 1922년에 설립된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금세라 도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와 시끌벅적해질 것만 같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점점 학생 수가 줄 어 지금은 5명 남짓하다. 마라도 분교가 몇 년째 신입생이 없어 휴교 중인걸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 고 해야 할지. 학교를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가파도 이야기를 담은 벽화.
가파도 이야기를 담은 벽화.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마을 건물과 집들은 하나같이 아담하고 단정하다. 집집마다 텃밭과 화단도 잘 가꿔져 있다. 섬 주 민들은 모두 이렇게 부지런한 걸까. 담장에 그려진 벽화를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 했다. 거친 풍랑에 맞서 고기를 잡고 물질과 밭일 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려면 부지런함은 필수일 터, 옛적에는 본섬까지 2~3시간씩 노를 저어 가야 했으니 이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 밖에 북쪽 상동과 아래쪽의 하동에 각각 하나씩 샘물이 있는 데, 제주도에 속한 5개의 유인섬 중에서 민물이 솟는 곳은 가파도뿐이라는 것, 자리돔과 멸치, 방어 잡이의 원조이며 조선시대 때 하멜이 부근 암초에 파선해 섬에 선착했다는 등 가파도의 역사와 문화, 생활풍습들이 벽화로 소개되어 있다. 마을 길만 걸어도 가파도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 

동쪽 해안길에 보이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푯말.
동쪽 해안길에 보이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푯말.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해안길 따라 ‘우리들의 블루스’ 

길 끝은 섬 반대편인 가파포구이다. 이쯤 되니 목도 마르고 잠시 쉬어가고 싶어 진다. 마침 마을에 서 운영하는 무인카페가 눈에 띄었다. 사람 마음은 다 같은지 손님들이 꽤 있다. 요즘은 무인카페 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예전처럼 양심 없는 이들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알아서 척척 카드 계산까지 다 해낸다. 실내 공간도 쾌적하고 커피, 차와 간 단한 주전부리들이 있어 여행자들에게 무척 유용하다. 

여기서부턴 올레길 표식을 따라 동쪽 해안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이렇게 가면 역방향이지만 오히려 본섬의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 좋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더불어 한라산과 송악산, 산방산, 형제섬 등이 멋진 그림을 그려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산들이 나란하게 펼쳐있거나 겹쳐지고, 때로는 마주 보기도 한다. 시선에 따라 변하는 움직이는 그림이다. 촤르르르르, 파도가 내는 소리가 근사한 배경 음악이 되어준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곳. 섬은 깊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애틋해하며 그리워한다. 

자전거를 타고 섬을 누벼보자.
자전거를 타고 섬을 누벼보자.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최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지를 알리는 작은 푯말도 보인다. 젊은 선장인 정준(김우빈)과 해녀 영옥(한지민)이 둘만의 여행을 떠났던 장면이다. 마침 그들처럼 자전거를 탄 한 쌍의 연인이 곁을 스쳐간다. 섬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다시 선착장 앞이다. 식당과 카페들이 몇몇 늘어서 있다. 문득 하룻밤 묵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멀리 보이던 배가 그새 가까워졌다. 그래, 뭔가 하나는 남겨둬야 다시 찾는 법이지. 다음에는 모두 떠나간 섬의 밤하늘 아래서 별을 헤어봐야겠다. 

마라도 가파도 정기 여객선.
마라도 가파도 정기 여객선.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INFO 마라도 가파도 정기 여객선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최남단해안로 120(운진항) 

TIP

가파도는 올레길 10-1 코스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선 착장에서 서쪽 해안길을 돌다 섬 안쪽을 가로질러 다시 동쪽 해안을 따라 가파포구까지 오게 된다. 올레길 완주는 2시간 정도 걸리지만 꽃구경까지 더하면 시간을 더 넉넉히 잡아야 한다. 꽃밭은 소망전망대 인근에 조성되어 있다. 자전거로 다녀도 좋다. 길이 평탄해 아이들도 부담이 없다. 선착장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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