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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고 싶은 명품 섬 ①] 섬과 섬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순례자의 길, 섬티아고
[가고 싶은 명품 섬 ①] 섬과 섬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순례자의 길, 섬티아고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3.04.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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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점도 선착장에 있는 건강의 집(베드로). 사진/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신안] 신안군 지도면에 순례자의 길이 있다. 고만고만한 섬 6개를 노둣길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12km 길이다. 세계적인 순례자의 길로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힌트를 얻어 섬티아고 순례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빌린 예배당

신안군에 천사대교가 개통되면서 배가 아닌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섬이 여러 개 생겼다. 암태도·자은도·팔금도·안좌도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즈음엔 섬티아고''가 더 이름을 떨치고 있다. 신안군 지도면에 있는 다섯 섬을 이어놓은 순례자의 길덕분이다.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딴섬으로 이어지는 12km의 길에는 국내외 작가 10명이 만든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다. 예수의 제자들인 12사도의 이름을 붙인 초소형 예배당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순례자의 길을 걷다보면 쉼터가 있다. 사진/ 박상대 기자
생각하는 집(안드레아). 사진/ 박상대 기자

깊은 섬에 왜 이런 건축물이 들어서고 길이 만들어졌을까? 우연히 들른 대기점도 한옥민박집에서 그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조그만 마을마다 교회가 있고, 주민들 9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 신자란 말입니다. 저 앞에 병풍도까지 6.25때 순교자가 많이 있는데, 혼자된 가정이 너무나 많았어요. 교회가 아니었으면 마을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처음 복음을 전해준 윤준경 전도사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순례자의 길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지요.”

대기점도 이장을 역임한 오영춘 씨의 이야기다. 2017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 응모하여 선정된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개진하여 세계적인 성지순례길 이름을 빌린 섬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탄생한 것이다.

순례자의 섬은 이제 힐링여행의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 박상대 기자
소악도와 대기점도까지 여객선이 오가는 압해도 송공항. 사진/ 박상대 기자

압해도에서 여객선 타고 송공항으로

신안 순례자의 길을 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신안군 지도읍 송도 선착장에서 병풍도 선착장으로 가는 배(25분 소요)를 이용하는 방법과 목포에서 가까운 신안군 압해읍 송공 선착장에서 소악도(40분 소요)로 가는 방법, 셋째는 송공 선착장에서 대기점도(70분 소요)로 가는 방법이다.

물때에 맞춰서 들어와야 순례자의 길을 다 걸을 수 있어요.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여유 있는지, 당일로 걷고 나갈지 12일 차분하게 걸을지에 따라 들어오는 배편과 항이 다릅니다.” 신안군 정숙애 문화관광해설사는 조금과 사리에 따라 걷는 조건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송공항과 기점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천사대교 밑을 지나간다. 사진/ 박상대 기자
섬 주변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김양식장. 사진/ 박상대 기자

순례자의 길은 하루 두 번 썰물일 때 3~5시간 동안 물때를 잘 이용해야 노둣길로 이어진 5개 섬과 노둣길이 없는 모래언덕을 지나 예배당이 있는 섬들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 갈 때는 반드시 물때를 확인하고 가야 한다. 자칫하면 노둣길이 물에 잠겨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이 묶일 수 있다.

12일 일정을 잡은 기자는 송공항에서 1250분에 출항하는 여객선을 타고 소악도로 들어갔다. 오후에 출항한 여객선에 손님은 많지 않다. 저마다 신안군과 순례자의 섬 안내 팸플릿을 펼쳐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창한 봄날이다. 여객선 갑판에 나와 상큼한 갯바람을 가슴에 담는다. 김양식장에서 일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갑판 위에 있는 여행객들의 표정이 너나없이 행복하다.

대기점도에 있는 한옥민박. 사진/ 박상대 기자
이곳에서 가장 큰 섬인 병풍도에는 맨드라미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가을에 맨드라미 축제를 연다. 사진/ 박상대 기자

갯벌 사이로 놓인 노둣길과 12사도 이름을 딴 기도처

송공항에 도착하여 드넓은 갯벌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리던 중 광주에서 왔다는 중년 여성 여행자들, 서울에서 온 여행자가 동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정숙애 문화관광해설사가 앞장서고 여행자들은 뒤를 따른다. 송공항이 있는 섬은 진섬이다. 송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예배당이 칭찬의 집(유다 타대오)이다. 삼각형 지붕이 네 개인 하얀집이다. 이 집을 지은 손민아 작가는 각기 다른 지붕에 하나의 공간인 집에서 사람들이 서로 칭찬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진섬 안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자 사랑의 집(시몬)이 있다. 가운데가 뚫린 집이고, 뒤쪽으로 소나무숲과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 벤치에 사람들이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다시 조금 더 들어가자 모래사장 너머에 작은 섬이 있고, 그 입구에 붉은 벽돌로 지은 집이 보인다. 지혜의 집(가룟 유다)이다. 십자가와 종탑이 있는 이 집 밖에는 종이 하나 달려 있다. 순례자의 길을 걸어온 여행객들이 길을 걸으면서 힘들었던 짐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지혜를 담아가기 위해 12번 종을 친다.

지혜의 집(가룟 유다). 사진/ 박상대 기자
사랑의 집(시몬). 사진/ 박상대 기자

다시 길을 돌아나와 소악도로 발길을 옮긴다. 첫 번째 노둣길을 건너자 왼쪽으로 소원의 집(작은 야고보)이 보인다. 장미셀·파코·브루노 등 세 작가의 작품이다. 유럽 바닷가에 있는 어부들의 기도처처럼 20세대도 살지 않는 작은 어촌에 기도처를 마련했다. 파도와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는데 평화와 풍어라는 어부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소악도에서 소기점도로 가는 노둣길 중간지점에 기쁨의 집(마태오)이 자리하고 있다. 하얀 건물에 금빛 돔이 올려져 있다. 이 지방 특산물인 양파를 상징하고 있다. 밀물일 때 고립되고 썰물일 때 이웃과 소통하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소기점도에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가 있다. 여행객들이 쉬었다 가는 곳이다. 소기점도와 대기점도에는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집이 몇 개 있고, 카페와 매점도 있다.

칭찬의 집(유다 타대오). 사진/ 박상대 기자
대기점도(선착장)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다. 사진/ 박상대 기자

순례자의 길에서 얻은 행복 에너지

소기점도에는 인연의 집(토마스), 감사의 집(바르톨로메오)이 있다. 인연의 집 벽면에 오병이어 부조가 있다, 작은 호수 가운데 있는 감사의 집은 파도 치는 물결을 닮았다. 다시 노둣길을 건너 대기점도로 간다. 프랑스 남부의 건축양식을 한 행복의 집(필립)이 있다.

프랑스 작가가 섬마을에 굴러다닌 절구통을 잘라 환기통을 만들어 놓은 게 흥미롭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생명평화의 집(요한)이 있고, 왼쪽으로 가면 언덕 위에 오두막처럼 생긴 그리움의 집(야고보)이 있다. 생명평화의 집은 전체 모양은 남성을, 출입문은 여성을 상징한다. 내부에서 뒷창문을 보면 무덤이 보인다. 삶과 죽음이 멀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쁨의 집(마태오). 사진/ 박상대 기자
병풍도에 있는 염전. 사진/ 박상대 기자
병풍도에는 섬 이름에 걸맞는 병풍을 닮은 절벽이 1km 있다. 썰물일 때만 걸을 수 있다. 사진/ 박상대 기자

대기점도에서 병풍도를 잇는 노둣길 입구에 생각하는 집(안드레아)이 있다. 밀물과 썰물 현상을 보여주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건물, 그 꼭데기에 고양이 조형물이 있다. 마을에 고양이가 많이 살아서 올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대기점도 선착장에 건강의 집(베드로)이 있다. 대기점도항으로 온 여행객은 여기에서 순례자의 길을 걷게 된다.

순례자의 길은 과거 신안군 지도와 증도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의 전도길을 일부 복원하고, 그 분의 숭고한 정신을 따르자는 뜻에서 꾸민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을 걷는 여행자들은 소풍을 나온 기분으로 걷는다. 고통스러운 길은 거의 없다. 쉴 수 있는 곳, 먹을 수 있는 것도 옹색하지 않다. 아스라이 펼쳐진 갯벌과 바닷물에 설치된 양식장들, 그리고 소나무숲과 신우대숲, 마을 길을 걷는 동안 가슴 가득 행복 에너지를 담게 된다.

문준경 전도사.

섬에 살아 있는 개신교 최초 여성 순교자, 문준경

문준경 전도사(1891~1950)는 신안군 암태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후 17세에 정모 씨와 결혼하여 지도에서 살았다. 36세에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40세에 서울에서 신학대학 청강생이 된 후 임자도에 교회를 개척하는 등임자도와 증도 일대 섬을 다니면서 전도에 집중했다.

돛단배를 타고 다니거나 노둣길을 걸어서 이 섬, 저 섬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 그런데 단순히 복음만 전파한 게 아니라 생활을 통해 섬사람들을 도우며 사랑과 헌신을 다했다. 전도생활은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 되고, 아픈 사람의 의사가 되고, 임산부의 산파가 되기도 했다.

문준경 전도사는 한국전쟁 때 체포되었다가 195059세의 나이로 증도 바닷가에서 인민군에 의해 순교하였다. 그러한 발자취를 보고 한국 개신교 최초의 여성 순교자이며 섬 선교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INFO 순례자의 섬

주소 전남 신안군 지도면 기점도, 병풍도

여행 문의 신안군 병풍도 관리사무소 061-240-5409

교통 목포역 앞에서 130번 버스 압해도 송공항. 목포역 송공항 택시 27,000원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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