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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름다운 산행] 새롭게 열린 월출산 옛 명사탐방길, 하늘 아래 첫 부처길
[아름다운 산행] 새롭게 열린 월출산 옛 명사탐방길, 하늘 아래 첫 부처길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3.11.13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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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100대 명산 월출산에 새롭게 탐방길이 열려 찾아가 보았다. 사진 / 전고필 영암관광재단 대표
영암의 100대 명산 월출산에 새롭게 탐방길이 열려 찾아가 보았다. 사진 / 전고필 영암문화관광재단 대표

[여행스케치=영암] 영암에는 월출산이 있다. 영암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산이고, 어디에서 보든 신령스러운 기운이 넘치는 산이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는 부처를 만나러 가는 길이 열렸다.

월출산 둘레길 녹암마을에서 구정봉으로
월출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산이 영암과 강진에 걸쳐 앉아있는 터라 영암에서 오르는 길이 있고, 강진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영암에서 오르는 길은 천왕사, 도갑사, 영암실내체육관에서 오르는 길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난 923일 월출산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천왕사 앞에서 시작한 월출산둘레길 2구간이 끝나는 지점, 녹암마을과 월출산 북쪽 계곡물을 가둬서 식수로 사용하는 대동제가 있는 곳에서 시작한다.

월출산 '하늘 아래 첫 부처길'은 풀뿌리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 길이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월출산 '하늘 아래 첫 부처길'은 풀뿌리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 길이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월출산 국립공원과 영암군청이 함께 만든 길. 영암읍 녹암마을에서 시작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월출산 국립공원과 영암군청이 함께 만든 길. 영암읍 녹암마을에서 시작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녹암마을에서 산을 오를 때 오른쪽에 저수지 대동제가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녹암마을에서 산을 오를 때 오른쪽에 저수지 대동제가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오래전부터 영암 사람들 사이에서 명사탐방길이라 불리는 전설 같은 오솔길이 하나 있었는데 7부 능선에 군인들이 근무하면서 통행 금지 표시가 있던 길이었다.

옛날 영암에 살던 선비들이나 스님들이 다니던 산길이고, 아랫마을 사람들이 산나물 뜯으러 다니던 길인데 철조망을 쳐놓고 출입을 못하게 했어요. 이 길 주변에 암자가 10개 정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흔적만 몇 군데 남아 있지요.”

오복영 문화관광해설사는 구정봉에 오르는 완만하고 짧은 길이 열렸다고 소개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들과 우승희 영암군수까지 참석해서 개통식을 했고, ‘하늘 아래 첫 부처길이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명명했다.

영암쪽 월출산에는 여러 모양의 암릉이 있다. 사진 / 전고필 영암관광재단 대표
영암쪽 월출산에는 여러 모양의 암릉이 있다. 사진 / 전고필 영암문화관광재단 대표

수십 년 동안 발길이 닿지 않았던 숲속에 오솔길은 겨우 흔적만 남아 있고, 크고 작은 나무와 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숲에다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돌도 들춰내지 않고 비뚤비뚤 울퉁불퉁 자연 그대로 고스란히 껴안으며 조성했다고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존중하며 길을 열었다는 영암군 문화관광과와 국립공원 관리공단 사람들의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고맙다.

아름다운 계곡 물과 다양한 수종
마을 입구에서 두 번째 저수지까지 300m 정도는 좁은 포장길이다. 작은 저수지 옆으로 데크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다. 산길에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많다. 진달래, 철쭉, 산벚나무, 갈참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중간에 늘씬한 몸매와 매끄러운 피부를 자랑하는 노각나무가 여러 그루 눈에 띈다.

월출산에서 틈틈이 마주할 수 있는 노각나무. 사진 / 박상대 기자
월출산에서 틈틈이 마주할 수 있는 노각나무. 사진 / 박상대 기자
월출산 계곡에는 소형 저수지가 여러 개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월출산 계곡에는 소형 저수지가 여러 개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30분 남짓 오르자 산죽나무 숲이 보이고 드문드문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죽은 옛날 쌀 씻는 데 사용한 조리를 만들던 재료였다. 봄에는 동백과 산벚꽃이 많이 핀다고 한다.

산길 옆으로 계곡이 있다. 옛사람들이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내린 탓이다. 계곡에서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계곡에는 빨강 노랑 단풍잎이 떠 있고, 물속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벤치에 앉아 계곡을 감상하며 심호흡을 한다. 맑은 하늘과 물소리, 바람소리, 상쾌한 공기가 도시에 두고 온 잡생각을 지워버린다.

하늘 아래 첫 부처길 정상 부분에 있는 용암사지 삼층석탑. 사진 / 박상대 기자
하늘 아래 첫 부처길 정상 부분에 있는 용암사지 삼층석탑. 사진 / 박상대 기자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
마을 초입에서 2.8km,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조금 덜 되었는데 건물을 뜯어낸 흔적이 보인다. 석축과 담장을 쌓았던 흔적, 신우대 숲이 보인다. 마당에는 주춧돌도 있고, 우물터도 있다. 용암사지다. 동남쪽 언덕 위에 삼층석탑이 있다.

삼층석탑이 언제 세워졌고 용암사가 언제 건립되었다가 소실되었는지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 1955년 이 터에서 발견된 기와에 용암사(龍岩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1996년 석탑을 보수할 때 아래층 기단에서 보살좌상 1, 백자 사리호와 사리 32과를 수습했다. 삼층석탑에서 월출산 서남쪽으로 펼쳐진 우람한 능선이 꿈틀댄다.

용암사지에 있는 우물의 흔적.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암사지에 있는 우물의 흔적.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암사지에 있는 두 승려의 부도. 사진 / 전고필 영암관광재단 대표
용암사지에 있는 두 승려의 부도. 사진 / 전고필 영암문화관광재단 대표

삼층석탑을 돌아나와 구정봉 가는 이정표를 따라 길을 오른다. 이제 정상까지는 가파른 길이 이어질 듯싶다. 5분여 길을 오르다 보니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그 바위를 돌아서자 왜 이 산길을 하늘 아래 첫 부처길이라 불렀는지 설명해 주는 거대한 불상이 앉아 있다.

마애여래좌상이다. 국보 144호란다. 바위 옆면을 약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부처님을 새겼다. 불상의 신체 높이 7m. 비바람을 많이 맞은 탓인지 얼굴 표정이 경직되어 있고, 눈을 감은 듯 가늘게 뜨고 있다. 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모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용암사지 위로 5분 정도 가면 있는 마애여래좌상. 국보 144호.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암사지 위로 5분 정도 가면 있는 마애여래좌상. 국보 144호. 사진 / 박상대 기자

몸의 방향은 서쪽, 아마도 서방정토를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누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정을 두드려서 불상을 새겼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그 석공은 돈을 받았을까, 재능기부 했을까? 성스러운 부처님 앞에서 이런 부질없는 질문을 혼자 하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것은 불심(佛心)으로 이루었을 것이다!

우람한 능선과 경이로운 암릉
월출산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불교계에는 도선국사가 있다. 그런데 그 이전부터 많은 불자가 월출산에 살았고, 이토록 높은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부처를 모셔놓은 것이다. 어느 승려가 이 일을 지휘했는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불심에 의존하며 살았던 당대 사람들의 고귀한 정신을 짐작하게 한다. 얼마나 많은 학승이 찾아와 마음을 다잡고, 얼마나 많은 백성이 이곳을 찾아와 기도하며 부처의 말씀을 가슴에 담았을지 숙연해진다.

월출산을 오르는 도중에 볼 수 있는 기묘한 암릉들. 사진 / 전고필 영암관광재단 대표
월출산을 오르는 도중에 볼 수 있는 기묘한 암릉들. 사진 / 전고필 영암문화관광재단 대표
천황봉, 장군봉과 함께 월출산 3대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구정봉. 사진 / 전고필 영암관광재단 대표
천황봉, 장군봉과 함께 월출산 3대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구정봉. 사진 / 전고필 영암문화관광재단 대표

500m를 더 오르면 월출산 3대 봉우리 중 하나인 구정봉(705m)에 이른다는 이정표를 보며 길을 오른다. 암릉길이다. 어느 산을 오르든 앞을 잘 보고 올라야 하지만 틈틈이 뒤를 돌아보며 올라야 한다. 계속 이어지는 암릉 앞에서 경이로움을 맛보며 탄성을 쏟아낸다. 건너편 능선 중간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들은 금방 곰이었다가 돌아서서 보면 부처다. 세상만사가 마음먹은 대로 보인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산을 오른다.

월출산 천황봉에 오르는 등산객이 제법 많이 있다. 맨 오른쪽이 전고필 영암관광재단 대표. 사진 / 전고필 영암관광재단 대표
월출산 천황봉에 오르는 등산객이 제법 많이 있다. 맨 오른쪽이 전고필 영암관광재단 대표. 사진 / 전고필 영암문화관광재단 대표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월출산 단풍들. 사진 / 박상대 기자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월출산 단풍들. 사진 / 박상대 기자

구정봉은 신령스러운 월출산에서 마주할 수 있는 신비한 구덩이다. 바윗돌 위에 새겨진 동그란 구멍이 아홉 개 있어서 구정봉이라고 하지만 실은 아홉 개가 더 되어 보인다. 이를 두고 시비를 건 사람은 없다. 옛사람들이 구정봉이라 불렀으니, 가장 크고 많은 숫자 아홉을 빌려온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정봉에 앉아 월출산 능선을 감상한다. 향로봉을 따라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과 천황봉이 버티고 있는 동쪽 능선길이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앉아 있다. 능선 너머 들판은 누렇게 익은 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 멀리 강진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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