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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테마여행 ①] 찬란했던 백제의 시간 속으로, 사비길 따라 부여 한 바퀴
[이달의 테마여행 ①] 찬란했던 백제의 시간 속으로, 사비길 따라 부여 한 바퀴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3.10.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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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부여를 찾아가 천오백년 전의 사비의 시간을 걸어본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백제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부여를 찾아가 천오백년 전의 사비의 시간을 걸어본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여행스케치=부여] 천오백 년 전 백제의 역사가 고이 잠들어 있는 부여. 발걸음마다 묻어나는 시간의 향취를 따라 찬란했던 사비의 시간 속을 걸었다.

백제의 옛 도읍 3개 도시(부여·공주·익산)에는 5~7세기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문화적 전성기를 이뤘던 백제 후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다. 백제의 두 번째 도읍 웅진(공주)과 백제의 마지막을 품은 사비(부여), 이에 버금가는 별도(別都)’였던 익산까지, 이 세 지역에 걸쳐 남아있는 백제의 유적지 총 8곳이 지난 2015백제역사유적지구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중 부여에는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부여 왕릉원, 나성 등 총 4곳이 포함됐다.

백제 성왕의 원대한 꿈, 사비 천도
백제는 위례성(서울)에서 웅진(공주), 그리고 사비(부여)로 세 번이나 도읍을 옮겼다. 부여는 사비도성의 나성과 궁궐지, 사찰과 관청, 도로, 시가지 등 모든 것이 정연하게 정비된 성왕의 원대한 꿈이 담긴 계획도시였다. 성왕은 사비 천도를 통해 넓은 세계와 교류하며 국제도시로서 강성한 백제를 원했다.

백제문화단지에 복원된 사비궁 전경. 사진 / 민다엽 기자
백제문화단지에 복원된 사비궁 전경. 사진 / 민다엽 기자
부여의 백제 유적 4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부여의 백제 유적 4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사진 / 민다엽 기자
관북리유적에서 발굴된 왕궁터 석재. 사진 / 민다엽 기자
관북리유적에서 발굴된 왕궁터 석재. 사진 / 민다엽 기자

북쪽으로는 백마강을 끼고 부소산성과 나성을 쌓아 외적의 침략에 대비했으며, 도시를 굽이쳐 흐르는 백마강을 통해 고구려와 신라, 나아가 일본과 중국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199312월 능산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를 살펴보면 당시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았던 코끼리나 원숭이, 악어 등 낯선 동물들이 묘사된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백제가 외부 세계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이런 동물들을 알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비의 왕궁터는 오랫동안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불과 40여 년 전인 1982년에 이르러, 부소산성 바로 아래에 있는 넓은 공터(현 관북리 유적지)에서 대형 전각 건물터와 건축 석재, 주춧돌, 도로, 상수도 등을 포함한 왕궁과 관련된 다양한 유구들이 발견되면서 사비시대의 왕궁터임이 비로소 확인되었다. 이후 2001~2008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대대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현재 백제의 왕궁의 구조 대부분이 확인된 상태. 지금까지도 관북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했던 부소산성 입구. 사진 / 민다엽 기자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했던 부소산성 입구. 사진 / 민다엽 기자
낙화암 절벽에 세워진 백화정. 사진 / 민다엽 기자
낙화암 절벽에 세워진 백화정. 사진 / 민다엽 기자

사비의 마지막 왕궁터와 왕성
사비의 왕궁터인 관북리 유적 뒤편에는 사비도성의 배후 산성인 부소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북쪽으로 백마강을 끼고 조성된 부소산성은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으로 사용되다가, 비상시에는 외적의 침입을 대비할 수 있는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산성 안에는 의자왕의 삼천궁녀들이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과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자그마한 사찰 고란사, 그리고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영일루, 사비루 등 왕과 귀족들이 사용하던 정자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특히 가을이면 산성 전체가 단풍으로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제격인 장소다.

부소산성은 도심과 거리가 멀지 않고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누구나 편하게 산책하듯 오를 수 있다. 나지막한 숲길을 오르다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낙화암과 백화정이 나타난다. 백제의 마지막 순간, 자진해서 강물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킨 사비의 여성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까.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백화정에서 내려다본 백마강의 전경이 왠지 모르게 아련하게 느껴진다.

울긋불긋 단풍에 물든 부소산성 숲길. 사진 / 부여군청
울긋불긋 단풍에 물든 부소산성 숲길. 사진 / 부여군청
낙화암에서 내려다본 백마강 전경. 사진 / 민다엽 기자
낙화암에서 내려다본 백마강 전경. 사진 / 민다엽 기자
백마강 따라 낙화암을 감상할 수 있는 황포돛배. 사진 / 민다엽 기자
백마강 따라 낙화암을 감상할 수 있는 황포돛배. 사진 / 민다엽 기자

절벽 아래 커다란 바위에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의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새겨져 있다. 낙화암 아래에는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사찰인 고란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고란사 뒤뜰에는 젊어지는 샘물이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더불어, 바로 옆 선착장에서 백마강 황포돛배를 타면, 부소산성과 낙화암의 모습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게다가 산길을 다시 오르지 않고 관북리 유적·부소산성 입구 쪽 구드레 선착장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 편하다.

INFO 워킹페스타 in 백제
113~4일 양일간 부여 백제역사유적지구 일원에서 4회 워킹페스타 in 백제축제가 열린다. 전 세계 다양한 여행자들과 함께 백제의 역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로, 관북리 유적지에서 출발해 부소산성, 정림사지를 지나 궁남지까지 총 4.2km 거리의 코스를 걷게 된다. 소요 시간은 2시간 남짓. 각 유적지에서는 백제 문화공연의상 체험’, ‘전통 체험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백제 문화 굿즈등 푸짐한 경품도 제공된다.

1,500년을 버틴 불교의 힘, 정림사지
백제가 멸한 후 찬란했던 사비의 유산들은 대부분 파괴되고 사라졌다. 웅장했던 사비성은 덩그러니 터만 남았고 탄탄히 쌓아 올렸던 나성은 흙속에 묻혔다. 특유의 개방성과 독창성으로 불교 예술의 극치로 평가받던 백제의 불교 유적도 대부분 사라졌다.

국보로 지정된 정림사지오층석탑. 우리나라에 단 두 개만 남아있는 백제의 석탑이다. 사진 / 민다엽 기자
국보로 지정된 정림사지오층석탑. 우리나라에 단 두 개만 남아있는 백제의 석탑이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불을 밝힌 정림사지. 야간에도 산책하기 좋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불을 밝힌 정림사지. 야간에도 산책하기 좋다. 사진 / 민다엽 기자

, 정림사지오층석탑만이 그 원형을 지키며 1,500년의 긴 세월을 버티고 있다. 부여 시가지 정 가운데에 있는 정림사지에 세워진 석탑으로 익산의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현재 단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유물이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 기법을 이용해, 세련되면서도 정제된 기품을 풍기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석탑 사방에는 나당 연합에 의해 사비가 함락될 당시(6608)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의 정벌을 기념하기 위해 새겨 놓은 글귀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석탑이 위치한 정림사지 일대에서는 여러 시대에 걸친 불교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데, 특히 창건기인 백제시대와 중건을 거친 고려시대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계절마다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는 궁남지. 사진 / 민다엽 기자
계절마다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는 궁남지. 사진 / 민다엽 기자
버드나무와 꽃 사이로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버드나무와 꽃 사이로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왕의 연못’, 산책하기 좋은 궁남지
옛 사비는 왕궁을 중심으로 폭이 10m나 되는 대로가 남쪽에 있는 별궁 연못인 궁남지까지 곧게 뻗어 있었다. 이 대로를 따라 각종 관청과 집터 등이 격자 모양으로 가지런히 들어섰고 도로 좌우에는 하수시설도 발견됐다. 이러한 형태가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재의 부여 모습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백제 무왕(634) 때 만들어진 궁남지는 궁 남쪽에 연못을 팠다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라 이같이 불리게 됐다. 연못을 따라 늘어진 버드나무와 연못 중앙에 있는 정자 역시, 철저한 고증을 통해 복원된 것이다. 다만, 당시 연못에서 뱃놀이는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여름에는 공원 전체가 연꽃으로 둘러 싸인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매년 여름에는 공원 전체가 연꽃으로 둘러 싸인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섬 위의 정자 포룡정. 사진 / 민다엽 기자
섬 위의 정자 포룡정. 사진 / 민다엽 기자

공원 구석구석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다. 특히 야간에는 연못 주변으로 형형색색 조명이 켜져 한층 운치를 더한다. 특히, 매년 7월 중순 때면 연못 전체가 온통 연꽃으로 가득찬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놓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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