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완주] 대한민국의 곳곳을 돌며 그 속에 숨겨진 자연미와 예술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여행이 끝나면 낯설었던 미학이 삶의 곳곳에 흔적과 통찰로 스며들 것을 기대한다. 미술교육학박사인 정수기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첫 번째 미학여행. 예술감성 가득한 완주로 나들이를 나섰다.
“미학여행, 너무 어렵지 않을까? BTS가 아원고택에서 사진을 찍어서 유명해졌어요. 이 포토 스폿이 왜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미학적으로 풀어 볼게요. 또 산속등대에서 생생한 색감을 대조해가며 본 적은 흔치 않을 거예요. ‘색’의 측면에서 보면 보색도 나오고 유사색도 떠올리는 풍경인 것이죠.”
아원고택의 미학적 관점 세 가지
① 하모니와 균형, 한옥의 조화로운 배치
아원고택의 한옥은 모두 다른 지역에 있던 것을 해체하여 다시 조립했다. 이것을 이사해서 건축했다는 뜻인 ‘이축’이라고 한다. 원래 한옥은 조립 형태라 이렇게 250년이 되어도 이축해서 사용할 수 있다.
아원고택은 동양미학의 주요 개념을 다양한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연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공간 배치에서 조화와 균형을 느낄 수 있다. 아원고택의 서당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산은 단정하고 큰 곡선을 이루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선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수평적인 구도는 관람자에게 안정감을 주는데, 여기에서의 장면이 바로 그렇다.
② 비움과 무위의 형태, 한옥의 무형과 구조
한옥 내부는 무형의 비움 공간과 형태로 조합되어 동양미학의 ‘비움과 형태’의 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아원고택의 갤러리는 ‘명상’이라는 키워드로 일관된 설치공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긴 직사각형의 ‘물의 공간’이 바닥을 가로지르고 있다(건축용어로는‘수공간’이라고한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과 공간을 가득 채우는 명상 음악, 위로는 개폐형 지붕이 있어 눈과 비가 갤러리 안으로 그대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전면부에 안내 데스크가 보이지만 발밑의 물을 조심해야 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바라본 뒤 돌아 들어가야만 비로소 주인과 만날 수 있다. 마치 노자의 “하지 않으나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는 말처럼 조화를 이루지 않는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③ 선의 조형미, 한옥의 아름다운 디자인
한옥은 자리를 잡기 전부터 배산임수의 터를 연구하고 설계된다. 산과 물이 건축의 설계부터 중요한 요소이다. 아원고택도 이러한 자연환경을 먼저 살피고 지어졌다. 아원고택 뒤의 둘레길은 별도로 대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이곳에 이미 자생하고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옥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선의 대비에 있다고 본다. 대나무가 수직선의 미를 가지고 있는 데 반해, 한옥의 처마가 살짝 수평으로 굽어가는 곡선을 가지고 있고, 용마루에서 망와로 이어지는 수평선이 대조되기 때문인 듯하다. 유교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최상의 진리를 따르되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정신인 경천애인이 한옥의 선에 담겨있다.
건축은 늘 ‘물’, ‘추위’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방수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 자연환경에 맞도록 목재와 흙이 주요 소재가 되는 대신, 취약한 방수 문제는 초석과 지붕으로 해결해왔다. 그런데 늘 의문이었던 것은 지붕의 직선, 공포 등의 끝부분은 늘 하늘을 향한 듯 은근한 곡선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디자인이 한옥을 더 아름답게 느끼도록 하는 요소라고 본다.
‘산속등대’ 직선과 곡선 & 보색이 만든 대비의 미학
완주 여행의 두 번째 여행지는 산속등대이다. 여행지에서 늘 인물사진을 찍었다면 이곳에는 풍경 사진을 찍어보면 어떨까? 산속등대를 강조하여 가운데 둔 사진을 찍거나 과거의 제지공장의 폐구조물 아래에서 양쪽이 대비되도록 사진을 찍어본다. 이렇게 하면 시멘트 구조물이 마치 조형물처럼 강조된다. 하나의 사진 안에 두 가지 다른 풍경이 좌우 대비되기도 한다.
보통 그림의 한 가운데에 주요 대상물을 배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운데 놓인 대상물이 너무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진은 마치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1899~1976)의 작품 <외금강 삼선암 추색>을 떠올리게 한다. 변관식은 주로 화폭의 중앙에 검은 먹으로 강조할 자연의 일부를 강렬하게 배치하여 그리곤 했다.
우선 산속등대의 곳곳을 돌아보며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선과 색의 관점으로 살펴보자.
낮은 건물이 배치된 공간에서 등대는 유일하게 높이 솟아올라 조형미를 더해준다. 작품을 볼 때 먼저 멀리서 바라본 다음 가까이에서 보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데 자연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선과 색, 그리고 구도를 중심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보면 멀리서 보지 못했던 질감이나 숨겨진 색과 선을 찾을 수 있다.
멀리서 보는 산속등대는 땅의 수평선과 등대의 수직선이 만나 대비를 이루는 전경이 압도적이다. 또 공장 건물의 무채색 결 곳곳에 각종 원색에 가까운 페인트가 칠해져 있어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현대미술에서 만날 법한 조형미를 담을 수 있다.
근현대를 넘나드는 시간여행,
질감으로 탐색하는 삼례문화예술촌
빈티지 양철지붕 ‘하늘색’과 목조건축물 ‘갈색’은 곡물창고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폐창고의 철거되지 않은 구조물, 지붕의 결, 양철 벽면의 녹슨 부분, 새로 건축된 건축물의 질감뿐 아니라 여러 고서, 팝업북 등의 종이 질감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여러 물성이 지닌 차이를 느껴볼 것을 추천한다.
지금까지 완주 여행에서 보았던 곳들에 비해 이곳은 자연환경보다는 인문환경에 집중하여 미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주로 상가, 주택, 성당 등의 주변 생활 시설을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볼거리들이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자세히 들여다보는 미학여행을 추천한다. 아원고택이 단순하게 다듬어진 그림을 보여주었다면 삼례문화예술촌은 다양한 책표지, 여러 색의 타일로 꾸며진 조형물, 거리의 표지판 등이 뒤섞여 맥시멀한 그림을 보여준다.
완주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삼례문화예술촌은 일상에서의 미학적인 여정을 계속할 수 있는 연결지점이 되어줄 수 있다. 지금까지 자연 속 아름다움을 찾아 카메라를 들었다면 이곳에서는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둘러보며 자신이 마음에 담고 싶은 일상을 찍어보자.
사실 미학은 어디에서나 발견될 수 있고, 우리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삶의 아름다움을 여행지에서 새로운 눈으로 발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정수기 미술교육학박사
*27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아이들의 취향을 존중하는 남다른 학급 운영으로 유명했던 정수기 선생님. 미술교육학박사로 현재 전주교대에 출강 중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정 선생님은 아름다운 우리 여행지를 다니며 미학탐구를 통해 여행도 미술교육의 장소라는 걸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