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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섬 여행]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섬, 장고도
[섬 여행]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섬, 장고도
  • 김민수 섬 전문 여행작가
  • 승인 2024.01.15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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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 위에 전통문화가 곱게 남아있는 장고도로 떠나본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아름다운 자연 위에 전통문화가 곱게 남아있는 장고도로 떠나본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보령] 대천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가자섬으로호를 타면 세 개 섬을 돌아 나온다. 그 섬들이 바로 대천 앞바다의 터줏대감 삽시도, 장고도, 고대도다. 그중 장고도는 아름다운 자연 위에 전통문화가 곱게 놓인 섬이다. 게다가 주민들의 소득까지 두둑하다. 이웃 섬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는 장고도, 그곳으로 떠나보자.

물 빠진 갯벌 위에 눈이 내려 쌓였다. 건너편의 무인도는 바로 장고도의 시그니처 명장섬이다. 잠시 후, 명장섬까지 기다랗게 길이 올랐다.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 1km의 바닷길로 구성은 갯돌이다. 명장섬은 장고도 본 섬의 서쪽에 있어 낙조조차 아름다운 스폿이다. 하지만 자연은 모두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진리, 몇 번의 장고도 여행에서도 제대로 된 낙조를 본 적이 없다.

겨울은 섬 여행이 힘들어지는 시기지만, 그 또한 낭만으로 다가온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겨울은 섬 여행이 힘들어지는 시기지만, 그 또한 낭만으로 다가온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장고도의 하얀 겨울
겨울은 섬 여행도 동면에 들어가는 시기다. 혹독한 바닷바람과 여객선의 잦은 결항으로 숙박 시설과 식당이 대부분 철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주민들마저 육지로 나와 겨울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니, 자칫 주인 없는 섬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세상 어디든 머물지 못할 것이 없다고 큰소리 탕탕 치는 캠퍼들에게는 그 또한 낭만이라 했다. 먹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 언제나 용기백배다.

겨울 눈발이 날리던 날, 대천항 여객선터미널에 섰다. 그런데 가는 배는 문제가 없지만, 다음날 돌아오는 배편은 장담할 수 없었다. 더욱 나빠질 날씨 때문이다. 순간 멘붕이 왔다. 매표 줄을 이탈 혼돈의 망설임에 빠져 있을 때, 보다 못한 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 “, 설도 다가오는데 웬만하믄 뜨것지 뭘.”

바다로 나가지 못한 고깃배가 대천항을 가득 메운 어느 겨울날.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바다로 나가지 못한 고깃배가 대천항을 가득 메운 어느 겨울날.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가자섬으로호는 삽시도와 고대도를 번갈아 경유해서 들어온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가자섬으로호는 삽시도와 고대도를 번갈아 경유해서 들어온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장고도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숙영지를 찾지 못해 해안길을 헤맬 때, 도움을 준 것도 섬 주민이었다. 폐장한 민박집 마당을 기꺼이 내주고 마을 안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던 장고도 의인, 텐트를 치고 나니 비로소 하얀 섬이 눈 속으로 들어왔다.

돌방과 등바루놀이
민박집 마당에는 돌로 만든 웅덩이가 있었다. 두세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는데, 지면보다 낮아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구조였다. 화롯대를 꺼내 불을 피웠다. 온기가 차오르자 세상 따뜻했다.

추운 날이면 바다도 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추운 날이면 바다도 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장고도 대멀 선착장에는 옛 돌방의 모형이 설치돼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장고도 대멀 선착장에는 옛 돌방의 모형이 설치돼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물이 빠지면 명장섬까지 바닷길이 드러나는 뒷장벌.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물이 빠지면 명장섬까지 바닷길이 드러나는 뒷장벌.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그 웅덩이의 실체는 민속 등바루놀이에 쓰였던 돌방이다. 오래전 장고도 처녀들은 해당화가 만발한 음력 4월이면 놀 날을 잡았다. 놀기 하루 전날에는 명장섬과 이어진 갯밭에서 돌을 날라 바닷가로 출입구가 있는 타원형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돌방이다. 돌방은 처녀들이 모여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는 일종의 아지트로 남자들은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처녀들은 2~3일간 바닷가에 나가 굴을 따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았다. 그동안 부모들은 돌방으로 음식을 나르기도 했다.

등바루놀이가 끝나면 돌방은 허물어졌다. 그러니 민박집 마당에 있었던 것은 모형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도 멋모르고 불을 피웠다는 죄책감은 한동안 이어졌다. 장고도 해안가에 즐비하던 민박들이 헐리면서 돌방도 함께 사라진 탓이다. 현재는 여객선이 도착하는 대멀항 부근에 실물모형을 만들어 놓아 그 생김을 짐작게 하고 있을 뿐이다.

등마루놀이의 베이스캠프로 쓰였던 돌방.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등마루놀이의 베이스캠프로 쓰였던 돌방.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장고도의 모든 길은 남녀노소 쉽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장고도의 모든 길은 남녀노소 쉽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장벌에서 난 인심
장고도는 안면도 남쪽 그리고 고대도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대천항에서 장고도까지는 대략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계절에 따라 배 시간이 유동이니 여행을 계획한다면 시간 확인은 필수다. 누구나 예상했을 테지만 장고도는 섬의 모습이 장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물론 비행기나 드론이 없던 시절에 지어진 것이니 위에서 바라 본 모습은 아니다.

여객선이 닿은 대멀항은 마을과 2km쯤 떨어져 있다. 여행자는 마을까지 갯벌을 옆에 끼고 걷게 된다. 이곳 사람들은 갯벌을 장벌이라 부른다. 물이 빠지고 모습을 드러낸 앞 장벌은 그 끝이 마치 육지에 가 닿을 것처럼 광활하다. 주민들은 그곳에서 바지락을 캔다. 특히 6물과 11물 사이에는 주민 모두가 장벌에서 산다. 마을 안에서 사람 구경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호미로 캐낸 바지락은 경운기가 들어가 운반해 나온다. 서해안 섬에서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그림이다.

1km에 달하는 명장섬 바닷길은 규모나 풍광에서도 압도적이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1km에 달하는 명장섬 바닷길은 규모나 풍광에서도 압도적이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전교생 3명으로 폐교를 걱정해야 하는 청룡초등학교 장고분교장.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전교생 3명으로 폐교를 걱정해야 하는 청룡초등학교 장고분교장.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해풍에 꾸덕꾸덕 건조됐을 장어의 맛이 궁금하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해풍에 꾸덕꾸덕 건조됐을 장어의 맛이 궁금하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간혹 섬 안에 있는 슈퍼들은 굉장한 존재감을 발휘할 때가 있다. 물건을 파는 본연의 임무를 넘어 민박, 식당, 여행자센터 그리고 매표소 역할까지 감수한다. 지난 호에 소개했던 어청도의 신흥상회가 그랬다면 장고도에는 마도로스슈퍼가 있다. 마도로스슈퍼의 인심은 처음처럼 후하다. 과자 봉지와 소주병을 앞에 놓고 언 몸을 녹이던 겨울에도,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던 봄날에도 잘 익은 김치가 덩달아 나왔다. 섬 마음이다.

해산물 기본소득
요즘 기본소득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책임과 자원에 대한 새로운 분배의 원리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에서 좋은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장고도의 경우 해산물 기본소득으로 풍요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해안탐방로가 섬 구석구석 잘 조성되어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해안탐방로가 섬 구석구석 잘 조성되어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섬의 반을 채운 송림 또한 여행자의 걸음을 유혹한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섬의 반을 채운 송림 또한 여행자의 걸음을 유혹한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자연 공급원인 바다를 공유부로 삼고 그곳에서 나오는 수익을 배당하는 형식이다. 주민들은 장벌에서 해삼을 양식하고 바지락을 캔다. 종묘를 뿌리면 바다가 알아서 키워주는 해삼의 경우는 전 주민이 공평하게 수익을 배분받는다. 하지만 노동력이 필요한 바지락은 참여한 사람만 배당을 받을 수 있다. 대신 수확량에 차별을 두지 않고 수익을 똑같이 나눈다.

2020년 기준으로 장고도의 기본소득은 연 1,100만 원, 바지락 채취에서 얻을 수 있는 배당금이 1,000만 원 정도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얻을 수 있는 소득이니 세상에 부러울 섬이 없다. 도선을 포함해 정기 여객선이 다니는 우리나라 섬은 300개 정도, 모두가 여행으로 열려 있다. 섬의 매력은 대부분 현지에서 발견하게 된다. 여행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섬이 오래오래 기억되는 이유기도 하다.

장고도 마을 공동체는 다른 섬이 부러워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장고도 마을 공동체는 다른 섬이 부러워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사진 / 김민수 여행작가

장고도는 겨울이 오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섬이다. 물론 하얗게 각인됐던 장고도가 화사하게 다가온 날도 있었다. 또 다른 여행에서다. 섬의 반이 송림으로 덮여있는 줄도 그때 알았다. 여행이 그렇다. 내겐 여전히 겨울날의 장고도가 그리움이지만, 다음 여행엔, 장담하건대 눈이 내리지는 않을 테니까.

장고도 여행 팁

여객선
대천항여객터미널 -> 장고도(대멀선착장)
13(동절기 12)
물때에 따라 간혹 마을 내 대멀선착장으로 배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

트레킹
안내판에는 둘레길과 해안 탐방로를 나눠 코스를 설명하고 있지만, 선착장을 출발하여 길이 이어지는 대로 걷다 보면 섬의 모든 곳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섬이 작은 편이고 모든 길이 완만해서 별다른 차림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1) 장고도 둘레길 (1km / 2시간)
마을 방파제 -> 명장섬해수욕장 -> 명장섬 -> 당너머해수욕장

2) 해안탐방로
1해안탐방로 (0.8km/ 20)

명장섬해수욕장 동쪽 끝 -> 해안데크길 -> 대멀항

2해안탐방로 (1.1km /30)
청룡초등학교 장고분교장 -> 해안데크길 -> 염전저수지

캠핑
당너머해수욕장의 해변과 명장섬이 바라다보이는 해안에 알파인텐트 서너 동이 들어갈 공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캠핑 인프라는 부족하다. 차박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고 또 어울리는 장소도 없다.

숙박
향후 어촌 뉴딜사업으로 향후 명장섬 숙박 단지가 건설될 예정이다. 현재는 마을 내에 있는 민박을 이용해야 한다.

음식
마도로스슈퍼를 제외하면 식당이 없다. 하지만 해산물이 풍부해 민박집 밥상의 퀄러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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