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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박물관 기행] 2천 년 왕도 서울의 유구한 역사를 품다, 한성백제박물관
[박물관 기행] 2천 년 왕도 서울의 유구한 역사를 품다, 한성백제박물관
  • 최보기 객원기자(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1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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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온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을 찾았다.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2천 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온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을 찾았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서울은 몇 살이나 될까? 조선 왕조의 도읍지로 시작했으니 700? 사실은 2천 년 역사를 가진 고도이다. 세계에 내놔도 기죽지 않을 서울의 유구한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에 다녀왔다.

88올림픽공원, 2천 년 왕도의 역사를 품다
202312월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서울의 봄>19791212일 있었던 군부 쿠데타를 소재로 만든 영화다. 불과 45년 전의 굴곡진 현대사다. 우리가 아는 수도 서울은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현대사 전면에 등장했다. 대부분 아는 서울의 역사는 거기서부터 아무리 길게 잡아도 1392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세웠던 조선이다.

올림픽공원에 설치된 눈썰매장.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올림픽공원에 설치된 눈썰매장.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실 내부.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실 내부.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풍납토성 재현물.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풍납토성 재현물.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그러나 서울은 그렇게 짧은 도시가 아니다. 서울은 저 멀고 먼 선사시대부터, 단군이 내려와 고조선을 건국했을 때부터 한반도의 중추 세력이 자리를 잡고 나라를 일으켰던 왕도(王都)였다. 항공사진으로 내려다보는 한강 동쪽의 광진, 강동, 송파, 강남 일대는 2천 년 왕도 서울의 유물과 유적이 온 땅에 널린, 지붕 없는 역사관이자 박물관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왕도의 중심지였던 송파에 올림픽촌과 공원이 조성되면서 몽촌토성, 풍납동토성 등 고대 왕도의 유적, 유물이 주목을 받자 마침내 한성백제박물관이 들어서게 됐다.

백제의 수도 부여에 있는 부소산성 사진과 출토품들.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백제의 수도 부여에 있는 부소산성 사진과 출토품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백제 사신들의 복장과 설명.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백제 사신들의 복장과 설명.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지하철로도 쉽게 갈 수 있는 서울 송파의 올림픽공원은 금싸라기 땅 치고는 생각보다 매우 넓다. 박물관을 비롯해 호수와 산책길, 미술관, 역사유적과 유물, 조각공원, 몽촌토성, 학술연구원 등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시설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군데군데 어우러져 있다. 심지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을 위한 눈썰매장도 있다.

INFO 한성백제박물관
주소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71(올림픽공원 내)
이용시간 평일 09:00-19:00, , , 공휴일 09:00-19:00(11~218:00)
휴관일 월요일, 11
전시해설 16(오전 10, 11, 12, 오후 2, 3, 4), 외국어 및 단체 관람객 전화예약 필요
부대시설 서울어린이백제박물관(구 몽촌역사관)
주차 유료
문의 02-2124-6200

7백 년 백제, 한강에 들어서다
금강산과 설악산의 물줄기를 받아 남진하는 북한강과 태백산에서 시작해 강원, 충청, 경기를 흘러 북진하는 남한강이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양수리)에서 만나 한강으로 합체한다. 한강은 이곳에서 잠시 북서로 방향을 틀어 오르다 미사리에서 서쪽으로 틀어 남쪽의 강동, 송파, 강남을 끼고 돌아 서울을 관통하고, 행주산성 지나 강화도 쪽으로 달린다. 풍부한 물과 비옥한 평야가 펼쳐진 암사동, 풍납동 등 한강 주변은 만 년 전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항공사진으로 본 한강유역 백제의 터전.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항공사진으로 본 한강유역 백제의 터전.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모형도.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모형도.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삼국사기> 등 기록에 따르면 압록강 북쪽 졸본부여에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 형제가 기원전 18년 즈음 무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왔다. 온조는 하남(河南) 위례성에 십제국(十濟國)을 세웠고,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자리를 잡았으나 땅이 습하고 물에 소금기가 많아 다시 위례성으로 합류했다. 이후 3세기 무렵까지 마한의 50여 개 국가 중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성도는 한성(漢城), 나라 이름은 백제로 바뀌었다. 역사가들의 발굴조사 결과 백제 왕성이었던 한성(위례성)의 위치가 바로 현재 송파 지역의 풍납동토성, 몽촌토성 일대로 밝혀졌고, 석촌동과 방이동 등 강변에 흩어져 있는 고분군 역시 백제 왕릉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2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글로벌 백제.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제2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글로벌 백제.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한성백제박물관 이영덕 전시해설사.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한성백제박물관 이영덕 전시해설사.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박물관으로 들어온 풍납동토성의 위용
지하철 천호역과 서울아산병원 사이 강변에 둘레 약 3.5km(현재 2.2km 존재), 넓이 약 878의 풍납동토성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나룻배 모양인데 궁궐과 도로, 우물, 창고, 주거지 등이 있는 왕성(王成)이었고, 뒤쪽 몽촌토성은 둘레 약 2.4km로 적의 침입 때 방어를 위한 산성이었다. 풍납동토성의 성벽은 아랫변 너비 43m, 윗변 13m, 높이 11m 이상으로 밝혀졌다.

한성백제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정면의 드높은 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실제 풍납동토성이다. 실제 토성? 2011년 발굴조사 때 절개한 성벽 전체 단면의 흙을 2~3mm 두께로 떼어내 보존처리한 뒤 박물관 벽에 붙였는데 이를 전사(轉寫)라고 한다. 오랜 시대에 걸쳐 1, 2, 3차로 증축한 흔적이 남은 성벽은 흙을 다져 쌓는 판축법(版築法)과 흙쓸림을 막기 위해 나뭇가지를 까는 부엽법(敷葉法) 등으로 단단하게 쌓았는데 이는 대륙의 선진기술로 일본에도 전파됐다.

백제가 일본 왕에게 선물한 바둑판 재현물. 일본 도아이지 쇼소인 소장.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백제가 일본 왕에게 선물한 바둑판 재현물. 일본 도아이지 쇼소인 소장.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공주 수촌리 무덤에서 출토한 백제시대 유물.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공주 수촌리 무덤에서 출토한 백제시대 유물.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3개로 나뉜 상설전시실은 각각 서울의 선사, 왕도 한성, 삼국의 각축을 주제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한강 문명, 백제의 건국과 멸망, 한강을 둘러싼 고구려, 백제, 신라의 투쟁의 역사와 유물이 일목요연하게 정리, 전시됐다. 실제로 몽촌토성의 땅속을 파보면 위로부터 올림픽공원 조성층, 근현대, 조선시대, 통일신라, 삼국시대(백제, 고구려) 문화층으로 토기, 항아리, 기와, 자기 등 유물이 깊이에 따라 시대별로 달리 묻혀있다.

특히 한성백제박물관 전시물은 대부분의 다른 박물관처럼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이 아니라 집터나 우물에서 출토된 실생활 도구들이라는 점, 5단 높이의 거대한 목조 우물과 충청, 강원, 전라 등 지방과 멀리 중국, 일본의 유물이 함께 발굴되었다. 이는 이곳 사람들이 고대국가로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백제인의 모습. 중국 국가박물관과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외국인의 눈에 비친 백제인의 모습. 중국 국가박물관과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경당지구 유구 우물에서 발굴한 토기들. 모두 입구에 조금씩 흠결이 있다.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경당지구 유구 우물에서 발굴한 토기들. 모두 입구에 조금씩 흠결이 있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한강을 둘러싼 삼국의 투쟁과 백제의 멸망
풍부한 물산과 뱃길을 이용한 사통팔달 교통/무역의 요충지였던 한강은 부르는 이름도 서로 달랐다. 백제는 욱리하/한수, 고구려는 아리수, 신라는 한산하/북독, 고려는 열수, 조선은 경강이라 불렀는데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한강으로 불린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이곳을 차지하려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투쟁이 어느 곳보다 치열했던 만큼 5세기 후반(475)까지 백제,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엽(551) 고구려, 이후에는 신라가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이뤘다.

백제는 47521대 개로왕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강 건너 아차산성에서 죽자 뒤이은 문주왕이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약 500년에 걸친 한성 백제 시대의 막을 내렸다. 이후 진흥왕이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우면서 신라의 한강 시대가 도래한다. 재기를 위해 노력했던 백제는 660년 의자왕 때 사비(부여)에서 나당연합군에 의해 마침내 나라의 문을 닫았다.

중년의 대학동창들이 박물관 견학을 하던 중에 찰칵.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중년의 대학동창들이 박물관 견학을 하던 중에 찰칵.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일본 나라현 덴리시의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된 백제 시대의 철제 가지 모양의 칼. 사진 / 황일만 사진작가
일본 나라현 덴리시의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된 백제 시대의 철제 가지 모양의 칼.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백제는 칠지도를 왜왕에게 하사했을 만큼 문화강국이자 기술강국이었습니다. 선진문물을 일본에 전한 왕인박사를 비롯해 와박사(기와장인), 노반박사(탑장인), 오경박사(유학) 등 박사의 나라였습니다. 그 힘으로 사비시대 금동대향로를 피워올렸습니다.”

한성백제박물관 이영덕 전시해설사의 이야기는 쉽고 흥미롭다. 한성백제박물관은 단순 유물을 넘어 한강 유역의 고대 역사를 한눈에 조망하는 학술연구가 함께 있으므로 전시해설사와 함께 관람하면 훨씬 효과적이다.

함께 한 일행이 혹시 해설에 필요한 대사만 외우나 싶어 꼬장꼬장한 기습 질문을 던졌는데 해설사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받아서 쉽게 설명해 준다. 내공 깊은 고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박물관 옥상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토성 일대와 멀리 아차산을 관망할 수 있다. 1550년 전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한강의 혼으로 잠든 백제 개로왕의 명복을 빌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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