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문경] 경북 문경은 예부터 ‘점촌(店村)’이라 하여 ‘도자기 마을’이라고도 불렸다. 현재까지도 전통 방식을 통해 ‘달항아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백자를 만들며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다기(茶器)인 찻사발, 식기 등을 만들어 왔다. 특히 오는 4월 27일~5월6일까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문경찻사발축제’가 열리니, 도자기에 관심 있는 여행자라면 좋은 기회다.
찻사발은 한일 수교 이후 일본에서의 대량 주문과 함께 1990년대 이후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중에 생산과 유통, 공급이 많아졌다. 당시 문경은 도자기를 굽기 좋은 질 좋은 토양과 풍부한 땔감, 맑은 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탓에 품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한양으로 가는 중요 길목에 있던 터라, 문경의 도자기는 빠르게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가게 됐다.
문경을 대표하는 찻사발축제
올해로 26회째를 맞은 문경찻사발축제에서는 찻사발을 만드는 과정부터 활용하는 방법까지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전통 방식인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망댕이가마도 체험해 볼 수 있으며, 찻사발의 역사와 기원을 알 수 있는 기획 전시도 열린다. 행사로는 외국과의 도자 교류전, 전국 찻사발 공모 대전, 도예 명장 특별전, 문경 도자 기획전 등이 있다.
올해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차만을 담던 찻사발에 커피와 밥까지 담아보는 새로운 도전과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대중화된 가성비 높은 찻사발과 식기 등이 더 많이 출품될 예정이다.
행사가 열리는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은 현재도 한국 사극의 대부분을 촬영하는 촬영장으로 지난 2000년 태조 왕건 촬영장으로 준공됐다. 이후 문경시 지원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변신하여 광화문, 교태전, 동궁, 서운관, 궐내각사, 양반집 등을 추가 건립하여 기존 초가집과 기와집을 합하여 130동의 세트 건물로 구성된 모습을 갖췄다.
이곳 주요 가옥마다 지역 도자기 장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 홍보, 판매하며 각종 체험행사와 이벤트를 연다. 조선시대를 연상하게 만든 드라마촬영장 내에서 조선 선비의 정취와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도자기와 찻사발, 식기 등을 직접 만지고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는 재미도 느껴 볼 수 있다.
맨발로 행복하게 걸어보는 문경새재 황톳길
물론 맛난 차를 한 잔하면서 둘러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도 주어진다. 두어 시간 행사장을 둘러본 다음, 대전 계족산 황톳길과 함께 맨발 걷기(어씽, Earthing) 성지로 불리는 ‘문경새재 황톳길’을 걸어볼 수 있다.
특히 전봇대가 없고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곳으로 유명한 문경새재는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를 오가면 왕복 12km의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 가능하다. 출발지에는 세족이 가능한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길 양쪽으로 연녹색 녹음 아래 황톳길을 걸으며, 길 중간 마주하는 폭포 등 물줄기에 발을 담그는 정겨운 모습도 볼 수 있다.
맨발 걷기를 마치고 발을 씻은 다음, 아래 왼쪽 언덕 위에 있는 ‘옛길박물관’으로 간다. 이곳은 도로와 길의 역사인 삶과 고갯길 문화를 담은 박물관이다. 문경에는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통로(通路)로서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표인 문경새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인 하늘재, 태조 왕건이 피신하며 걸었던 토끼비리와 영남대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유곡역이 있는 곳이다. 예전 주로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향하던 영남 선비들의 과거 길에서 이제는 청춘과 미래를 품고 오르는 도약과 등용문의 길, 그 중심에 자리한 옛길박물관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문경관문, 영남대로, 문경 전투, 경상감사 도입 행차, 문경 아리랑, 지역문화와 의·식·주 생활, 집과 모둠살이, 신앙과 의례, 생업 기술 등에 관한 소장품 및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토기 항아리 등 매장문화재 등에 관한 전시가 열린다. 앞뜰에는 금학사지 삼층석탑, 서낭당, 옹기와 장독대 등이 있다.
도자기와 오미자의 고장, 문경
이제 문경읍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내려오다 보면 우측 개천 건너, 문경대로 2416에 ‘문경 도자기박물관’이 보인다. 이곳은 문경 도자기를 알리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토기, 청자, 백자, 근현대 도자기를 전시·판매하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전시실은 공예관, 다실 체험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1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제작된 청자, 분청사기, 백자를 감상할 수 있고 현대 문경 도예가들의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전통 가마인 망댕이가마, 문경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와 백자 사발, 대접, 접시, 종지, 병, 제기 등이 있다. 별관에는 ‘문경 도자기 홍보판매장’도 운영 중이다. 전통 방식의 장작가마인 망댕이가마를 고수하고 있는 지역 35인 도공들의 모임인 ‘문경 도자기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작품을 상설로 팔고 있다.
근처에는 오미자 와인으로 유명한 ‘오미나라’가 있으니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지역 오미자를 원료로 와인 포함 19종의 술을 제조하는 와이너리로, 와인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 발효실, 증류실, 숙성실, 영상실과 와인 시음판매장으로 구성돼 있다. 오미자 재배과정과 와인 제조 공정 및 시음을 경험할 수 있으며 와인도 구입할 수 있다.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이자 양조 장인으로 알려진 이종기 사장이 생산 개발한 오미로제는 6년이 걸리는 제조공정과 정성만큼 그 품질이 뛰어나 한미 정상회담 등 국가의 다양한 행사에서 공식 만찬주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를 이어 온 가치와 품격
인근에는 9대를 이어 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도예 명가, 국가무형문화재 김정옥 사기장이 운영 중인 ‘영남요’, ‘문경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관’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영남요는 국가무형문화재 7대 백산 김정옥 사기장 보유자, 8대 김경식 사기장 전승 교육사, 9대 김지훈 사기장 이수자를 낳은 도자 가문이다. 오랜 전통과 장인정신으로 조선백자의 가치와 품격을 높이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영남요 1대 김취정은 영조 시대에 활동한 사기장으로서 국가무형문화재 사기장 전수관에 전시되어 있는 발 물레를 처음 제작하여 사용한 인물이다.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도자기 제작 기법을 계승 전수하고 있는 영남요를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어 문경온천 지역으로 이동하면, 대한민국 도예 명인 ‘미산 김선식 사기장’이 운영하는 ‘관음요 도자기 전시판매장’도 둘러볼 만한 곳이다. 경상북도 최고 장인인 그는 현재 문경 도자기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미산은 도자기와 찻사발의 대중화는 물론 가성비 좋은 제품을 대량으로 출시하여 누구나 찻사발을 쉽게 접하고 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뛰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는 찻사발에 커피를 접목하는 고민도 하고 있으며, 중대형 한식당에는 전통 장작가마에서 구운 식기를 50~70% 이상 인하된 가격에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대량 생산방식도 구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