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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①] 5월의 산은 분홍색이다, 지리산 만복대 트레킹
[특집 ①] 5월의 산은 분홍색이다, 지리산 만복대 트레킹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4.04.1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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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와 산철쭉의 중간 빛깔로 어여쁜 지리산의 철쭉을 만나기 위해 만복대를 찾아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진달래와 산철쭉의 중간 빛깔로 어여쁜 지리산의 철쭉을 만나기 위해 만복대를 찾아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구례, 남원] 진달래의 빛깔이 순수한 느낌이라면 철쭉은 조금 더 매혹적이다. 산의 고도와 위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철쭉은 5월에 피고 5월에 진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지만 철쭉은 꽃과 잎이 함께 펴 색감이 좋다. 지리산 만복대의 철쭉은 진달래와 산철쭉의 딱 중간, 그 빛깔이 참말로 어여쁘다.

산에 철쭉이 없다 해도 아쉬울 건 없다. 산 아래와 위는 온도가 달라서 산은 5월이 되어야 신록으로 물이 든다. 신록과 녹음은 또 다르다. 진초록이 되기 전 연둣빛 나뭇잎에 겹겹이 싸인 등산로,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죽어 있던 세포가 꿈틀꿈틀 깨어나는 듯하다. 흙은 돋아난 새싹으로 부풀어 올랐고, 꽃과 신록을 품은 바람에선 그야말로 완연한 봄내음이 난다. 5월의 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색감이 예쁜 분홍색 철쭉.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색감이 예쁜 분홍색 철쭉.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만복대 정상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넘나드는 구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만복대 정상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넘나드는 구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복을 내려주는 봉우리, 만복대
차량 통행이 가능한 지리산 성삼재를 사이에 두고 노고단(1507m)은 매번 사람들의 번잡한 걸음을 감내해야 하지만 서쪽으로 치우친 만복대(1438m)는 그에 반해 조용하고 외로운 봉우리다. 어디서 보든 부드럽게 누운 이 능선은 기와지붕의 곡선을 닮았다. ‘두루두루 복을 내려준다는 만복대 끝엔 한 청년의 비목이 있다. 예전엔 가끔씩 그이의 비목 옆에 한참을 앉았다 오곤 했다.

내 만일 죽어 사라지더라도 내 이름만은 기억해주오 / 내 만일 죽어 사라지더라도 내 모습만은 기억해주오 / 내 만일 죽어 사라지더라도 내 진심만은 알아주오 / 이제 여기 어머니의 품, 지리산에서 편히 잠들어라

등산로 옆에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등산로 옆에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람은 무수한 전설과 사연을 싣고 사방에서 몰아친다. 나는 매번 이곳에 서서 먼저 간 이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언젠가 내게도 닥칠 그 숱한 쓸쓸함에 대해 가만히 되짚어 보곤 한다. 사내의 옆에 있던 여자의 비목은 세월에 쓰러져 자취를 감추었다. 지리산을 좋아했던 그녀도 이 산에 묻히길 원했었다. 산은 쓸쓸한 두 젊은 남녀의 영혼을 끌어안고 봄볕 속에서 조곤조곤, 살아있는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버스 타고 산굽이 돌아서
만복대 산행의 기점은 휴게소가 있는 노고단과 정령치이다. 구례 산동면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두어 곳 있긴 하지만 차량 회수가 어렵고 대중교통도 뜸해 권장할 만한 코스는 못 된다. 노고단(전남 구례)과 정령치(전북 남원)는 행정구역이 나뉘어 자가용 이동이 불편한데 다행히 남원에선 정령치를, 노고단에선 구례를 오가는 버스가 있어 순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한 등산이 가능하다. 순수 산행 거리는 7.3km이며, 휴식 포함 4시간쯤 걸린다.

정령치에서 만복대까지 이어진 등산로 옆으로 철쭉나무가 화사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정령치에서 만복대까지 이어진 등산로 옆으로 철쭉나무가 화사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만복대 직전의 바위 전망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만복대 직전의 바위 전망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정령치 고갯마루에서 북쪽으로 9.5km쯤 가면 지리산, 아니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철쭉 명소 바래봉에 가 닿는다. 바래봉은 워낙 붐비는 곳이니 이번엔 걸음을 남쪽으로 돌려 만복대로 향한다. 걸어보면 안다. 기대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주는 길 위의 감동을. 물론 가끔은 그 감동 앞에 변수가 생기기도 하지만.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뱀을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홀로 온 산행객에게 겁을 준다. 지리산뿐만 아니다. 둘레길 걸을 때도 뱀은 늘 발밑에서 얼쩡거려 걷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지리산에서 만난 뱀들은 거의 다 살모사 종류다. 독사는 사람이 지나도 똬리를 튼 채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나 따라오지 마. 절대 따라오지 마.” 피아골로 내려서다 만난 까치살무사 앞에서 덜덜 떨며 통하지도 않는 대화를 시도했던 적도 있다. 뱀은 두 마리, 아니 유난히 체구가 컸던 걸로 보아 세 마리가 엉켜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체로 모여 몸을 말리던 녀석들을 피해 간신히 내려온 것까진 좋았는데, 이후로는 두리번두리번 뱀을 찾기 바빴지, 산의 풍경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꽃과 잎이 함께 피는 5월 철쭉.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꽃과 잎이 함께 피는 5월 철쭉.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봄에는 철쭉, 가을엔 억새가 장관인 지리산 서북릉.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봄에는 철쭉, 가을엔 억새가 장관인 지리산 서북릉.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래봉만큼 풍성하진 않지만 만복대 철쭉도 못지 않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래봉만큼 풍성하진 않지만 만복대 철쭉도 못지 않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만복대에서 성삼재로 가는 길
정령치에서 만복대는 2km, 1시간 거리다. 산행에 자신이 없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성삼재까지 가지 말고) 만복대만 다녀와도 좋다. 만복대 정상에 서면 산능선 끝으로 지리산 최고봉이 보인다. 둥근 능선 너머, 또 너머의 너머로 아득히 멀어진 봉우리. 태양은 아침마다 저 천왕봉 뒤로 떠오른다. 정상에 올랐으니 이제 성삼재까진 비교적 수월하다.

사실 만복대를 가장 만복대답게 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지리산 주능선을 기준으로 서북쪽에 있다 하여 이곳을 흔히 서북릉이라고 부르는데, 정령치를 기점으로 북쪽인 바래봉은 철쭉, 남쪽인 만복대는 억새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이 산이 억새 필 때만 좋은 건 아니다. 철쭉이 피기 전 산은 먼저 얼레지 같은 야생화를 피운다. 여름의 뜨거움이 사그라들면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가을을 알리고, 그후 황금빛 억새가 빈자리 곳곳 너울대다 혹독한 산중 겨울을 맞이한다.

굳이 꽃이 없어도 연둣빛 숲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굳이 꽃이 없어도 연둣빛 숲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9월엔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가득 피는 만복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9월엔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가득 피는 만복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얼레지, 진달래, 병꽃, 철쭉 등 봄이면 온산이 꽃으로 물이 든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얼레지, 진달래, 병꽃, 철쭉 등 봄이면 온산이 꽃으로 물이 든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만복대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 성삼재까진 5.3km. 넉넉히 3시간쯤 걸린다. 도시락 냄새를 맡고 찾아온 파리 떼로 괴로웠던 정상과는 달리 숲속으로 들어서면 시원하고 상쾌하다. 날씨는 계절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변하지만 꽃샘추위가 완전히 비껴간 건 아니다. 몇 해 전만 해도 5월 초순 지리산에 눈이 내렸다. 하여 바람과 비를 막아줄 재킷 정도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걷다가 돌아본 만복대. 두루두루 복을 내려준다는 봉우리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걷다가 돌아본 만복대. 두루두루 복을 내려준다는 봉우리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작은고리봉(1248m)을 내려서면 도로를 내달리는 차들의 소음이 조그맣게 들리기 시작한다. 등산로는 굽이진 도로 끝에서 끝난다. 성삼재 카페에서 차가운 커피로 목을 축이고 구례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차창 밖으로 조금 전까지 걸었던 만복대 능선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지리산은 다 좋다. 그래서 꼭 다시 오게 만든다.

추천 맛집

남원에선 역시 추어탕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원에선 역시 추어탕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깊고 구수한 맛이 일품! 남원 추어탕
남원에 왔다면 이것저것 고민할 필요 없이 추어탕 하나면 충분하다. 광한루원 근처에 추어탕거리가 따로 있는데 새집추어탕, 현식당, 부산집, 정옥추어탕 등이 유명하다. 어느 집이든 맛은 비슷한 편이다. 새집추어탕은 브레이크타임이 없어 언제든 방문할 수 있다.
추어탕 1인분 12,000
주소 전북 남원시 요천로 1397 새집추어탕
문의 063-625-2443

개운한 맛의 구례 섬진강 다슬기탕.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개운한 맛의 구례 섬진강 다슬기탕.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향긋하고 개운한 섬진강 다슬기탕
남원에 추어탕이 있다면 구례엔 섬진강 다슬기탕이 있다. 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아욱에 된장을 풀거나 재첩처럼 부추를 넣어 끓여낸다. 탕과 밥을 따로 먹는 경우도 있고 수제비를 넣어 먹기도 한다. 섬진강다슬기, 토지다슬기식당, 묵돌이식당 등 토지면 소재지에 다슬기탕 전문 식당이 밀집돼 있다. 읍내엔 부부식당과 선미옥다슬기가 유명하다.
다슬기탕 1인분 1만 원
주소 전남 구례군 토지면 섬진강대로 5048-1 토지다슬기식당
문의 061-781-2642

Travel Tip

지리산 만복대 트레킹, 버스 타고 OK!
남원역에서 정령치를 오가는 버스는 두 개의 코스로 운행되는데 1코스는 광한루원과 둘레길안내센터를, 2코스는 실상사와 뱀사골 등을 경유한다. 하여 꼭 정령치가 아니라도 남원 여행 때 적절히 이용하는 것도 좋다. 요금은 20243월 기준 편도 1,000. 11월부터 3월까진 단축 운행하고, 월요일엔 아예 다니지 않는다(남원여객 063-631-3116). 구례와 성삼재를 오가는 버스는 겨울이 아니어도 종종 운행 정지되므로 출발 전 구례군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해보는 게 좋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성삼재까지 곧장 가는 버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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