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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城지순례] 삼국 투쟁의 정점, 지붕 없는 박물관, 아차산성
[城지순례] 삼국 투쟁의 정점, 지붕 없는 박물관, 아차산성
  • 최보기 객원기자
  • 승인 2024.04.15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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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중요시설이었던 아차산성을 찾아가본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먼 옛날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중요시설이었던 아차산성을 찾아가본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서울] 먼 옛날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큰 싸움을 벌였다. 그 당시 사람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아차산성에 서울 사람들이 자주 오른다. 지금도 찬란한 야경이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백제, 수도를 지키기 위해 산성을 쌓다
고구려 주몽의 아들 온조가 무리를 이끌고 압록강 건너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 상류의 하남(河南) 위례성에 세운 십제국(十濟國)200여 년이 흐른 3세기 무렵 주변의 마한 국가들을 차례차례 점령해 세력을 키우면서 성도를 한성(漢城)으로, 나라 이름을 백제로 바꾼 고대 국가로 성장했다. 한성은 지금의 서울 송파 지역의 풍납동토성, 몽촌토성 일대다. 이때는 북쪽의 고구려는 물론 동남쪽의 신라 역시 고대 국가로 성장함으로써 장차 고구려의 남진과 신라의 북서진은 백제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했다. 한강 일대는 반도 이남의 패권과 직결된 필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백제는 양국의 공격으로부터 수도 한성과 한강을 지키기 위한 군사전략이 필요했을 터,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을 막을 군사기지로서 산성(山城)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차산성은 성곽과 고목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성은 성곽과 고목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성에 봄이면 벚꽃과 진달래가 핀다. 사진 / 광진구청
아차산성에 봄이면 벚꽃과 진달래가 핀다. 사진 / 광진구청

그렇다면 가장 먼저 산성을 쌓을 요충지는 어디였을까? 광주와 송파에서 한강을 건너 광진(광나루)에 솟은 아차산 정상에 올라 보면 더 고민할 이유가 없다. 누가 백제의 왕이더라도 수도권 동서남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이 수비 산성으로 최적지임을 금방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백제인들은 정상 가까운 중턱에 둘레 약 1km로 축구장 열 배 크기의 아차산성(사적 제234), 산성을 감싸는 봉우리 능선 곳곳에는 경비초소 격인 보루들을 쌓았을 것이다. 그리고 산성 안에는 군대의 주둔에 필요한 병기 창고, 숙소 등 여러 시설을 건축했을 것이다. 산성 안에서는 그 유적지와 유물들이 우수수발굴됐는데 물이 흐르는 곳에 산성의 위치를 정한 것도 그 까닭이었을 것이다. 물론, 너무 오래된 역사라 기록이 불분명해 최초 건축 역사는 추측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강의 이름도 서로 달라 백제는 욱리하/한수, 고구려는 아리수, 신라는 한산하/북독이라 했을 때 일이니 말이다.

거대한 바위 위에 고구려정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정자.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거대한 바위 위에 고구려정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정자.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고구려정의 단청 모습.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고구려정의 단청 모습.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INFO 아차산성
위치 서울 광진구 광장동 5-11(광장로)
대중교통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광나루역

아차산성(阿且山城), 5세기 삼국 병사들의 함성이 들린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아차산성은 475년 처음으로 주인이 바뀌어 고구려 차지가 됐다. 이 전투에서 백제 개로왕이 포로가 돼 아차산성에서 처형당하며 아들 문주왕이 웅진(공주)으로 천도, 500년 한성 백제 시대가 막을 내리며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551년 신라 진흥왕의 북진으로 아차산성과 한강의 주인은 다시 신라로 바뀌었고, 진흥왕은 북한산 비봉에 순수비를 세워 한성이 신라 땅임을 공포함으로써 100년 후 삼국통일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이곳을 놓고 계속됐던 삼국의 쟁투에서 평강공주가 사랑했던 고구려 온달 장군도 아차산성에 족적을 남기며 전사했던 것으로 역사는 전한다.

아차산 1보루 남쪽 모습.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 1보루 남쪽 모습.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 2보루에서 바라본 구리시 방향.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 2보루에서 바라본 구리시 방향.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 이제 아차산성으로 올라갈 시간이다.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과 중곡동 용마산, 구리시 망우산은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광주산맥의 끝자락으로 사실 하나의 산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잇닿아 있다. 보루 등 군사 유적도 같이 분포돼 있고 어느 곳에서든 아차산성으로 오를 수 있지만 초행길이라면 광장동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보다 광나루역에서 오르는 코스가 짧고 쉽다. 광나루역 1번 출구를 나와 전방의 고바위 터널 쪽으로 걸으면 곧장 워커힐길이 나타난다. 양방향 1차선인 산중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아차산역사문화홍보관>을 지나 <장로회신학대학교> 정문 맞은편에서 <아차산동행숲길>이 시작된다. 무장애 데크길과 <아차산맨발길>을 지나면 아차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산성까지 거리는 500m인데 아차산이 해발 300m가 채 안 되고 산성은 정상 아래 200m 높이의 중턱에 있어 성인이 보통 30~40분이면 오르는 둘레길 정도다.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오르다 보면 사람의 출입을 막는 경고판과 철책이 나타나고 그 너머로 아차산성 북서쪽 성벽이 약 100m 정도 이어진다. 일반인이 산성의 성벽을 가장 가까이,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성벽을 지나면 고구려정(팔각정), 해맞이광장, 능선의 보루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한강이 가로지르는 수도권 동서남북의 원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차산 3보루 끝부분이다. 이곳이 실질적인 정상이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 3보루 끝부분이다. 이곳이 실질적인 정상이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INFO 아차산역사문화홍보관
위치 광장초등학교 옆 아차산성길 입구
관람 10:00~17:00

휴관 월요일

광진구청 아차산성 투어 프로그램
관람료 무료
예매 인터넷 사전 예약제
문의 광진구청 문화예술과(02-450-7592)

아차산성 안은 출입금지! 구청 답사 프로그램 이용해야
그러나 아쉽게도 철책이 말해주듯 아차산성 안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산성이 있는 곳이 사유지인데다 인적이 뜸하다 보니 여러 안전사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름이면 뱀이 출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산성 안을 기어이 답사하고 싶으면 광진구청에서 운영하는 아차산성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인터넷 사전 예약제에다 참가 숫자가 제한돼 있으므로 이를 참고해 방문일정을 잡아야 한다.

아차산 4보루 가는 길에는 데크가 깔려 있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 4보루 가는 길에는 데크가 깔려 있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 4보루의 치(성벽을 돌출시켜 만든 방어시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 4보루의 치(성벽을 돌출시켜 만든 방어시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광장동 아차산길 초입의 <아차산역사문화홍보관>은 규모는 작지만 아차산성과 일대의 역사, 유적, 유물에 관한 자료들을 알차게 전시해 놓았다. 초행 답사객이나 어린이 동반 부모라면 사전 지식 확보 차원에서 그냥 지나치지 말고 먼저 들르는 것도 아울러 권장한다.

광장동 중심의 아차산 일대에는 아차산성과 보루, 고구려정, 해맞이광장 말고도 범굴사와 삼층석탑, 고구려대장간마을, 큰바위얼굴, 생태공원, 유아숲체험장등 탐방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다양한 시설과 관광지가 있지만 넓은 산 군데군데에 있어 도보 이동이 쉽지 않으므로 미리 적절한 계획을 세우고 접근해야 한다. 광나루역의 아차산길 초입 광장초등학교와 <광장동 인문학 거리> 인근에는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맛집 노포와 카페도 충분히 있다.

아차산의 명품 소나무 모습.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아차산의 명품 소나무 모습.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서울 야경(夜景)’의 지존, 아차산 고구려정 너럭바위
한편, 아차산은 서울 야경의 핫플레이스로 내외국인에게 알려진 지 오래됐다. 아차산성 북쪽 뒤편의 팔각정(고구려정)과 정자 아래 너럭바위, 해맞이광장이 한강과 강남 중심 야경의 포인트인데 내외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사철 일몰을 기다리며 진을 친다. 그곳에서 한번 야경을 보면 서울이 어느 선진국 수도에 뒤지지 않게 화려하고 장대한 도시임을 실감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게 될 것이다.

아차산성에서 서울시내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는 외국인들. 사진 / 광진구청
아차산성에서 서울시내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는 외국인들. 사진 / 광진구청
해맞이공원에서 본 서울의 야경. 사진 / 광진구청
해맞이공원에서 본 서울의 야경. 사진 / 광진구청

굳이 아차산성이나 서울 야경이 아니라도 산성 위 10부 능선의 <1보루>에 서서 사방을 내려다보자! 저 멀리 남쪽의 유장한 산맥 아래 드넓게 펼쳐지는 한강 이남 경기도와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 아래 서울 땅을 둘러보면 전국 제패를 꿈꾸며 군사를 호령하던 삼국의 왕()과 무장들의 웅장한 기상이 가슴에 차오르고 남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장수들과 병사들, 혹은 민초들이 이 산성을 지키다 목숨을 던졌을지 가슴이 먹먹하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은 목숨을 내걸고 나라를 지킨다.

아차산성은 1천년이 더 흐른 지금도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굽어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가 산성을 지키는 돌담 사이사이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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