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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스토리여행’] 천년사찰이 폐사지로... 원주 '법천사지'
[스토리여행’] 천년사찰이 폐사지로... 원주 '법천사지'
  • 노규엽
  • 승인 2016.05.31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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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잡초가 무성한 절터에서 문화재 관리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원주] “지금 눈에 보이는 지역이 모두 법천사 경지였을 정도로 매우 큰 사찰이었죠.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아무런 복원이 되지 않은 점이 무척 아쉬울 따름입니다.”

지금은 폐사지로 남아있는 법천사는 세워진 지 천년이 넘어선 신라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법상종의 대표적인 사찰로 번성했을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유방선이라는 학자가 이곳에서 한명회, 서거정, 권람 등의 제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일본인이 가져간 현모탑은 경복궁 경내로...

그러나 현재는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지광국사현묘탑비와 법당터 및 석탑의 일부 등만 남아있다. 주변에는 절터에서 나온 석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뿐이다. 

법천사지에 있는 지광국사현묘탑비는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놀랍도록 세세한 그림에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비와 마주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묘탑(국보 제101호)은 1912년 일본인들이 가져갔으나 1915년 돌려받아 현재 경복궁 경내에 세워져 있다. 가는 방법은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후로 111에서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느티나무 아래의 돌을 보면 동자승들이 새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들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 느티나무는 거돈사의 역사를 다 알고 있을 텐데, 나무는 말이 없으니 우리가 알 수 없는 거죠.”

거돈사지에는 높은 축대 위에 중문을 세운 흔적과 3층 석탑, 금당터, 강당터만 남아 휑한 벌판으로 남아있다. 3층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거돈사는 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고, 없어진 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없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만 전해진다. 거돈사지 뒤편 언덕에 있는 원공국사승묘탑은 재현품이다. 실재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거돈사지에는 3층 석탑과 금당터, 강당터만 남고 휑한 벌판으로 남아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원공국사승묘탑비. 형식적으로는 신라 양식을 보이나, 세부적인 기법과 모습은 고려시대 양식을 따랐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절 왼편 축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느티나무의 추정 수령은 약 1천년. 양한모 해설사는 "느티나무는 힘들게 돌을 먹고 살며 지금도 푸른 잎을 피우는데, 인간이 만든 절터는 그 실체도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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