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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두대간종주⑥] 산행을 하며 숲을 생각한다, 한강기맥-숲
[백두대간종주⑥] 산행을 하며 숲을 생각한다, 한강기맥-숲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4.10.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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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한강기맥 코스 : 농다치고개 -> 유명산 -> 용문산 -> 신당고개 -> 갈기산 -> 금물산 -> 상창고개

[여행스케치=가평] 언론인 고도원은 “나무는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고, 시인 이영진은 “숲은 어린 짐승을 기른다”고 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숲에 대해 많은 말을 했습니다. 인류에게 숲이란 무엇인가? 

저는 숲을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예 숲에서 살았지요. 집이 산밑에 있어서 틈만 나면 친구들과 산에 올라 산토끼를 잡고, 소나무 위에 올라가 산새나 비둘기의 알을 훔치고, 꿩을 잡거나 꿩알을 훔쳐다 삶아 먹고, 고라니 새끼도 잡았습니다. 꽃을 따먹기도 하고, 칡이나 더덕, 약초를 캐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띠뿌리를 캐먹고, 찔레줄기를 꺾어 먹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솔가지를 줍거나 마른 솔잎을 갈퀴로 긁어다가 땔감으로 쓰기도 했지요. 청년시절에도 틈틈이 마을 뒷산에 올라 사색을 즐겼습니다. 숲을 헤집고 다니며 잔뼈를 키웠다고 해야겠지요.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다시 숲을 생각합니다. 나에게 숲이란 무엇인가? 하루에 20km 안팎의 숲길을 걸으며 묻습니다. 숲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숲으로 가는 걸까?

유명산 정상은 민둥산이고 넓은 임도가 놓여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유명산 정상은 민둥산이고 넓은 임도가 놓여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대간 큰 줄기보다 한강기맥 쪽 숲이 더 짙어 보입니다. 경기도 양평 농다치고개에서 유명산, 용문산을 거쳐 비슬고개, 강원도 홍천 신당고개, 갈기산, 금물산, 상창고개까지 가는 동안 많은 숲길을 걸었습니다.        

유명산에는 제법 폭이 넓은 임도가 있어서 정상까지 차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마주쳤습니다. 잡목과 숲길을 걸어 유명산 정상에 올랐을 때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습니다. 옛날에 이곳에서 말을 길러 마유산이라 불렸다지만 나무는 없고 어린 풀만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씁쓸했습니다.

산중턱에 깊은 상처를 낸 임도가 숲의 생태를 흔들고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산중턱에 깊은 상처를 낸 임도가 숲의 생태를 흔들고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지금은 행글라이딩을 하는 활강장으로 쓰이고 있다지만 숲이 없는 산과 빨간 흙이 드러난 임도는 여행객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임도라니? 임도(林道)라고 쓰는 모양인데 제사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산불감시 따위 산을 관리하거나 산에서 벌목하여 나무를 실어낼 때 사용하는 찻길이지요. 산이나 숲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거나 사용하는 길이 아니라 나무를 베어내기 위한 길이 아닐까요? 임도 때문에 산의 살가죽이 찢겨나간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임도를 따라 가는 동안 길가에는 민들레가 하얀 꽃씨를 바람에 날리고, 소나무들이 새순을 키우고, 찔레꽃이 하얗게 수풀을 밝히고 있더군요. 생명이 있는 식물은 해마다 새로이 키를 키운답니다. 임도를 따라가다 용문산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정상에 군인들이 대문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군부대에서 튼튼한 철조망까지 쳐놓고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하는 관계로 정상에 바로 오르지 못하고, 철조망을 우회하여 앞길을 재촉해야 했지요. 비슬고개까지 간 날은 습도가 높은 날이었습니다. 숨이 컥컥 막히더군요. 그래도 국토를 사랑한다고 말한 수 차례의 고백 때문에 철조망에 매달리면서도 산행을 계속 했습니다.

발 아래로 굽이치는 한강 북쪽 산하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백두대간을 타는 동안 수 차례 군부대를 만나고, 출입금지구역을 만날 거라고 합니다. 이미 거쳐오기도 했고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내 나라 땅을 내 발로 딛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습니다.

나무들끼리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나무들끼리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숲에도 폭군이 있고 서열이 있다
숲은 수풀과 나무로 이루어져 있지요. 고갯마루나 도로변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면 한동안 거친 수풀을 만납니다. 칡넝쿨이나 산딸기 넝쿨이 발목을 붙들기도 합니다. 숲에 들어가기 전에 풀 이야기를 먼저 할까요.

풀은 한해살이 풀과 여러해살이 풀이 있지요. 냉이나 민들레처럼 씨앗으로 번식하는 한해살이 풀이 산의 가장 아래쪽에 있고, 그 위쪽에 쑥이나 망초, 억새처럼 뿌리로 생명력을 이어가는 풀들이 살지요. 그 위에 넝쿨과 줄기가 강한 식물들이 살고, 그들 위에 많은 빛을 필요로 하는 키 작은 나무들이 삽니다.

좀더 올라가면 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 층층나무, 신갈나무나 떡갈나무 따위 참나무류가 살고, 그 위에 많은 빛이 없어도 살아가는 서어나무나 박달나무 등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숲을 이루는 나무들은 대부분 군락 생활을 합니다. 끼리끼리 모여 산다는 거지요. 전문가들은 나무들이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빛과 땅을 빼앗기 싸움을 벌인다고 합니다.

깊은 산에 아름드리 소나무는 있으나 어린 소나무는 없다. 햇빛이 모자라서 자랄 수 없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깊은 산에 아름드리 소나무는 있으나 어린 소나무는 없다. 햇빛이 모자라서 자랄 수 없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거의 모든 식물은 빛이 없으면 죽습니다. 이파리에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땅을 많이 차지하고, 더 오래 산다는 거지요. 저 아래 사는 식물과 산 중턱, 계곡과 꼭대기에 사는 나무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는데 치열한 생존경쟁과 영토경쟁 탓이랍니다. 힘이 있으면 토양이 좋은 곳에서 살고, 힘이 없으면 토양이 나쁜 곳에서 위태로운 삶을 사는 거지요.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나무는 활엽수입니다. 층층나무나 참나무,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등등. 이들은 숲속의 폭군인 셈이지요. 이들 옆에는 소나무나 전나무, 잣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발도 붙이지 못하고 말라죽습니다. 있어도 키가 아주 크거나 못 생겼습니다. 경쟁자들보다 월등히 크고 힘이 세지 않으면 폭군들의 포위망에서 살아 남지 못합니다. 우리 산에서 소나무들이 사라지는 이유가 솔잎 혹파리병 탓이기도 하지만 생태계의 질서 때문이지요.

산 능선에서 암봉을 마주할 때마다 바위틈에서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는 못생긴 소나무들을 만나게 됩니다. 재주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쫓기고 쫓기다 그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종족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지요. 햇빛을 많이 받고 수분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 활엽수는 거기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나무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래서 목조건물에서 살던 옛날 사람들은 소나무 숲을 보호했답니다. 다른 수종들이 얼씬도 못하게 하고 소나무들끼리 살게 한 거지요. 선조들의 사랑을 받고, 민족 정신과 함께 한다는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잡목을 제거하고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등반객들. 숲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보금자리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등반객들. 숲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보금자리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나무들의 생애는 인류와 엇비슷하다
산행을 하는 동안 심심찮게 산불 흔적을 마주합니다. 굵은 나무들 밑둥에 검게 탄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아래서 숯이 뒹굴기도 하거든요.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많습니다. 키 작은 활엽수들이 침엽수 아래 토양 속에 식물의 눈을 감추고 있다가 침엽수가 사라지자 급속도로 발아해서 저희들 세상을 만든 겁니다.

그 틈새로 고사리나 취, 잡풀 따위 수풀도 왕성하게 번식하지요. 그러나 수풀은 활엽수들이 몸집을 키우면 곧 모습을 감추고 말겠지요. 숲이 깊은 곳에 가면 야생화가 귀한 것도 이런 때문입니다. 산불을 만나지 않는다면 나무들은 저마다 생애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무는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탄생과 성장, 상처나 질병, 노화에 이은 사망까지의 주기를 갖고 있지요. 나무가 태어나서 죽게 될 때까지 기간만 다를 뿐 사람들의 그것과 엇비슷하답니다. 숲속의 식물들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깊은 숲속에는 낙엽이 쌓여 있습니다. 저마다 제 몸을 살리기 위해 이파리를 떨어뜨린 것이지만 그 낙엽이 썩으면서 수많은 미생물을 만나 분쇄되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숲을 지키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지요. 참고로 한 줌 정도 흙 속에는 미생물이 60억 개 이상 있답니다. 내친 김에 씨앗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식물에서 떨어진 씨앗들이 모두 새 생명을 움틔우는 것은 아닙니다. 씨앗이 영양분이 충분하고 기후가 적절하면 싹을 틔우지만 대다수는 오랜 기간 휴면기에 들거나 썩어버립니다. 대부분 곰팡이나 다른 분해자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새나 짐승들의 먹이가 되지요.

뿌리깊은 나무도 쓰러져 흙이 된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뿌리깊은 나무도 쓰러져 흙이 된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산행을 할 때마다 숲속에 쓰러져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을 만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쓰러진다는데… 뿌리 깊은 나무도 세월에는 어쩔 수 없고, 영원한 생명이란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영원한 권세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숲은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에게도 많은 것을 제공합니다. 나무의 잎이나 씨앗, 꽃, 과실, 그리고 뿌리는 다양한 먹거리입니다. 나무는 또한 많은 생명체를 위해 보금자리와 그늘, 은신처를 제공하지요. 큰 나무에 있는 구멍이나 뿌리 주변은 둥지나 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처가 됩니다. 병이나 상처 때문에 죽어 쓰러진 나무들이 가지고 있던 양분과 다른 요소들은 토양으로 환원되지요. 이것이 생명의 순환입니다.

불에 탄 소나무 밑동.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불에 탄 소나무 밑동.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식물들의 자기 방어와 인류의 살아 남기
많은 사람들이 삼림욕을 하러 다닙니다. 피톤치드를 마시고 쏘이러 다니는 거지요. 피톤치드는 식물들이 뿜어내는 분비물입니다. 식물들은 끊임없이 병원균에게 공격을 받지만 도망갈 수 없고, 스스로 물리치기도 어렵지요.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금방 균의 공격을 받아 곰팡이가 생기던가 썩어 버린답니다. 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 이들 병원균에 대해 저항력을 갖추려고 냄새나는 분비물을 방출하는 겁니다.

피토(phyto)는 식물, 치드(cide)는 죽인다는 뜻이 담긴 합성어 피톤치드. 숲속에 들어가 보면 상쾌한 냄새가 숲 전체를 감싸고 있지요. 숲속에서 삼림욕을 즐기는 건 바로 나무가 발산하는 피톤치드를 마시는 건강법이지요. 삼림욕의 효과는 스트레스 해소, 심폐기능 강화, 상쾌함을 느끼는 정신건강 등 여럿이지요. 그런데 숲은 사람들에게 이런 정도 선택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존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답니다.

치산 녹화를 들먹거릴 것도 없이 숲이 깊어야 물이 깊으니까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인 중국,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모두 큰 강의 하류였습니다. 큰 강은 큰 숲이 있었기에 존재했겠지요. 하지만 이 지역들은 오늘날 모두 황폐화되었거나 사막이 되어버렸습니다. 숲이 사라진 탓이랍니다.

한강기맥 금물산 정상에서 들녘을 바라보고 있는 등반 대원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한강기맥 금물산 정상에서 들녘을 바라보고 있는 등반 대원들. 2004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사람들이 건축물이나 배를 만들고, 식량 생산을 빌미로 산을 개간하고, 땔감을 얻느라고 숲을 파괴한 것입니다. 10여년 전 중국의 압록강변에서 북한쪽의 벌거숭이 민둥산들을 보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습니다. 산을 개간하여 식량을 생산하겠다고 벌거숭이산을 만들고, 산꼭대기까지 강물을 퍼나르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민둥산에 걸려 있던 ‘위도한 지도자 아무개의 유훈을 받들어 식량을 증산하자’는 표어가 무색하게 지금 북한 사람들은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니까 그 우울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숲은 인류의 보금자리입니다.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이며,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줘야 할 자산입니다. 사랑이 지나쳐도 아깝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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