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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사찰] 1천4백여 번째 가을에 만나다, 오어사
[이달의 사찰] 1천4백여 번째 가을에 만나다, 오어사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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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호숫가 단풍이 아름다운 사찰, 오어사.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호숫가 단풍이 아름다운 사찰, 오어사.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오어사 동종은 신라 양식을 한 고려종으로 지난 95년 오어지 상류 준설작업 중에 발굴되어 보물로 지정됐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오어사 동종은 신라 양식을 한 고려종으로 지난 95년 오어지 상류 준설작업 중에 발굴되어 보물로 지정됐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포항] 오어사는 경북 포항시 오천읍에 있습니다. 운제산 동쪽 기슭 오어지란 커다란 저수지 옆에 있는 작은 사찰입니다. 1천4백년이나 된 이 작은 사찰에 신라의 고승 혜공, 자장, 원효, 의상 등의 발자취가 담겨있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작년 가을, 단풍 사진이나 찍어두자고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을 찾아갔습니다. 노랗고 빨간 단풍과 파란 하늘, 수북한 낙엽이 내뿜는 가을 정취에 흠뻑 젖은 하루였습니다. 계절이 주는 감동을 부여안고 상원사에서 나오는 길에 터덜터덜 걸어가는 뚜벅이 여행자를 태웠습니다. 혼자서 십여 일째 이곳저곳 다니고 있다는 그 여행자에게서 오어사(吾魚寺)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어사가 참 좋았어요….” 다닌 곳 중에 기억 남는 곳을 물었더니 오어사라고 답하는데 눈빛이 흐트러지며 아련한 빛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여기 있는 데 마음은 어느새 그 곳으로 가버린 듯한, 홀린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곳에 무엇이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 오어사를 찾아갔습니다.

오어사로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추천할 만하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오어사로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추천할 만하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포항 영일만쪽 오천읍에서 들어가는데 읍에서부터 사찰이 있는 운제산까지 가는 길이 드라이브코스로 소개해도 좋을 만큼 운치가 있었습니다. 쭉 뻗은 길을 따라 달리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입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넓은 저수지를 만나니 탄성부터 나왔습니다.

지난 61년에 계곡을 막아 만든 호수인데 ‘오어지’라는군요. 연못 지(池)자를 쓰기에는 좀 넓어 호수라고 해야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호수를 끼고 들어가는 신작로는 깔끔했습니다. 지나는 차도 없어 여기저기 둘러보며 한가로이 가는데 갑자기 길에서 무엇인가 작은 것들이 발딱 일어나더니 떼로 우르르 몰려 길을 건너갑니다. 엉겁결에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면서 보니 낙엽들이었습니다. “저 녀석들이~.” 풍광에 취해 몽롱했던 정신이 무단횡단을 하는 낙엽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오어사 맞은 편 계곡으로 30분 정도 들어가면 산세가 아늑한 자리에서 원효암을 만날 수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오어사 맞은 편 계곡으로 30분 정도 들어가면 산세가 아늑한 자리에서 원효암을 만날 수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오른쪽으로 절벽, 왼쪽으로 연못을 끼고 구불구불 가는 길 끝은 아담한 주차장입니다. 주차장 한쪽이 긴 담장인데 그 너머로 전각들이 있었습니다. 담 옆의 범종루는 아예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잠시 적응이 안되었습니다. 산 속의 사찰만 보다가 평지에 있는, 마치 담 너머에 이웃집 같은 사찰은 처음이었습니다.

왼쪽 돌담길로 돌아가니 산문이 나옵니다. 오어사. 유래를 읽어보니 ‘원효와 혜공 스님이 법력으로 죽은 물고기를 살렸는데 두 마리 중 한 마리만 살아나자 서로 내 물고기라 했다’는 내용입니다. 당대 고승들이 그런 실랑이를 했다는 게 미심쩍었습니다.

대략 직사각형의 부지 한가운데 대웅전이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대략 직사각형의 부지 한가운데 대웅전이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오어사는 밖에서 안이 다 들여다보인다. 입구에 사천왕상 대신 탱화가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오어사는 밖에서 안이 다 들여다보인다. 입구에 사천왕상 대신 탱화가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혹 젊은 수도승 때였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삼국유사에 원효와 혜공이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는데 원효가 갑자기 바위틈에 똥을 누었고, 이를 본 혜공이 농으로 ‘여분오어(汝糞吾魚)’라고 했답니다. ‘그대의 똥, 나의 물고기’란 말 같은데 그 속뜻을 헤아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홍익출판사에서 낸 삼국유사의 번역자 고운기씨는 현지에서 들은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두 스님이 물고기를 잡아먹었는데 원효는 똥이 되어 나왔고, 혜공은 물고기가 그대로 나왔다는 이야기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하긴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 7백 년 전 사람이고, 원효와 혜공은 그로부터 7백 년 전인 사람이니 그 진정한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아는 바가 부족해 선사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답답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두 사람이 당시로는 특이한 스님이었다는 겁니다. 신라시대 승려는 귀족계급이었지요. 그런데 이 두 스님은 저자거리에서 대중과 함께 어울리며 불법을 전했답니다. 혜공은 어렸을 때부터 갖은 이적을 보였는데 행동 또한 기이해서 저자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늘 등에 삼태기를 지고 다녔는가 하면, 생사에서 자유로웠다고 합니다.

정문으로 돌아들어가는 돌담길이 아늑하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정문으로 돌아들어가는 돌담길이 아늑하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말년에 영일만 항사사에 들어와 지냈는데 이때 좀 떨어진 계곡에 암자를 짓고 경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여 책으로 펴내던 원효가 여러 가지를 물어보며 왕래를 하였답니다. 소박했던 두 스님의 기풍이 남아 있는 것일까요? 절집을 들어설 때 만나는 무시무시한 사천왕상이 이 곳에는 친근감을 주는 벽화로 되어 있습니다.

절은 작아서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뒤로 절벽인데 그 꼭대기에 작은 기와지붕이 보일락 말락 합니다. 자장암입니다. 자장율사가 거처했던 곳이지요. 자장은 신라의 귀족계급인 진골출신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미국에 해당하는 당나라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승려이지요. 율사란 칭호는 유학을 다녀온 자장이 불교문화가 만발했던 당나라의 선진(?) 제도와 계율을 들여와 정비한데서 비롯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장암은 왠지 높은 곳에서 고고하게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자장암 적멸보궁. 태국승왕이 보관했던 석가모니진신사리분이 건너와 98년 이곳에 봉인됐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자장암 적멸보궁. 태국승왕이 보관했던 석가모니진신사리분이 건너와 98년 이곳에 봉인됐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대중을 품어 불법을 전한 원효대사가 포근한 계곡의 암자에 거처한 것과 비교됩니다. 자장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비탈길입니다. 빠른 걸음으로도 3-40분 족히 걸립니다. 오르고 보니 저 멀리까지 천하가 내려다보이는 듯 합니다. 어쩌자고 이 비좁은 절벽 위에 암자를 세웠을까? 전각을 나서면 복도만한 작은 통로가 있고 그 옆은 곧바로 천길 낭떠러지입니다.

풍수지리적으로 용두혈 자리라는데 용이 날아다니는 중이었는지 마침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몸도 마음도 허술한(?) 중생의 입장에선 한순간에 날아갈까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귓전에서 사정없이 바람소리가 왱왱거리는 통에 정신이 산란하여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바람을 피해 뒤로 돌아가니 적멸보궁이 나왔습니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셔야만 적멸보궁이라 칭할 수 있습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석가모니 진신사리 100과를 가져와서 상원사를 비롯한 5군데 사찰에 나누어 모셨다 해서 5대 적멸보궁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자장암에 적멸보궁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은지라 가까이 다가가서 경위를 읽어보았습니다. 원래 태국승왕이 보관했던 진신사리분인데 유학을 간 스님께서 나누어 받아 가져왔고 그중 몇 과를 자장암에 기증하여 지난 98년 이 자리에 봉인하였다고 합니다.

자장암 나무에 걸린 종. 비록 작지만 한번 울리면 온 세상으로 그 음이 퍼질 듯하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자장암 나무에 걸린 종. 비록 작지만 한번 울리면 온 세상으로 그 음이 퍼질 듯하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아무래도 자장율사는 석가모니불과 인연이 깊은 모양입니다. 세찬 바람이 그치질 않으니 마침내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을 지나는 바람은 소리도 무성합니다. 뛰다시피 서둘러 자장암을 내려오는데 평지 가까이 이르러서야 귓전에 윙윙거리던 바람소리의 여운이 사라졌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좀 가라앉는데 문득, “바람이 두렵더냐?”는 물음이 머리 속에 쑥 들어왔습니다.

낙엽이 한가로이 떠다니는 오어지를 내려다보니 왠지 부끄러웠습니다. 뭔 잘못이 많아 그리 겁났을까요? 아쉬움이 남아 오어지 근처를 서성이다가 오늘 둘러본 오어사는 다음 해에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야 독자들도 사방을 쓸고 다니는 빨갛고 노란 낙엽과 시시각각으로 차가워지는 오어지, 그리고 그 세찬 바람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천길 절벽에 올라서 세상을 굽어보는 자장암.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천길 절벽에 올라서 세상을 굽어보는 자장암. 2004년 10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그리고 일년이 지나 이렇게 기사를 씁니다. 언제 다시 오어사를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기억 속의 오어사는 이랬습니다. 물론 지금 가면 또 다르겠지요. 그날 돌아오는 길에 오어사를 소개했던 뚜벅이 여행자의 눈빛이 떠올랐는데, 그 여행자는 도대체 어떤 오어사를 담아 갔는지 잠시 궁금해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수많은 오어사 중에 하나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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