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통영] 6~7월쯤 통영 부근의 바다가 쌀뜨물처럼 뿌옇게 흐려질 때가 있다. 굴들의 사랑의 분비물 때문이다. 수놈이 방출한 정자와 암놈이 방출한 난자는 바다를 유영하다 체외수정을 하게 된다. 그 수정란으로 바다가 흐려질 정도로 통영 바다는 굴 양식장으로 뒤덮였다.
아침 8시 통영 동호항 연안 굴 양식장. 뗏목 위로 굴이 끝도 없이 올라오고 있다. 갈고리로 연신 부표를 끌어당기고, 매달린 줄에 붙어온 굴 무리를 떼내 컨베이어벨트에 떨어뜨리는 손길이 바쁘다.
본격적으로 살이 오른 겨울철 굴수확이 한창이다. 김상범(35)씨와 두 명의 일꾼은 3시간 정도 작업해 알굴 1.5톤을 거둬들였다. 도시 생활을 접고 아버지가 하는 굴양식에 뛰어든 지 2년 됐다는 김씨의 표정이 밝다.
올해도 예년처럼 수확이 좋기 때문이다. 품질은 좋으냐고 물으니, “바다가 워낙 깨끗하니까요…” 하며 웃어 보인다.
굴은 찬바람이 불어야 제 맛이 난다. 11월에서 3월 사이에 나는 굴은 살이 완전히 올라 완전식품이라는 우유에 자주 비유되곤 한다. 수온이 낮아지면서 추위를 견디고 번식을 위해 글리코겐 같은 영양분을 최대한 축적하기 때문이다.
남해안에서는 주로 수하식이라는 굴 양식법이 사용된다. 부표에 매단 줄에 굴을 꿰어 바다 한가운데서 자라게 하는 방식이다.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해안의 돌에 들러 붙여 키우는 투석식을 사용한다.
둘 다 시설만 해놓으면 자기 스스로 자라는 방식이므로 인공 사료를 먹여 키우는 것은 아니다.
“남해안 굴이 더 알이 굵고 통통하며 영양분도 많지요. 서해안 돌굴은 만조 때만 바닷물에 잠기기 때문에 플랑크톤을 적게 섭취하지만, 남해안 수하식 굴은 자라는 내내 바다에 잠겨 있어 플랑크톤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이지요.”
40년 동안 굴을 양식한 김국석씨가 통영 굴 자랑을 한다. 간만의 차가 적은 남해안은 태풍의 영향을 적게 받는 다도해인데다 강수량도 적당해 현재 생산되는 굴의 95%는 남해안의 수하식굴이다.
채취한 굴은 굴 수협의 검사실에서 신선도 검사와 패류독소 검사를 마쳐야만 위판된다. 이상 소견이 나오면 해당 양식장의 굴은 위판은 물론 채취도 금지된다.
통영의 수하식 굴 양식장 면적은 남해안 전체 굴 양식장 면적의 3분의 1에 달한다. 주변의 거제와 고성의 양식장 면적까지 합치면 3분의 2 정도 된다. 거제와 고성, 그리고 남해의 굴이라 할지라도 일단 통영으로 모인다.
껍질을 까고 다듬는 곳인 박신장이 통영에 모여 있고, 위판되는 곳도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통영의 굴수협 위판장이기 때문이다. 전국에 유통되는 굴의 절반 이상이 통영을 거쳐 나가니, 통영의 겨울 바다는 굴로 시작해 굴로 끝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