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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⑥ 선암사, 발길ㆍ눈길 닿는 모든 곳에서 보물을 발견하다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⑥ 선암사, 발길ㆍ눈길 닿는 모든 곳에서 보물을 발견하다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9.10.16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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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아래 '장군대좌터'에 자리 잡은 사찰
건물들이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
인간을 배려한 사찰 풍경에 감동
<편집자 주>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개최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됐다. 이에 해당하는 사찰은 영주 부석사, 양산 통도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등 총 7곳. 각 사찰이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역사적 이유와 사찰문화 등을 면면히 살펴본다.

[여행스케치=순천] '명산에는 대찰이 있다'는 말이 있다. 좋은 기운을 지닌 산에는 큰 절이 들어서 있다는 공식과도 같은 말이다. 이 말은 선암사에도 당연하게 적용된다.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이면서 순천을 대표하는 명산인 조계산 아래 자리해 1000년을 넘게 이어온 역사를 지녔다.

조계산 자연으로 들어서며 시작되는 절 탐방
지금까지 사찰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사찰일 수 있지만, 선암사는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드라마 <용의 눈물> 등이 촬영되었던 오래된 명사찰이다. 예부터 조계산 등산로의 기ㆍ종착점이자 최근에는 순천 남도 삼백리길 코스 중 한 구간에 속해있는 선암사는 초입부터 걸어서 방문하기 좋도록 풍부한 자연을 지니고 있다. 

주차장을 벗어나 매표소로 향하는 숲길에 들면 비포장도로가 펼쳐지며 차보다는 사람이 걷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자연을 즐기며 걷는 이들이 자동차 지나가는 걸 유독 싫어한다"는 매표소 직원의 말에 덧붙여 선암사 초입은 길 옆 아래로 흐르는 계곡과 하늘을 가려주는 산과 나무의 그늘 아래서 유유자적하게 걷기 좋은 길이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선암사 풍경으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승선교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선암사 진입로는 차보다는 사람이 걷기 좋게 되어있다. 사진은 강선루.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선암사 부도비 등을 모아 놓은 작은 공터를 지나면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지개 모양의 다리(홍예교)인 승선교는 눈으로 보이는 풍경이 빼어난 것도 일품이지만, 반원형으로 뚫린 다리 아래로 계곡물이 콸콸 흘러 걸어오느라 흘렸던 더위도 씻어준다. 이곳은 예부터 국내 사진작가들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어왔던 명소이기도 하다.

승선교 뒤편의 강선루를 지나 독특한 모습의 연못인 삼인당을 돌아가면 그제야 사찰 건물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아담한 선암사 일주문이 입을 열고 있다. 커다란 위용을 자랑하는 수많은 사찰들의 일주문과 조금 다르게 여느 양반댁 대문 같은 선암사의 일주문은 누군가의 집에 초청을 받고 방문하는 듯한 기분으로 절에 들게 해준다.

Info 선암사
주소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수행을 방해하는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는 터
선암사는 백제시대인 529년 아도화상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선암사 승범스님은 "아도화상이 조계산 자락에 비로암을 창건하며 개산하셨고, 신라시대인 861년에 도선국사께서 이 자리에 본격적으로 개착하셨다"며 "고려시대 때는 의천대각국사께서 크게 학풍을 날리시며 2000명 정도의 스님들이 수행정진하고 가람의 숫자가 100여 동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알려준다.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웅전과 동ㆍ서 삼층석탑.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불교가 국가 정책에 의해 핍박당했던 조선시대를 지나며 사찰들이 많이 위축되고 축소되어왔죠. 그럼에도 선암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도량이 폐허가 되었던 몇 십 년을 제외하고는 1490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일주문에서부터 눈치채볼 수 있듯이, 선암사는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른 가람 배치를 가지고 있다. 경내 입구인 일주문이 중앙 쪽에 자리하지 않고 가장 동쪽 끝에 치우쳐 있는 점과 눈에 보이는 첫 공간으로 곧장 이동하면 사찰의 중심 구역인 대웅전 마당이 나온다는 점도 그렇다. 즉, 여타 사찰에서 거의 가지고 있는 해탈문이나 사천왕문이 없이 일주문에서 곧장 대웅전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승범스님은 이를 풍수지리에 능통했던 도선국사와 연관 짓는다.

"선암사가 있는 자리를 장군대좌터라고 부릅니다. 조계산 상봉인 장군봉에서 기를 받는 장소이기에 수행정진을 방해할만한 기운들이 침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암사에는 사악한 무리들을 퇴치하는 문인 금강문이나 해탈문, 사천왕문 등이 없습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선암사 일주문은 크지 않아 여느 양반집 대문처럼 느껴진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운수암 가는 길목에 있는 중수비.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또한, 선암사의 사찰 건물들은 크지가 크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근래에 지은 건물들이 별로 없는 이유도 있지만, 최근에 필요에 의해 지은 건물도 1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게 최대라고. 승범스님은 “옛날에는 난방 등의 문제로 사찰 건물들을 크게 짓지 않았다”며 “선암사는 그에 맞춰 새로운 건물들을 짓더라도 작게 지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선암사는 문화재와 건축물을 조사하는 전문가들에게서 “원형 보존이 제일 잘 되어 있는 사찰”이라는 평을 듣는다.

선암사는 오랜 옛날부터 차를 재배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도 사찰 주변으로 약 1만 평 이상의 자생차밭으로 보유하고 있고, 꾸준히 전통 방식으로 차를 재배해오고 있다. 승범스님은 "선암사의 차는 흔히 녹차라 부르는 일본 보급종이 아닌 인도나 중국을 통해 들어온 아삼종이다"라며 "차를 재배하고 만드는 일은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지만, 전통과 맥을 승계한다는 고집으로 이어오고 있다“말한다. 그래서 양이 많지 않기에 손님에게 대접하거나 선물용으로 사용하는 정도로만 유지되고 있다고. 운 좋게 인연이 닿는다면 선암사에서 차를 맛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겠다.

마음이 이끄는 것을 보고 가면 된다
선암사 탐방은 건물과 건물 사이로 길이 막힌 곳이 거의 없이 사방으로 열려있다. 처음 방문한 입장에서는 어디로 움직여야할지 고민에 빠질 수도 있지만, 관람 순서를 딱히 정할 것 없이 발걸음이 가는대로 둘러보면 된다. 승범스님도 "무엇이 특별히 더 좋다고 추천할 이유가 없이 도량 자체, 나무 하나, 돌 하나가 우리의 문화유산이고 고귀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느 곳을 특정해서 보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조금 더 끌리는 곳을 보면 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문화재 정도는 알고 보면 좋다. 먼저 대웅전 앞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석탑은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으로 보물 제395호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크기와 제작법이 같아서 같은 사람의 솜씨로 동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암사에서 재미있는 문화재 중 하나인 ‘깐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선암사에서 재미있는 문화재 중 하나인 ‘깐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비록 보물은 아니지만 선암사에서 유명하기로 손꼽히는 ‘깐뒤’도 있다. 변소를 이르는 뒷간을 옛 표기방식으로 적어놓은 것을, 누군가 잘못 읽어 ‘깐뒤’라는 별명이 생긴 것이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변소로 이용되는 건물이지만, 맞배지붕을 한 고풍스러운 목조건물을 유지하고 있어 전남문화재자료 214호에 지정되어 있다. 

팔상전과 원통전, 조사전이 모여 있는 구역 뒤편으로는 자연적인 아름다움으로 인정받은 천연기념물도 있다. 원통전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홍매화다. 비록 꽃이 피는 봄에야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명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음 방문을 기약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홍매화 나무가 줄을 지은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운수암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온다. 작은 수행 암자인 운수암까지는 가지 않아도 되지만, 오솔길 초입에 보이는 중수비까지는 구경을 할 만하다. 특히, 두 기의 중수비 앞으로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모양새만 봐도 묘한 신비함이 느껴진다.

선암사의 도량 구조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홍매화 나무가 줄을 지은 각황전 돌담길. 봄에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잘 꾸며진 큰 정원 같다는 평을 듣는 선암사의 풍경. 사진 / 정용권 작가

이외에도 선암사에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풍경들이 많다. 전각 앞으로 작게 조성된 꽃밭이며,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돌담, 낡았지만 지친 다리를 쉬어갈 수 있는 나무 벤치 등 인간의 손을 거친 것들이지만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들이다. 이런 풍경으로 인해 선암사를 방문한 사람들이 “아주 오래된 고택 같다”는 말이나 “잘 만들어진 큰 정원 같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단다. 승범스님은 “이곳에 사는 인간을 배려한 도량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암사는 부처님을 위한 배려를 70%, 인간을 위한 배려를 30%로 두어 조성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미 깨달은 분이시고, 중생들은 앞으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미래불에 해당되기 때문이죠. 즉, 선암사는 부처님을 모시는 목적도 있지만, 미래의 부처님에게도 많은 할애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선암사는 오랜 시간을 두고 머무르고 싶은 절이다. “이곳을 불교 유산이라 한정짓지 말고 한국의 유산이라는 점을 받아들여 전반적인 도량의 기운을 얻어갔으면 한다”는 승범스님의 말처럼, 선암사는 한국의 사찰을 탐방하는 일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곳이다.

※ 본 기획 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하여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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