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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② 추억 기차여행 Memorys] 향수를 부르는 기차 장항선 굽이굽이 옛 정취 의 아날로그 여행
[특집 ② 추억 기차여행 Memorys] 향수를 부르는 기차 장항선 굽이굽이 옛 정취 의 아날로그 여행
  • 이수인 기자
  • 승인 2006.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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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장항선의 역사 중 가장 오래된 청소역이 이제 곧 문화재로 등록된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여행스케치=장항] 터널을 지날 때마다 어둠 속에서 짓궂은 장난을 쳤던 수학여행은 마냥 즐거웠다. 신입생때 MT로 갔던 대성리의 떠들썩한 기차여행은 설레었다. 심각하게 진로를 고민하던 대학 3학년 때 춘천역 광장의 관광지도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던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터는 참 쓸쓸하고 허탈했다. 과거 속으로 달려가는 허리 굽은 장항선은 어떤 추억이 될까.

마음이 허허로울 때 나를 향해 떠나보라는 누군가의 조언을 따라 장항선을 탔다. 1931년 개통 당시 충남선으로 불렸다고 하니 지금 같은 다양한 탈것이 없었던 시절 장항선은 이 고을 저 고을 구석구석 지나며 충남사람들의 충실한 발이 되어주곤 했을 것이다. 

장날이면 등 굽은 우리네 할머니, 손마디 굵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입장 포도, 성환 배, 예산 사과를 바리바리 싣고 새벽열차에 올라 광천·대천·장항 장에 내다팔고 짠내나는 비릿한 갯것을 양손 가득 들고 막차에 고단한 몸을 실었으리라. 

그러나 어느덧 일흔 다섯을 먹은 노선(老線)이 된 장항선은 그 나이만큼이나 허리가 굽었고, 그 위의 간이역들 또한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하나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기관차 앞머리가 긴 꼬리를 굽어보며 달리는 구불구불한 장항선은 약 150km의 길이에 무려 29개나 되는 역이 있다. 그중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5개다. 현재 굽은 철로를 펴는 직선화 사업이 진행중이니 어떤 역은 새롭게 생겨날 것이요, 또 어떤 역은 노선표에서, 추억 속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속도가 덕목이 된 시속 300km의 KTX 시대를 살지만, 장항선을 타고 떠나는 여행은 과거로 가는 아날로그 여행이다. 그래서 무조건 빨리 도착해야 하는 KTX는 장항선을 달리지 않는다. 새마을호가 있긴 하지만 단선의 노쇠한 철로 탓에 상습적으로 지연되는 것은 새마을호도 예외가 아니어서 도착 시간은 무궁화호와 별 차이가 없다. 때문에 비싼 표 값을 받고도 제 몫을 못하니 장항선 새마을호는 체면이 말이 아니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기차가 지나가고 난 걸널목에는 사람과 차, 자전거가 지나간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함지박을 이고 보따리를 들던 할머니의 들것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탑승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승객들을 플랫폼으로 들일 기미가 없다. 오히려 기차가 10분 가량 지연될 것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무슨 기차가 출발부터 지연인가 싶은데, 별스럽지 않다는 듯 모두들 덤덤한 표정이다. 

덜커덩 덜커덩 서울발 장항선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다. 천안역을 지나자 누런 들판의 단조로운 시골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진다. 가을햇살이 창안 깊숙이 파고든다. 이쯤 되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졸음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꾸벅꾸벅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사이 비었던 좌석들이 꽉 찼다. 목 좋은 자리를 선점하지 못한 입석표를 쥔 몇몇은 통로에 서 있다가 홍익회 아저씨의 수레가 지날 때마다 불편하게 자리를 내준다. 

평일인데도 승객이 많아 온양온천역에서 한번 좌석을 바꿔야 했다. 바뀐 좌석을 찾아가자 2인승 좌석에 아줌마 세 분이 비좁게 껴 앉아 있다. 난감한 표정으로 표를 내보이자 한 아줌마가 주섬주섬 일어선다. 친구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아이구, 아가씨가 날씬해서(?) 셋이도 넉넉히 앉겄구만”하며 바싹 좁혀 앉으며 손바닥만한 자리를 만들어준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역전 간판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광천 토굴시장 내 상가거리.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간신히 엉덩이를 턱걸이 하고 가는데 결혼 못한 자식 걱정, 남편 흉보기, 장날 물건 판 얘기 등 이야기가 끝이 없다. 그 모습이 하도 다정하여 서로 잘 아는 사이인가 했더니 한 분은 대천 사람, 한 분은 홍성 사람으로 오늘 처음 만났단다. 참 넉살도 좋다 해야 하나, 구김살 없는 성격이라 해야 하나. 두 사람의 인생살이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느덧 학성역을 지나고, 선장역을 지났다. 

토굴 젓으로 유명한 광천역에 기차가 멈춰 섰다. 짭짜름한 새우젓갈 통을 들고 혹은 함지박을 이고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우르르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내리고 나자 서서 가던 사람들이 좌석을 잡고도 빈자리가 꽤 많다. 시끌벅적하던 객차 안이 조용해지자 곡선 철로를 지나는 기차는 아기자기한 평화로운 시골풍경을 눈에 꼭꼭 담으라는 듯 느릿느릿 달려간다. 

기차가 청소역에 들어서자 역장이 승객을 맞이하러 플랫폼에 나와 섰다. 그런데 멈춰선 기차가 출발하려는 데도 내리는 승객 하나 없다. 역사 앞에 서서 떠나가는 기차를 쳐다보던 역장은 얼쯤한 듯 발아래 떨어진 돌을 줍고 들어간다. 청소라는 이름이 역명치고 재밌다 생각했는데 이런 광경까지 보자 피식 웃음이 터진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백제 사찰 수덕사와 가까워 수덕사역이라 불렀던 삽교역.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한때 고암 이응로 화백이 살았다던 수덕여관.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종착지인 장항역에서 10분쯤 배를 타면 군산이다. 망둥이 낚시가 한창인 바닷가와 어시장을 둘러보고 나왔다. 사람들의 발길이 예전만 못한 까닭인지 문을 연 상점이 별로 없고 그나마 찾아든 사람도 낚시꾼들 뿐, 거리가 심심하다. 

장항발 기차에 다시 몸을 실었다. 한때 수덕사역으로 불렸다는 삽교역의 역사는 단아하게 기와를 얹었다. 예까지 와서 수덕사를 아니보고 갈 수는 없는 일. 일주문 옆 샛길로 들어서자 폐허가 된 수덕여관이 쓸쓸이 쇠락해가고 있었다. 수덕여관은 고암 이응로 화백과 나혜석 시인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이 머물던 곳이다. 

옛 명성은 간데없이 폐허로 남은 수덕여관은 이제 곧 옛 화가의 그림과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고 한다. 구부정한 장항선의 철로도 허리를 곧게 펴면 고속열차가 달려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말쑥하고 반듯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발목을 잡는 것을 어쩌겠는가. 조금 느리고 불편한 아날로그식 삶은 속도의 삶이 주지 못하는 여유와 추억이라는 긴 여운을 만들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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