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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28] 고사리 손 잡고 건축 기행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28] 고사리 손 잡고 건축 기행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5.04.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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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 건물도 사람처럼 인생역정(?)을 겪는 경우가 있다. 어린이대공원의 꿈마루가 그렇다. 대한민국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였다가, 어린이대공원의 교양관, 식당, 전시관, 관리사무소를 거쳐 최근에 원형을 회복하고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푸른 5월. 아이의 고사리 손을 잡고 건축 기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5월이다. 하늘은 푸르고 아이들은 자라는 계절.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이 등 떠밀리듯 아이와 어디든 가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에버랜드니 롯데월드니 하는 놀이공원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한때 어린이대공원이 모든 어린이들의 로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린이날 한참 전부터 어린이대공원과 청룡열차 노래를 불렀고, 어른들은 고생길이 뻔히 보이면서도 아이 등쌀에 못 이겨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혹시 아시는지. 어린이대공원이 원래는 어린이대공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푸른 잔디가 아름다운 이곳은 1926년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골프장이었다. 조선총독부가 순종의 비 순명황후가 잠들어 있던 능을 옮기고 골프장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살아남은 조선 왕가의 후예들이 일본인들과 함께 골프를 즐겼다. 그렇게 경성 골프장에서 서울 컨트리 클럽으로 간판을 바꿔 달며 수십 년 간 골프장으로 있다가, 1973년 5월 5일, 급하게 새 옷을 갈아 입고는 어린이대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그 몇 해 전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박정희 대통령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단다. “아니 지금 국민 모두가 불철주야 일을 하고 있는데, 저기서 골프 치는 인간들은 뭐냐? 저놈의 골프장 당장 없애 버려라!” 

거대한 문짝을 엎어놓은 듯한 꿈마루의 정문. 하늘을 향해 돌진하는 모양이다.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거대한 문짝을 엎어놓은 듯한 꿈마루의 정문. 하늘을 향해 돌진하는 모양이다.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하루 아침에 바뀐 클럽하우스의 운명
한반도 최초의 골프장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어린이 공원으로 바뀌면서 이곳의 건물들도 새로운 운명을 맞이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대한민국 최초의 클럽하우스 건물이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건축을 시작한 나상진이란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지은 지 몇 해 되지 않아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탈바꿈한 건물은 식당과 전시관, 관리사무소 등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애초를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증축과 개축을 이어가게 된다. 

낡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그대로 두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피크닉 정원.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낡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그대로 두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피크닉 정원.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그러다 지난 2010년 이 건물의 운명은 다시 한번 바뀌었다. 낡고 누더기 같은 건물을 허물려던 서울시에서 도면을 검토하다 보통 건물이 아닌 것 같아 전문가에게 문의를 했단다. 아니다 다를까. 도면을 받아 본 전문가는 이 건물은 건축 문화 유산이니 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이미 허물고 새로 짓는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서울시는 고민하다 건물의 원형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하여 덕지덕지 붙어 있는 증개축의 흔적을 걷어내고 북카페와 피크닉정원, 관리사무실 등을 들인 후 ‘꿈마루’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테라스 정원 사이에는 자그마한 연못을 두었다. 그 위로 북카페가 보인다.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테라스 정원 사이에는 자그마한 연못을 두었다. 그 위로 북카페가 보인다.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직선의 콘크리트가 주는 아름다움
꿈마루의 특징은 직선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주는 공간감과 아름다움이다. 건물 좌측의 정문 위로는 돌출 콘크리트가 거대한 문짝 두 개를 엎어놓은 듯 튀어나와 있다. 무언가 이국적인 공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천정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기둥들이 수직으로 교차하며 강렬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렇게 태어난 굵직한 공간들 속에 북카페와 피크닉정원 같이 아기자기한 콘텐츠들이 자리를 잡았다. 

직각으로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기등과 대들보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직각으로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기등과 대들보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2015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층의 피크닉정원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건물에 남긴 상처들을 손보지 않고 그냥 둔 것이 옛 수도시설을 활용한 선유도 공원을 닮았다. 알고 보니 선유도 공원을 만든 건축가가 꿈마루 복원을 주도했다고 한다. 3층의 북카페는 햇살 따뜻한 야외 테라스에서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푸른 5월.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대공원에 간 김에 건축 기행까지 즐기는 것은 어떨까? 어린이대공원과 꿈마루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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