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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감성 여행] 동백 꽃길 따라, 뱃길 따라 여수·거문도 여행 산 너머 남촌에 봄이 오는 소리
[감성 여행] 동백 꽃길 따라, 뱃길 따라 여수·거문도 여행 산 너머 남촌에 봄이 오는 소리
  • 송수영 기자
  • 승인 2007.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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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만개한 동백꽃이 장관을 이룬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여행스케치=여수] 정말 오랜만에 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을 떠났다. 돌이켜 보니 차를 버린 덕분에 오히려 만날 수 있었던 게 훨씬 더 많았다. 이곳저곳 맛있는 식당을 알려준 택시 운전사 아저씨와 맘씨 좋은 시장의 상인들과 버스 안의 따스한 풍경까지… 가슴으로 느낀 여수, 거문도 여행길이었다. 

어느새 흥얼흥얼 노랫자락이 흘러나온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올라갈 때는 그렇게도 힘들더니 내려올 땐 한결 수월하다. 어젯밤 택시 운전사가 “벼랑 끝에 절이 있으니 참으로 놀랍지요”라고 하더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여수까지 왔으면 향일암에서 해 뜨는 것은 꼭 보고 가야 한다는 말을 주위에서 하도 많이 들어, 마치 주술이라도 걸린 양 새벽녘에 졸린 눈을 간신히 비벼 뜨고 어슬렁어슬렁 가파른 향일암으로 오른 터였다.

그러지 않아도 평소 약간의 저혈압이 있어 아침나절엔 단번에 정신이 번쩍 들지 않는데, 거기에 상급 슬로프 각도의 길을 오르려니 녹록치가 않다. 숨을 내쉬었다 들이쉬고, 중간 계단에 쉬었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그러는 사이에도 혹시 해가 뜨지 않을까 혼자 안달을 했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봄바람에 살랑이는 어선들의 모습이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다도해의 푸른 바다를 품은 여수.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이렇게 걸어 올라가기도 힘든데 온갖 자재를 들고 올라갔을 옛 선인들의 초인적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가파른 계단은 그렇다 쳐도 중간 부근에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바늘구멍 모양의 바위 틈새는 어떻게 뚫고 지나갔는지 내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때로 종교의 힘은 그 끝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반짝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라 바람 끝 매섭기가 한겨울 못지않다. 눈만 빠꼼히 내놓고 단단히 채비를 했더니 어느새 목덜미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렇게 오르기를 20분, 향일암에 닿았다. 일망무제(一望無際) 바다 위에 떠 있는 느낌이랄까, 과연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어슴프레한 신새벽, 그러나 훨씬 전부터 하루를 시작했을 사찰 이곳저곳을 돌아보니 이 또한 정취가 남다르다. 

바다 쪽을 향해 관광객들이 뜨문뜨문 모여 서있는데 아직 본격적인 여행 시즌이 아니라 그 수가 많지는 않다. ‘동백을 보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하는데… 그때 오면 정말 볼 만한데…’하며 만나는 여수 주민들마다 한결같이 안타까워 했다. 본격적인 동백을 못 보고 가려나 아쉬워하던 차에 대웅전 아래쪽으로 듬직하게 서있는 동백나무 가지마다 누이의 눈물같이 진한 동백 꽃망울이 풍성히 매달려 있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 둥지 아래에도 동백 모양의 카페트인 양 꽃송이가 촘촘히 떨어져 있다. 조금 있으니 이곳 절에서 일하시는 분이 나와 그 동백꽃을 싸리비로 쓸어낸다. 비가 가는 길을 따라 무수한 동백꽃이 흘러 다닌다. 그 모습에 취해 넋을 놓는 사이 어느새 해가 고개를 삐죽 드러냈다. 기다릴 때는 애간장을 태우게 하더니 일단 한번 얼굴을 보이니 거침없이 솟구쳤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가 고요한 산사의 정적을 깬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뱃일, 물일을 하느라 장화는 필수이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향일암의 일출 풍경. 너른 하늘과 바다에서 벌어지는 색채의 향연이 놀랍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어제는 밤 풍경을 촬영한다고 찬바람을 오랜 시간 맞은 탓에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있었다. 향일암 아래쪽에 숙소를 정하고 마침 문을 연 구멍가게에 들어가 감기약이 있냐고 물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그런 거 읍는데” 하신다. 그래, 이곳에 계시는 분들은 감기가 걸리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 “참아야지 머….”

향일암이 있는 돌산읍에서 여수 시내까지 가려면 30분마다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던지 택시를 불러야 한다. 택시로 가도 굽이굽이 시골길을 돌아 40분 가량은 족히 걸리는 길이다. 집마다 구급약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래도 밤에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어쩔까 싶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바다를 면하고 있으니 싱싱하고 맛좋은 해산물이 빠질 수 없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향일암에서 내려와 잠시 몸을 덥힌 뒤 짐을 꾸려 다시 여수 시내로 향한다. 다행히 시간이 맞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낼 모레가 설 대목인지라 장을 보러 가는 동네 주민들이 적잖이 올라탔다. 따스한 봄 햇살이 시골버스 안으로 한가득 쏟아지고 저 멀리 푸른 다도해가 넘실대니 이보다 평온한 세상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버스 안엔 운전수 아저씨가 틀어놓은 음악이 나지막이 흐르는데, 거기엔 아랑곳 않고 한동네 이웃 사이인 듯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목청껏 대화를 나눈다. 그 소리가 버스 구석구석까지 울려퍼져 버스 승객 모두 마치 일행인 듯 경청하고 있다. 내외를 하시는 지 할아버지는 뒤쪽에 앉은 할머니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시선을 똑바로 앞으로 향한 채 말씀을 잘도 나누신다. 

시골버스는 포장도 안 된 좁은 길을 굽이굽이 돌아 마을 구석구석 훑다시피 달린다. 낼 모레가 설대목인지라 버스에 올라타는 할머니들의 손엔 빨간 ‘다라이’ 하나가 들려 있다. 버스가 급커브를 도니 한 아주머니의 옆에 있던 ‘다라이’가 쭉 미끌어져 저 아래 운전수 자리까지 밀려갔다. 아주머니는 그 놈을 냉큼 집어와 오른쪽 다리를 ‘다라이’ 위에 쭉 뻗어 미끄러지지 않게 고정시키고는 따뜻한 햇살에 고개를 이리저리 떨구며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지금은 헐렁하게 비었지만 돌아오는 길엔 그 안에 사과며 배며, 대처에서 곧 내려올 손주 녀석 줄 곶감까지 차곡차곡 들어차 아낙내들의 머리 위에서 파도처럼 흔들거릴 것이다.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향일암에서 여수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안.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같은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무슨 유대감이 생기는지 버스 안에선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스스럼이 없다. ‘봉산동’을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냐고 앞에 앉은 할머니에게 묻자, 여기저기서 봉산동 가는 길에 대한 참견이 대단하다. 자칫 잘못 내릴까봐 버스가 정거장에 설 때까지 참견, 또는 관심이 쭉 이어졌다. 

원래 거문도까지 들어갈 계획은 없었다. 느긋하게 수산시장을 둘러보고 올라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남해안 투어>의 박춘길 사장을 만나면서 급작스럽게 바뀌었다. 박춘길 사장은 여수와 거문도 쪽 여행의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이다. 오랫동안 외항선원을 하다가, 고향 거문도가 너무 좋아 여수에 여행사를 차리고 자비를 털어 시시때때로 여행가들을 불러 모아 자기 고향을 구경시켜주는 분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아닌 작은 여행사에서 고향을 어지간히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런 일을 벌이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에게 여수 이야기를 잠시 들으려 들렀던 것이, 다짜고짜 10분 후 거문도로 들어가는 배편이 있으니 꼭 들러보고 가야한다는 말에 앞뒤 따지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배에 타고 말았다. 여수에서 거문도까지는 2시간 30분. 아침에 떴어야 할 배인데 바람이 거세 오후 늦게서야 출항하게 되었단다. 거문도를 꼭 들러보라는 하늘의 계시였을까? 배 안에서 아는 분과 통화를 하다가 거문도에 들어간다 했더니, 섬 끝에 있는 등대에 소주를 사가지고 꼭 가서 한 잔 하라고 한다. 운치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1905년 4월에 세워진 남해안 최초의 등대. 2007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항구에서 등대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고 들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에게 택시 전화번호를 여쭸더니 택시 기다리느니 그러는 사이에 한 20분 전봇대를 따라서 걸어가면 된다고 하신다. 그 정도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겠다 싶어 터덜터덜 나서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걸어갈 만한 거리가 아닌 것이다. 시골 사람들이 말하는 ‘한 20분’이라는 수치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지 그동안 경험을 통해 여러 번 겪었던 지라 슬슬 불안해졌다. 의심을 거듭하며 한참을 걷다 마침 지나가던 아저씨에게 물으니 차로 들어가도 20분은 걸리는 거리란다. 게다가 차에서 내려서도 또 사오십 분은 ‘죽어라’ 걸어가야 등대가 나온단다.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약 한 시간 뒤에 등대에 도착했다.

소주 한 잔을 꼭 마셔야 한다는 거문도 등대에 대해서는 말줄임표로 남겨두고 싶다. 그게 더 그곳의 여운과 잘 맞을 듯싶다. 너무 허겁지겁 가는 바람에 소주를 사가지고 가지 못했지만, 실제로 도착하고 보니 정말로 간절하긴 했다. 쓸쓸히 망망대해와 마주하고 있는 등대의 의연한 자태 때문인지, 아니면 한 시간 가까이 걷고 나서 등대에 도착한 기쁨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들어가는 길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동백꽃에 취한 때문일 수도 있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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