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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나의 도보 여행기 2] 일본과 한국의 산하를 걸은 일본인 마미야 다케미 씨 도보여행을 통해  제2의 인생을 활짝 열다 
[나의 도보 여행기 2] 일본과 한국의 산하를 걸은 일본인 마미야 다케미 씨 도보여행을 통해  제2의 인생을 활짝 열다 
  • 마미야 다케미 기자 (번역 송수영 기자)
  • 승인 2007.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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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6월. 사진 / 마미야 다케미 기자
일본과 한국 산하를 걸은 일본인 마미야 다케미. 2007년 6월. 사진 / 마미야 다케미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정년 퇴직을 전환점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던 일본인 마미야 씨는 그 첫발로 자신이 사는 가마쿠라에서 서울까지 도보 여행을 계획했다. 79일에 걸친 긴 여정을 통해 제2의 인생으로 거듭났다는 그의 도보 여행 이야기 전말. 

사업주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샐러리맨으로 사는 한 ‘정년퇴직’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이를 맞이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내가 일했던 회사는 ‘졸업’ 1년 전부터 현역에서 빠지는 인사제도가 있다. 업무가 줄어든 만큼 마음이나 몸가짐은 퇴직 후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를 잘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에 무사히 연착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007년 6월. 사진 / 마미야 다케미 기자
그가 걷는 중 찍은 사진. 2007년 6월. 사진 / 마미야 다케미 기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해외 근무를 하는 바람에 마지막까지 일선에서 물러날 시간이 없어 반대로 연착륙을 위한 준비기간 없이 바로 ‘정년’이라는 벽에 직면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갑자기 은퇴하는 경우,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내용을 어느책에선가 본 적이 있다. 우울증이라…, 이것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은퇴를 잘 이겨나갈 좋은 비책이 있으면 좋으련만. 

어쨌든 35년 이상 계속 앞만 보고 달리던 일상이 감속할 틈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서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얻은 해방감과 행복, 불안, 그리고 당황스러움이 내 안에서 교차했다. 

무모하지만 ‘일본의 가마쿠라에서 서울까지 걸어보자’는 생각을 한 것은 정년퇴직을 거의 1주 정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나는 1999년 7월부터 서울 주재 사무소 초대소장으로 일을 해왔다. 그러던 2004년 봄, 갑작스러운 본사 사정으로 주재원사무소를 폐쇄하고 귀국하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귀국하고 보니 통상 정년기간까지 약 4개월 남짓, 현역으로 현장에서 계속 땀 흘릴 각오로 살던 터라 이후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다. 

“자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그리고 천천히 찾아보게. 서두르다 그르칠 필요가 없다네.”
마음도 몸도 안정이 안된 어느 날 오랜만에 학창 시절의 선배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나누었던 말이 묘하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 이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하는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어쨌든 아직 사지가 멀쩡할 동안은 최선을 다해 살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은 두 아들에게만큼 당당한 어깨를 보여주고 싶다는 막연한 허세도 남아 있었다. 이 나이에 새삼 환경이 주어지는 것을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결코 성취할 수 없다는 현실도 절감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갑자기 ‘그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2007년 6월. 사진 / 마미야 다케미 기자
한국의 김삿갓 기념상을 지나며... 2007년 6월. 사진 / 마미야 다케미 기자

아침 산책을 하던 나는 ‘그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걸으면서 지난 한국에서의 5년을 떠올려보았다. 사무소를 운영하는 동안 일본인은 나 혼자였다. 주위에서 나를 도와주던 한국인의 얼굴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사라졌다. 비서, 운전수, 어시스턴트, 제휴회사 국제 담당 국장, 회계사무소, 신문사, 거래처, 그리고 업무 이외에도 한국어교사, 마라톤 친구들, 양복점 주인장, 의사… 등 일본인인 나를 처음부터 진심으로 받아주고 지원해준 사람들이다. 그런 한국의 많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정년퇴직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첫걸음으로 지난 5년간 살았던 한국의 옛 친구들을 만나러 가마쿠라에서 서울까지 한번 가보자.  감사의 마음을 담은 만남의 도보 여행을 해보는 거다’ 이전엔 꿈도 꾸지 못한 생각에 갑자기 도달한 것이다. 

현재의 집에서 예전의 집(서울)까지 걸어서 가보자. 이것이 바로 ‘그 일’의 핵심 아이디어였다. 갑자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호기심, 모험심이 일어났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이디어가 샘솟듯 계속 이어졌다. 

서울까지의 코스는 ‘조선통신사’의 족적을 따라가볼까, 아니면 한일 자매도시를 돌아보면서 걸어볼까… 고민하던 중 최종적으로 낙점한 것이 부임 중에 알게 된 한국의 ‘고등어 길’을 걷는 안(案)이었다. 

일본과 한국 양국의 ‘고등어 길’을 걸음으로써 같은 바다를 끼고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자 결론을 내렸다. 

2007년 6월. 사진 / 마미야 다케미 기자
한국에 있을 때 자주 찾았던 경주. 2007년 6월. 사진 / 마미야 다케미 기자

그날부터 매일 서울까지 도보 여행에 관한 자료 수집과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결과적으로 준비하는 데만 반년 가까이 걸렸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하루하루는 설렘과 기쁨의 연속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 때문일까, 내 마음도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2005년 3월 9일부터 5월 27일까지 79일에 걸쳐 총 2,328km의 여정을 모두 완수하여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도착하였다. 운 좋게도 나의 여행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져 당시 한국과 일본의 매스컴에서 큰 관심을 가져주었다. 한국의 유명 일간지에 나의 도보 여행 이야기가 실리기도 했으므로 새삼 이 자리에서 세세한 여행 이야기는 줄이련다. 

여행을 마친 뒤 종종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힘들었던 기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릴 적 소풍가는 것처럼 정말로 즐겁고 두근거리는 하루하루였다. 오히려 길에서 만난 많은 한국과 일본의 국민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나의 여행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 일부러 주말을 이용해 달려와서 함께 길을 걸어준 분도 있었고, 화장실을 빌려 쓰기 위해 들른 주유소에서 택시운전사들이 나를 발견하고 음료수를 뽑아주기도 했다. 내가 가는 길에 들른 한국과 일본의 자매도시 시장님들이 모두 무사 여행을 기원해주며, 숙박지 등을 알선해주기도 했다. 

내가 여행을 떠나지 않았으면 전혀 알지 못한 채 서로 딴 세상에서 살았을 사람들이다. 도보 여행을 통해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여행을 할 수 있는 힘을, 그리고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믿음을 얻었다. 

더불어 정년은 인생의 마지막이 아님을, 인생이란 매일 걸어가는 도보 여행과 같은 것이라는 귀중한 깨달음도 얻었다. 

매일 걸으면 걸을수록 새로운 길이 보이듯이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인생에는 새로운 길, 새로운 환경, 새로운 ‘현장’이 보이는 것이다. 거기에 ‘나이’라는 장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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