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춘천] “아침 일찍 출발한다면 하루면 충분하지 않을까?” “당일 여행으로는 춘천만한 데가 없지.” 춘천을 아직도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는가. 사실 열차로, 자동차로, 춘천만큼 쉽게 갈 수 있는 낭만여행지도 드물다. 하지만 춘천을, 그야말로 속속들이 여행해본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나절 훑어보고 춘천에 갔다 왔다고 말하지 마시라. 여기 옥수수알처럼 꽉 찬 1박 2일 춘천 여행이 있다.
적은 양의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는 맞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비에 날이 갑자기 추워졌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지 싶다. 지금까지 이른 아침, 그것도 추적추적 비 내리는 오전에 의암호를 달려본 적이 없으니 오히려 잘됐다.
사실 춘천은 수도권에서라면 언제고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하루에 20여 회 이상 운행되는 경춘선 열차를 타면 2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또 최근에는 자동차전용도로까지 개통되어 춘천 가는 길이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침에 갔다 저녁에 돌아오기에 아쉬운 곳 또한 춘천이다. 서면 일대가 문화산업클러스터로 지정되면서 각종 문화 관련 기관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또 의암호나 소양호 등을 끼고 있는 까닭에 호반을 중심으로 다양한 위락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니 어떤 쪽으로 테마를 잡더라도 볼거리가 빼곡하기 때문이다.
1st day 호반 드라이브는 기본, 야경 감상은 필수
이번 1박 2일 여행은 의암호반을 시작으로 서면 일대를 돌아보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잡고, 둘째날은 청평사와 막국수체험박물관 등 소양호 주변을 둘러보는 코스로 동선을 잡았다. 의암호반도로를 이용하면 춘천 시내로 들어가는 대신 애니메이션박물관이나 고슴도치섬 등이 자리한 서면으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드라이브와 겸하기 좋은 동선이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의암호반도로는 일부러라도 돌아가는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강촌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길로 빠지면 의암댐과 호수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 차가 저절로 멈춰진다. 진양호나 옥정호처럼 변화무쌍한 맛은 없지만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곳이다.
이 길을 곧장 내달리면 차례로 애니메이션박물관과 고슴도치섬, 춘천인형극장 등과 만나게 되는데 그중 애니메이션박물관이 첫 번째다. 춘천이 애니메이션도시로 선정되면서 2003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최초로 ‘만화’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세계애니메이션 역사를 필두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변천사, 영사기 발달사, 3D상영관 등을 갖추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기획전을 열고 있다.
현재는 <령리한 너구리를 아시나요?>라는 이름의 북한애니메이션 특별전(2008년 4월 24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애니메이션 전용상영관 ‘아니마떼끄’도 이용해볼 만하다. 매월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고 있는데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았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또 지난 7월에는 박물관 바로 옆에 스톱모션 스튜디오(Stopmotion Studio)가 문을 열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1층 전시관만 자유 관람 형태로 개방을 해놓고 점토나 인형 등을 매개로 *스톱모션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애니메이션박물관 가까이에 인형극장과 고슴도치섬이 자리한다. 신매대교 오른편으로는 인형극장이, 반대편에 고슴도치섬이 있는데 마주보고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우니 어느 곳을 먼저 찾아도 좋겠다. 단, 다리 한가운데 섬으로 내려가는 길은 놓치기 쉬우니 신경 쓸 것. 많은 이들이 고슴도치섬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춘천에 그런 섬도 있었냐’는 반응을 보인다. 허나 고슴고치섬의 옛 이름은 ‘위도’. 수영장과 잔디밭을 갖춘 조그마한 위락시설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요 몇 년 사이 큰 변화가 있었다. 의암댐이 준공되면서 생겨난 인공섬으로 46만㎡ 규모에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우거져 있어 일단 정취 면에서는 합격점.
서울에서 온 이지나 씨는 “남이섬에 비해 한가해서 참 좋네요. 시설도 전혀 뒤지지 않고 특히 숲길이 걷기 참 좋아서 오늘 예쁜 사진 많이 찍었어요”라며 마임축제 기간에도 꼭 한번 와보고 싶단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게 싫은 이들에게 강추다. 북카페 ‘예부룩’과 식당, 도예점 등을 갖추고 있고 자전거와 경비행기 체험도 가능하다. 섬 양편으로 14채의 방갈로가 있어 가족이나 단체 모임을 하기에도 좋다.
다양한 인형극 잔치
춘천인형극장은 고슴도치섬 맞은편에 자리한다. 주말이나 축제 기간에만 인형극을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연중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고 있어 오히려 평일에 찾는 게 좋다.
11월 25일까지는 개구쟁이 인형극단의 ‘개와 고양이’, 12월 18일~25일까지 홍콩인형극단의 초청공연이 이어지는 등 연말까지 마련된 인형극도 풍성하다. 인형극장의 홍보를 담당하는 최성운 씨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인형극은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가족인형극이나 무용극 등도 종종 무대에 올려져 가족끼리 인형극장을 찾으면 훌륭한 문화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옆에 마련된 박물관은 그동안 한국을 찾았던 세계인형극단에서 기증한 인형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이밖에도 인형극의 기원이나 변천사 등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인형극 관람 후에 박물관을 찾으면 보다 짱짱한 일정 구성이 될 것이다.
저녁식사는 춘천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라 할 수 있는 메밀요리를 먹어볼까 한다. 그중 대표는 당연히 막국수. 춘천 사람들도 인정한 감자골 막국수가 있다. 동면에 자리한 전통 메밀 음식점으로 막국수와 촌떡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촌떡은 강원도 전통 음식으로 지금은 파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귀한 요리가 되어버렸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해가 완전히 기울었다. 날이 좀 추운 감이 있지만 춘천에서도 로맨틱한 장소로 꼽히는 ⑤구봉산전망대를 빼놓을 수는 없는 일. 소양대교를 비롯해 춘천 시내 야경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위치다. 본래 구봉산전망대가 있던 자리는 최근 ‘산토리니’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겸 카페가 들어섰는데, 1층은 캐주얼한 카페테리아로 되어 있어 굳이 식사나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드나들 수 있다. 다소 바람이 강하지만 춘천의 야경을 감상하는 데 이만한 곳도 없으니 놓치지 말 것.
2nd day 오봉산 자락의 천년고찰 청평사
이튿날은 소양댐을 중심으로 청평사와 막국수체험관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춘천을 몇 번 여행했다는 사람들도 소양댐까지만 와보고 다 둘러본 양 말을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섭섭한 감이 있다. 특히 청평사는 소양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까닭에 번거롭다는 이유로 일정에서 제외되기 쉽다. 하지만 오전 10시경까지 선착장에 이르면 여유 있게 소양댐과 청평사에 다녀올 수 있으므로 조금 서두르도록 하자.
지난해 왔을 때만 해도 소양댐에 이르는 도로변에 공사가 한창이더니 주차장과 공중화장실까지 들어섰다. 덕분에 댐 가까이까지 자동차를 몰고 갈 수 있다.
청평사행이나 양구행 유람선이 소양댐 선착장에서 출발해 다소 복잡하지만 청평사행은 30분에 한 대씩 있으므로 붐비지는 않는다. 청평사 선착장까지는 배로 15분이지만 오봉산에 둘러싸인 소양호를 구경하다보면 좀 더 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배에서 내리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청평사 코스다. 회전문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한데 절 자체보다는 절까지 이르는 숲길이 인상적인 곳이다.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까운 길이라 어린아이들도 충분히 오를 수 있다.
청평사는 그 유명세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973년 개찰된 천년고찰이자 산사(山寺)의 전형을 갖춘 곳이다. 여러 건물과 부속 암자 등은 거의 없어지고 지금의 건물은 모두 신축된 것들이다. 여러 개의 폭포와 바위 등을 연결해 절 주변을 꾸며 고려시대 정원 문화를 보여준다.
청평사에는 먼 옛날 공주를 사랑하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상사뱀과 공주’에 얽힌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영화 <생활의 발견>에도 나왔던 회전문과 상사뱀 이야기와 같다.
중국 당나라 때 한 공주를 사랑하던 청년이 상사병으로 죽자 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몸을 감고 괴롭혔다고 한다. 결국 공주는 뱀을 떼어내기 위해 신라의 영험하다는 사찰이라는 청평사까지 오게 되는데 절 앞에서 공주는 밥을 가지고 오겠다며 잠시만 몸을 풀어줄 것을 청한다. 이를 승낙한 뱀은 한참 동안 공주를 기다렸지만 공주가 늦어지자 도망간 것이라 생각하고 회전문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하지만 순간 맑던 하늘에서 갑자기 뇌성과 폭우가 쏟아져 뱀은 죽게 되고 이를 본 공주 역시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에 깜짝 놀란다. 한동안 자신을 괴롭히긴 했지만 죽은 상사뱀을 불쌍하게 여긴 공주는 뱀을 정성껏 묻어주고 청평사에 머무르다 구성폭포 위에 석탑을 세운 뒤 돌아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뱀이 돌아 나간 문은 ‘회전문’, 공주가 노숙했던 작은 굴은 ‘공주굴’ 등으로 불리고 있다고.
청평사 회전문은 사찰의 중문에 해당되는 것으로 홑처마에 따로 쌓은 기단 없이 축대 위에 구성된 주춧돌이 단순하고 절제된 맛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편 3월부터 12월까지 춘천시청 관광진흥과에 연락하면 청평사 문화관광해설을 들을 수 있다.
내 손으로 만드는 막국수
막국수체험박물관은 체험과 시식을 한번에 할 수 있는 곳이다. 막국수의 고장인 춘천에 진작 생겼어야지 싶은 곳이다. 전통 막국수틀을 형상화한 건물 1층은 막국수의 유래와 관련 자료, 영상물이 전시되어 있고 메밀과 관련된 몰랐던 이야기, 세계의 메밀 음식 이야기, 제품 판매소 등으로 꾸며져 있는데 체험박물관인 만큼 체험실에는 꼭 들러보아야 한다. 직접 반죽한 것을 수동 막국수틀에 넣고 면을 뽑은 뒤 시식까지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먹어봤던 막국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다.
300g 메밀가루를 한 봉지 구입하면 두 그릇 분량의 막국수를 만들 수 있는데 맛도 맛이지만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다. 실제 체험장에 수동식 막국수틀 3기가 마련되어 있어 옛날 집에서 해먹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또 각 층과 코너마다 안내원들이 배치되어 있어 막국수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체험장을 담당하는 정순자 씨는 “막국수는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영양도 만점이고 맛도 좋다”며 “막국수체험박물관을 통해 한국의 막국수가 일본의 소바보다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실제 막국수박물관은 일본과 중국, 태국 여행객들에게 반응이 좋아 방문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