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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 3·1 절 특집] 그날의 함성 속으로!  만세 소리 가득한 안성 3·1운동기념관
[ 3·1 절 특집] 그날의 함성 속으로!  만세 소리 가득한 안성 3·1운동기념관
  • 김지덕 객원기자
  • 승인 2008.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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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2월. 사진 / 김지덕 기자
안성 3.1운동 기념관에서 볼 수 있는 전시품. 2008년 2월. 사진 / 김지덕 기자

[여행스케치=안성] 89년 전 이맘때쯤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3·1운동 기념 89주년을 맞아 순국선열들의 뜻과 넋을 기리는 역사적인 현장에 다녀왔다.  

“안성은 평안북도 의주군, 황해도 수안군과 함께 전국 3대 실력 항쟁지로 꼽히는 곳이에요. 당시 독립운동이 얼마나 격렬했었는지, 죽거나 옥고를 치른 사람의 수가 의주와 수안의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았을 정도니까요.”  

왜 안성에 3·1운동기념관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안성 3·1운동기념관의 문화해설사 김선애 씨와의 투어는 이 설명과 함께 시작됐다. 

2008년 2월. 사진 / 김지덕 기자
일제의 만행을 본 아이들이 남긴 글이 인상적이다. 2008년 2월. 사진 / 김지덕 기자
2008년 2월. 사진 / 김지덕 기자
안성지역에서 순국한 선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 2008년 2월. 사진 / 김지덕 기자

안성의 3·1운동은 3월 11일 읍내에서 시작돼 4월 1일에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다른 지역과는 달리 농민들을 주축으로 2000명에 달하는 전주민이 항일운동을 벌인 결과, 일제로부터 이 지역이 이틀간이나 해방되기도 했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안성은 3·1운동의 실력 항생지로 지목되었을 뿐 아니라 민족대표 33인의 재판에도 원용될 만큼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기념관은 지상 2층, 연면적 374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 전시관에는 안성 지역의 만세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기록과 3·1운동의 의의, 우리나라 전역에서 펼쳐진 시위운동 등이 보기 쉽게 정리돼 있으며, 당시 사용한 태극기, 단총, 독립항쟁선열록 등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전시관 곳곳에는 스크린과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지 않더라도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층 전시관은 일제의 잔혹한 고문 현장을 재현한 체험실로 이루어져 있다. 전기고문, 주리 틀기, 벽관고문 등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끔찍한 고문장면들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돼 있다. 애써 태연한 척 전시관을 둘러보지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처절한 고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자꾸만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은지 바로 옆에 설치된 자유게시판에는 일본을 향한 분노와 원망이 담긴 글이 써 있는 메모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니 아마 고사리 손의 아이들이 쓴 모양이다. 

2008년 2월. 사진 / 김지덕 기자
밀랍인형으로 재현해놓은 고문 현장. 2008년 2월. 사진 / 김지덕 기자

전시관을 둘러본 뒤에는 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사당에는 3·1운동 당시 안성지역에서 순국한 25위의 선열과 애국지사 195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사당 반대쪽에는 3·1운동의 가치와 역사적 항쟁사를 표현한 독립항쟁 기념탑이 있다.  

“3·1운동에 참여했던 애국지사의 후손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어요. 일본의 보복을 피해 신분을 감추고 살거나 모진 고문을 당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산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에 반해 친일파의 자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니 참 이상한 노릇이지요.”

김선애 해설사의 말에 ‘독립운동가의 집안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 집안은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속설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한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정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태극기가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마치 89년의 세월을 거슬러 그 격렬했던 만세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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