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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부여땅 자연미술학교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놀아요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부여땅 자연미술학교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놀아요
  • 장병목 기자
  • 승인 2008.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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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부여땅 자연미술학교에서 뛰노는 아이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여행스케치=부여] 왁자지껄, 시끌벅적, 우당탕, 까르르…. 정신없이 뛰고만들고 조잘대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치는 부여땅 자연미술학교. 신나게 놀면서 미술과 자연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을 모티브로 운영되는 이곳은 아이들을 위한 세상이다. 

“대장 선생님과 신나게 놀아보자.” 부여땅 자연미술학교 임춘교 대표가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에게 처음 건네는 말이다. 그러자 아이들이 “네”라고 씩씩하게 답한다. 신나게 놀자고 하는데 마다할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지천이 놀이터이니, 아이들의 목소리는 들뜰 수밖에.

8년 전에 폐교된 합수초등학교 터를 사들여 2005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부여땅 자연미술학교는 ‘놀이’와 ‘미술’이라는 주제를 접목시킨 일종의 체험학교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놀이와 미술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술 역시 놀이에 포함되어 있으니 놀이로 시작해서 놀이로 끝난다고 봐야 한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짐을 정리하고자 교실로 향하는 아이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학교 안에 자리한 재활용으로 만들어진 로봇 오브제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으싸으싸, 세상의 주인은 나
이른 시간에 도착한 부여땅 자연미술학교 주위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풍경이었다. 학교 주위에는 짚더미가 쌓인 논과 적갈색의 밭이 줄줄이 펼쳐져 있고, 뒤쪽엔 산이 옹기종기 자리하며 뒷문 바로 앞에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다소 적막한 시골 풍경 안에 찾는 이의 발길이 많지 않는 학교 분위기는 왠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적막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득 태운 버스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학교는 이내 활기를 되찾는다.

차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느라 좀이 쑤셨는지 아이들은 우르르 차에서 내리자마자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다. 1박 2일 일정이라서 어깨엔 저마다 묵직한 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다. 교실로 들어가 짐 정리를 한 후 선생님의 인솔 아래 60명 남짓의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인다. 오늘 부여땅 자연미술학교에 온 아이들은 며칠 후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예비 초등학생이다. 그래서 이틀 동안 펼쳐질 프로그램의 제목도 ‘미리 1학년 되기’란다. 

아이들이 인사한다. 그런데 인사말이 남다르다. “안녕하세요” 대신 “잘 놀겠습니다”라고 한다. 한 술 더 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잘 놀겠다 한다. 잘 놀자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조를 나누고 조 구호와 율동까지 마친 아이들. “으싸으싸, 세상의 주인은 나”라는 힘찬 함성과 함께 학교 밖을 나선다.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방해물 없이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시골에서 맘껏 뛰어놀아요
학교 뒷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 논길을 따라 아이들이 줄줄이 이동한다. 뒷모습만 본다면 영락없는 봄 소풍 풍경이다. “병아리”하면 “삐악삐악” 할 것 같은 모습. 그러나 아이들이 향하는 곳은 동물농장이나 테마공원이 아닌 작은 과수원이다. 이곳에서 펼쳐진 놀이는 사과와 배나무에 매달린 색색의 리본을 모두 찾는 것. 출발 신호와 함께 고사리 손들이 리본을 찾아 풀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나뭇가지가 꺾어질세라 조심스럽다. 리본을 모두 찾은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이후 제기차기 등의 몇 가지 간단한 놀이를 한 후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향한다. 이번엔 딱딱한 시멘트길 대신 푹푹 빠지는 논 한가운데를 달린다. “저곳이 우리가 먹는 밥의 재료인 쌀이 자라는 논이에요. 우리 저길 한번 뛰어 볼까요.” 난생처음 달려보는 논. 잘 닦여진 운동장 트랙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함께 수업을 받는 아이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함께 놀면 더 재미있어요
논과 밭 사이를 오가며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논다. 제법 찬 바람이 부는 날이었건만, 안에 들어가겠다고 보채는 아이가 없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냥 뛰어다니고 싶은 모양인지 틈이 날 때마다 놀이터를 헤집고 다닌다. 이번에 아이들이 할 놀이는 떡볶이 만들기. 그런데 뜬금없이 지게를 아이들에게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바로 떡볶이를 장작불에 해 먹기 때문에 지게를 지고 가서 불을 땔 때 사용할 나무를 해오라는 것이다. 

지게를 짊어질 나무꾼 할 사람을 뽑는다 하니, 너도 나도 손을 든다. 결국 손을 가장 빨리 뜬 아이가 나무꾼에 선정되고, 아이들은 2인 1조로 나무를 하러 떠난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망치질을 해 못 박는 연습하는 아이.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어깨에 딱 맞는 지게를 짊어진 아이들이 손가락 굵기의 작은 나무를 교실 바로 옆의 공터에서 실어온다. 나무를 부러뜨리고 지게에 올린 나무가 떨어질까봐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대견하다. 나무가 어느 정도 쌓이자, 불을 붙이고 냄비에 가득 담긴 떡볶이를 조리한다. 연기가 매워 장작불 근처에 가는 것은 주춤하지만 행여 불이 사그라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무를 넣는 일만은 멈추지 않는다. 

우왕좌왕하면서도 아이들은 서로 도우며 나무를 하고, 불을 때며 음식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함께 놀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재미있죠.” 임춘교 대표의 말이다. 서로 놀다 보면 화도 나고 싸우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아이들이 현명하고 씩씩하고 자란다는 말을 덧붙인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고 한다.
한 아이가 떡볶이 만들기를 소꿉놀이 같다고 한다. 맞다, 지금 아이들은 요리 실습이 아닌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좋게 역할을 분담하며 함께 놀이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사포로 나무를 문지른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뚝딱뚝딱 망치질을 하는 아이.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아빠, 나 망치질 잘하죠? 
해가 떨어지려 하자, 만들기 체험장소인 목공실로 향한다. 폐교를 개량해 만들어서인지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온 느낌이다. 한쪽 벽면엔 흙, 나무, 곡식, 금속 등 자연 소재를 이용해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늘 만들 작품은 ‘나무로 만든 일기장’이다. 사포로 일기장의 소재가 될 나무를 문지르고 좀 전에 배운 못질 실력을 발휘한다. 뚝딱뚝딱. 진지하게 못질을 하는 아이들. 오늘은 아이들만 참여하지만, 부모와 함께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는 날에는 호응이 두 배라 한다. 특히 아빠들은 아이보다 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만드느라 바쁘다고. 

부여땅 자연미술학교의 프로그램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임 대표는 말한다.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서 계절별로 선보인다. 야외, 그것도 시골에서 놀이에 맞춰 프로그램을 만들다보니, 무궁무진한 아이템이 탄생한다고. 사실 부여땅 자연미술학교의 놀이 프로그램은 거창하지 않다. 아파트 단지 대신 논과 밭 그리고 산과 냇가가 흐르는 시골에서 흙, 돌, 나무 등을 어루만지며 노는 것이 대부분이다. 논두렁길을 달리고 흙장난을 하고 사과나무와 밤나무를 직접 만지는 등의 비교적 단순한 놀이지만 도시의 아이들에겐 진귀하고 값진 시간이 된다.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노는 아이들. 갑갑한 교실에서와는 달리 표정들이 참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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