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여행길에 발견한 별미] 70년 전통 안동 버버리찰떡 이 떡 먹고 벙어리 안 될 사람 있나요?
[여행길에 발견한 별미] 70년 전통 안동 버버리찰떡 이 떡 먹고 벙어리 안 될 사람 있나요?
  • 서태경 기자
  • 승인 2008.04.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속으로 골병든다는 떡메치기, 그래도 식감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여행스케치=안동] 안흥찐빵, 경주황남빵처럼 안동에도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간식 ‘버버리찰떡’이 있다. 패션 브랜드 버버리(Burberry)가 아닌 경상도 사투리로 벙어리를 뜻하는 ‘버버리’. 80년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버버리찰떡 맛이 궁금해 안동에 다녀왔다.

꼬박 하루 걸리던 서울 유학길. 신문지에 말아 노모가 건네주던 떡 아침 첫 떡을 사오라던 심부름에 떡메를 쳐주고 사오던 떡 떡할매가 힘들다 하면 이발사도 한 말 치고 순사도 한 말 치고 학생도 한 말 치고 학교에 가야 했던 우리네 떡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팥, 깨, 콩고물까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버버리찰떡.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끊어졌던 찰떡 명맥을 되살리다
안동찜닭, 간고등어, 헛제사밥, 안동식혜…, 헤아려보니 안동을 대표하는 먹을거리가 은근히 다양하다. 유교와 양반문화의 중심지이지만 서민적인 음식도 함께 전해 내려오는 안동.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더해 얼마 전 다른 일로 안동을 찾았다가 ‘버버리찰떡’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버버리’라는 이름으로 시선을 끌고 기품 있는 맛으로 입맛을 잡아버린 버버리찰떡. 그야말로 여행길에 만난 별미다.

네모진 찰떡에 팥이나 깨 등 고물을 앞뒤로 붙여 먹는 방식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까, 딱 봤을 때 화려한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70여 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버버리찰떡집을 찾아간 날도 직원 여러 명이 한쪽에선 반죽을 치대고 또 한쪽에선 열심히 떡을 빚느라 말을 붙일 겨를이 없었다. 직접 와 사가는 손님도 많지만 입소문으로 전국에서 주문을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 한시도 손을 놓을 수가 없단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찰떡 맛이 나온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지금 버버리찰떡집을 운영하는 사람은 안동토박이인 신형서 사장 부부. 그의 집안에서 몇 대에 걸쳐 만들었던 것은 아니고 명맥이 끊긴 버버리찰떡을 다시 재현한 인물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안동시내에서 버버리찰떡을 어렵지 않게 맛볼 수가 있었지만 빵이나 도넛 등 서구식 간식이 쏟아지면서 떡 자체가 외면을 당했고, 결국 2001년 안동 신시장에 있던 마지막 찰떡집이 문을 닫으면서 맥이 끊겨버렸다. 

그 후 어릴 적 서울 유학길에 오를 때마다 어머니가 싸주시던 찰떡 맛을 잊지 못한 신 사장이 이러다 영영 버버리찰떡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 할머니들을 수소문해 비법을 전수받은 게 지난 2004년 일이다. 요즘 누가 떡을 먹겠냐며 걱정하던 할머니들을 설득해 몇 달 동안 떡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떡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다.

일제시대 김노미 할머니가 지금은 사라진 안흥동 경북선 철길 밑에서 찰떡에 팥고물을 묻혀 팔던 것이 버버리찰떡의 시초라고 한다. 그 후 김노미 할머니의 외손녀였던 천영조 할머니(76세)를 비롯해 김동순(79세) 할머니가 바통을 이어받아 신시장 뒷길에서 떡을 만들었지만 두 할머니 모두 30여 년 전에 손을 놓아버리고 몇몇 다른 사람들이 떡을 만들어 팔아왔다. 마지막까지 명맥을 이어온 사람이 2001년까지 떡을 팔던 민죽희 할머니(87세)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안동 5일장이 열려 찰떡집 앞도 분주하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버버리네, 버벌네, 버버리, 이름도 가지가지
버버리찰떡이 어떻게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느 날 신형서 사장에게 한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 “어떻게 우리 고향 떡을 안동서 만드느냐”고 물었단다. 그 할머니에 의하면 찰떡에 팥떡을 붙여 먹는 떡은 옛날 신의주 사람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라고. 아마도 서로 왕래가 자유로웠던 일제시대에 그 제조방법이 안동에까지 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한편 ‘버버리’라는 이름은 김노미 할머니의 자식 중 한 명이 농아였던 까닭에 사람들이 ‘버버리네 떡’, ‘버벌네 떡’ 등으로 부르다 ‘버버리찰떡’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고, 한편으론 떡이 하도 커(예전에는 지금보다 크기가 1.5배가량 컸다고 한다) 한입 물면 벙어리처럼 된다고 해서 버버리라고 부르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순 100% 우리 찹쌀만 사용한 바바리 찰떡. 2008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떡은 두께 1cm, 가로와 세로가 각각 4cm, 6cm로 두세 개 정도만 먹으면 식사 대용이 될 정도로 든든하다. 모양은 투박하지만 맛은 소박하다. 너무 달지 않고 찰떡 씹히는 맛도 그만이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다. 

 어린 시절 먼 길을 갈 때면 어머니가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싸주시던 버버리찰떡. 언제 생겼고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그 맛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이 있고 또 그곳에 가면 그리던 음식이 남아 있다는 게 더 반가운 일일 것이다. 나에겐 여행길에 만난 별미였지만 안동 사람들에게 버버리찰떡은 곧 추억이고 고향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