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숨겨진 보물] 바다가 보이는 수목원경남 고성 소담수목원 
[숨겨진 보물] 바다가 보이는 수목원경남 고성 소담수목원 
  • 송수영 기자
  • 승인 2008.05.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경남 고성의 소담수목원.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여행스케치=고성]물 빠짐을 좋게 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토목공사에 수십억 원을 투자했지만, 사람들 눈에 그럴싸하게 보일 건축에는 돈을 쓰지 않았다. 항시 새가 울고, 물안개가 끼면 운치 있고, 매일 다른 손님들이 오고가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고성의 숨겨진 명소, 소담수목원이다. 

소담수목원 입구에서 막 올라가려는데 누군가 옆에 차를 세운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오늘 취재 때문에 서울에서 온 <여행스케치> 기자입니다.”
“일단 타세요.…(잠시 침묵)… 여기 뭐 취재할 게 있나? 그냥 별 볼일 없는 수목원인데.” 

어떨결에 차에 타고 보니 이분이 소담 수목원을 만든 성만기 원장이다. 그러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경상도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그냥 별 볼일 없는 수목원’이라던 원장의 말이 지나친 ‘겸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것이 소담수목원의 특징.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가파른 언덕을 2~3분 정도 올라왔을 뿐인데 이곳은 빨주노초파남보 그야말로 아기자기한 꽃동산이다. 그리고 한창 물이 오른 푸른 나무 사이로 그림엽서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듯한 하얗고 작은 카페가 있다. 갑자기 순식간에 엄청나게 공간 이동을 한 듯한 느낌. 본격적인 인사도 미뤄두고 허겁지겁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고 말았다. 과연 듣던 그대로 수목원 언덕 아래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소담수목원은 경상남도에서 추천하는 ‘숨겨진 여행지’중 한 곳이다. 대개 도나 시에서 지정하는 관광지가 국가나 시에서 만든 것인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개인 사유지이다.

“적게는 50억에서 보통 100억 이상이 들어가요. 수목원 하나 만드는데. 그런데 시나 도에서 단 한 푼도 지원받지 않았죠.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한 30년 걸렸어요. 철학이 있어야 하지, 아니면 못하죠.”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돌 위치, 피는 꽃의 색까지 하나하나 고려해서 만들었다.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소담카페 창 너머로 즐기는 소담 수목원.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이곳 고성은 성 원장의 고향이다. 고향이라고 해도 그가 고성에서 살았던 것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이다. 이후엔 부산 등 대도시에서 공부하다 미국 유학을 떠났고 항공사 입사 후엔 서울 생활이 계속 이어졌으니 오히려 그의 인생에서 고향에서의 시간은 그리 길다고 할 수 없겠다. 

정년퇴직하기 전까지 그는 기내 사무장으로 세계 곳곳을 다 돌았고, 이사 직함까지 누리며 사회적 성공도 두루 이루었다. 편안하게 골프나 치며 여가를 즐기거나 하여도 좋았으련만 신념 하나로 그는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접고 고향 땅으로 와서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었다. “태생이 시골이라 그런지 전 세계를 다니면서도 자연을 좋아해서 외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항상 생각했죠.” 

개인이 수목원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보다 시간, 돈, 그리고 외로움과의 싸움이다. 멋진 건물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돈도 덜 들고 투자한 돈도 뽑을 수 있고, 성공을 뽐내기도 쉽다. 그에 비하면 나무 한 그루, 작은 꽃 하나는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알아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고개를 돌리며 눈부신 바다가 보인다.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성 원장이 세계를 돌면서 사 모았던 컬렉션들이 카페에 전시되어 있다. 2008년 5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묵묵히 돌을 나르고, 꽃과 나무를 심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 이렇게 삼십 년 세월이다. 그러나 그의 땀의 결과는 헛되지 않아 아무것도 없던 땅에 뿌렸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조금씩 커서 이제는 어엿한 나무로 성장하였다. 

그는 관에서 주도해서 만든 수목원은 규모는 크지만 지나치게 인공적이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때문에 그는 돌 하나, 나무뿌리까지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수목원을 만들었다. 산에 있는 것을 이용해 시간과 노력으로 꾸준히 조금씩 가꿔나가는 것, 이를 통해 소담수목원을 다른 곳과 차별화시켰다. 

그런데 좋은 뜻에서 애써 가꾼 이곳을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만지고 상처 내는 관람객들이 있단다. 

“한번은 어떤 분이 꽃을 꺾어 가시더라구요. ‘그래서 그 꽃 을 왜 꺾었죠?’하고 물으니까 ‘꽃이 예뻐서요’하고 생각 없이 대답합디다. 허허.” 

남의 사유지를 공짜로 즐기는 데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는 것이 기본 예의일 터. 그럼에도 성 원장은 아직까지도 유료화할 마음이 없단다. ‘돈을 벌자고 시작한 일도 아니고 그저 고향에 좋은 곳을 만들자’고 했던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상쾌한 바람에 흙 내음, 꽃 향기가 섞여 코끝을 자극한다. 뭔가 따뜻한 기운이 내 몸에 채워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