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서울]교통수단을 자동차에서 자전거로 바꿨을 뿐인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전혀 다르다. 안양천 자전거길에 함께하는 것은 울창한 풀, 오래된 정자, 눈부신 강이다. 화창한 햇살을 뚫고 안양천을 따라 함께 흘러가는 휴일 자전거 나들이, 즐겨보시라.
길이 34.75km의 긴 하천. 경기도 과천시 남서부 청계산에서 시작해 학의천-목감천과 합치며 몸집을 불린 다음 한강과 합류하는 강, 안양천이다.
이 긴 강을 숱하게 다녔다. 가장 자주 이용하는 홍제천에서 한강을 건너면 가장 가까운 강이 안양천이기 때문이다. 안양천변 근처에서 종종 약속이 생겼던 까닭도 있다.
안양천 자전거길로 들어가기 위해선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한강 남쪽길을 타고 서쪽으로 달리다 성산대교를 지난 뒤 곧장 안양천과 만나는 길이다.
한강 북쪽에서 들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성산대교를 건너야 한다. 대교 위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간 뒤 보행로를 따라 건너야 하는데, 오른쪽 길을 타고 가야 한다. 왼쪽 길을 타고 가면 차도의 역방향 길을 잠시 거친 뒤 한강 자전거길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성산대교 동쪽 방향 보행로를 타고 가다 길이 끝나는 곳엔 양화교인공폭포가 있다. 높이 15m, 폭 98m로 규모가 제법 크다. 시원한 물줄기를 보고 있으면 더위가 가신다. 폭포에서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면 안양천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자전거 경사로가 있어 편하게 닿을 수 있다.
내려가면 한강과 안양천 합류지점에서 조금 들어간 곳과 만난다. 1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간 곳이 안양천과 한강 합류지점이다. 거기서 저 멀리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 보인다. 과거엔 난지도였다.
합류지점엔 잠시 쉬어 가는 자전거족들이 많다. 바퀴에 펑크가 나거나 이상이 생겼을 때 이곳에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숱하게 지나가는 자전거족들이 도움을 주곤 한다.
안양천 여행은 여기서부터. 다리를 건너서 달려도 되고, 여기서부터 바로 달려도 된다.
안양천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울창한 풀숲. 사람 키보다 더 큰데 보기에 아주 운치가 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바람 소리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작은 날벌레들과 부딪히는 일. 몇몇 지역에선 갑자기 먼지 수준의 날벌레떼들이 나타난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입을 잠깐이라도 벌리면 수십 마리가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다. 자주 경험하는 이들은 ‘단백질 섭취한다’면서 웃어 넘기지만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조금 달리다 보면 무척 높은 빌딩숲을 보게 된다. 그 건물이 바로 목동 하이페리온이다. 서울에서 63빌딩이 제일 높다고 생각한다면 세상 소식에 조금 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고층 건물 순위에서 여의도 63빌딩은 249m로 3위다. 서울 목동 하이페리온 A동 타워 A가 256m(69층)로 2위,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3차 G동 타워 G가 263.7m로 1위다.
목동아이스링크도 볼 수 있다. 지난해 천장에서 불이 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공연이 무산된 장소다. 목동 주변은 밤에 봐야 운치가 있으니 낮엔 슬쩍 보고 지나치시길.
경치란 게 왼쪽과 오른쪽이 많이 다르다.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시간에 따라서도 다르게 보인다. 또한 기분에 따라서도 다르게 보인다. 상류로 갈 때 동쪽 길을 달렸다면 하류로 돌아올 때는 반대편 길을 달려보길 권한다.
잠시 뒤 언덕 위에 정자가 나타날 것이다. 영학정이다. 달리는 데 재미가 붙었더라도 잠시 멈추고 정자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길 바란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강 경치가 괜찮다.
아래 보이는 곳은 양궁·국궁장이다. 화살이 시원하게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양학정 부근 신정잠수교 부근엔 인공산란장이 있어 큰 물고기가 펄쩍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씩 꽤 큰 물고기가 펄쩍 뛰어올라 구경꾼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돌무더기도 재밌다. 처음엔 치성을 드리는 목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꽃밭을 가꾸거나 밭을 만들면서 골라낸 돌을 쌓아 놓은 것이었다. 버리는 돌을 저렇게 쌓아놓으니 제법 예쁘고 그럴 듯한 장식물처럼 느껴진다. 세상 모든 것이 쓰임새에 따라 작품이 되기도 하고 쓰레기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달리다 보면 하천 하나가 살짝 발을 걸친 걸 볼 수 있다. 도림천이다.
안양 시내에 들어서기까지 안양천을 건널 수 있는 보행자·자전거다리는 네 개 정도다. 안양천 시내까지 거리가 20km 정도 되니까 대략 5km에 한 개 꼴인 셈이다.
먼저 눈에 띄는 다리가 뱀쇠다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리 옆 표지판을 보니 ‘뱀쇠다리’라고 돼 있다. 이름이 독특하다. 인근 마을 이름이 뱀쇠마을(현 광명시 철산1동)이었단다.
뱀쇠마을과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사람들이 안양천을 건널 수 있었던 유일한 콘크리트 다리가 바로 이 뱀쇠다리였다. 당시 농촌이었던 광명시와 도심인 서울 영등포를 연결하는 다리이기도 했다고. 부근에는 주막도 있었다고 표지판에 돼 있다.
하안교를 지나 더 달리면 시흥대교다. 주위에는 시흥역, 시흥빗물펌프장이다. 동네는 시흥1동. 경기도 시흥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여기는 서울시 금천구다. 과거 시흥시가 얼마나 컸었는지 그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서울과 주변 도시들이 커지면서 시흥시 땅을 조금씩 가져갔고 시흥시는 쪼그라들었다.
시흥역 주변엔 역 바로 옆에도 자전거도로가 있어, 하천 옆 도로까지 더하면 4차선 자전거도로가 된다. 세상에 4차선 자전거도로라니.
조금 더 달리면 거리표지판이 나온다. 14.9km. 서울시 종점이다. 표지판 너머는 안양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안양천 끝을 보려면 아직도 멀었다. 안양천 옆에 ‘철새도래지’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잠시 뒤 좁은 나무다리가 보인다.
여기서 조금 더 달리면 ‘자전거가 좋은 사람들‘이란 식당을 보게 된다. 올해 2월 21일 문을 연 자전거족을 위한 전문 식당이다. 자전거를 즐겨 타는 이가 차린 식당이다. 바깥에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데, 도난방지를 위해 안에서 모니터로 거치대 주변을 살필 수 있다. 그도 안심이 안 되면 안에도 세울 수 있다. 안에도 자전거 거치대가 있다. 식단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즐겨 찾을 만한 종류다. 라면, 삶은 달걀, 찌개를 비롯해 생맥주도 판다.
인근에 석수역이 있어 술 한잔 마셨다면 지하철에 싣고 가면 된다. 수하물 규정에 따라 접이식 미니벨로만 가능하긴 하지만.
이제 점점 강폭이 좁아진다. 안양 시내에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안양교까지 이르렀으면 다리로 올라간 뒤 안양예술공원에 가보시길. 국내 최고 수준의 공공예술공원을 감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