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인천] 낚시는 물고기보다 세월을 낚는 것이라지만, 단 5분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나 같은 ‘저질’인내심을 가진 사람들에겐 남의 나라 사람들의 취미쯤으로 생각되는 것이 사실. 그러나 해피크루즈의 VIP호라면 말이 달라진다. 인내심이 부족해서 물고기를 많이 잡지 못하면 어떠랴. 낚시 외에도 보고 즐길 일이 너무나 많기에 걱정은 접어두시길.
장마 끝자락인 일요일 오후 3시 30분. 80여 명의 여행객들을 싣고 VIP호가 유유히 인천연안부두를 박차고 바다로 나간다. 오랜만에, 또는 처음으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환호를 하고 있다.
바다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갈매기 먹이 주기’다. 과자 봉지를 손에 쥔 아이들이 겁도 없이 과자를 손에 들고 갈매기를 유혹하고, 언젠가부터 새우깡 맛에 길들여진 서해안의 갈매기들은 그것을 보고 사람들 주위로 몰려든다. 눈에서 30㎝ 거리, 난생처음 갈매기를 가까이에서 본 아이들은 무섭기보다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바다에 나온 이상 안전교육도 빼놓을 수 없는 일, 2층에서 현대마린개발 강주안 이사에게 구명조끼 입는 법을 배우고 낚시하는 법을 간단하게 배운다.
“낚싯바늘에 갯지렁이를 끼우는데, 바늘을 모두 감싸도록 끼우세요. 아니면 물고기가 지렁이만 쏙 빼먹고 도망갑니다. 낚싯줄 끝에는 1.5㎏짜리 추가 달려 있으니 이것을 바다 밑으로 던지고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 입질을 할 겁니다. 오늘은 물때가 좋은 날이니 많이 잡으시길 빕니다.”
진지하게 교육을 마친 사람들은 이제 배가 바다 한가운데 서길 기다리면 된다. 배는 물고기가 몰리는 곳을 찾아서 멈추게 되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배를 타는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1시간 30분을 이동한 VIP호가 드디어 자월도 근처에서 멈춰 섰다. 이곳이 오늘의 낚시 포인트! 사람들은 저마다 낚싯대를 들고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낚싯줄을 내리기도 전에 갯지렁이 만지는 것부터 쉽지가 않다. 아이들은 맨손으로도 손에 들고 다니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더 만지기를 꺼린다. 면장갑을 끼고 나서야 겨우 주섬주섬 미끼를 바늘에 꽂아 줄을 내리기 시작한다.
바다낚시에 걸맞게 여기서 잡을 수 있는 물고기들의 종류는 가지가지다. 놀래미부터 우럭, 광어를 비롯해 숭어, 볼락 등 서해안에서 잡히는 모든 물고기들을 낚을 수 있다. 바다 낚시터를 자처하고 물고기를 넣어두는 것이 아닌, 진짜 팔짝팔짝 뛰는 자연산들이다. 그러니 물때와 날씨에 따라 많이 잡힐 수도 있고, 한 마리도 낚지 못할 때도 있다. 바로 이것이 ‘생방송의 묘미’에 버금가는 ‘자연산의 묘미’가 아닐까.
처음 낚시를 해본다는 김재호 씨는 줄을 채는 법도, 입질의 느낌도 모르지만 함께 온 두 아들인 일찬, 이찬이 형제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양껏 ‘아는 척’을 해본다. 물론 의기양양한 말과는 다르게 미끼를 도둑질당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줄을 끊어먹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저주받은 인내력일지라도 기다리다보면 좋은 소식도 들려올 일,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잠시 후, 드디어 뱃머리 오른편에서 ‘와~’하는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50대의 아주머니가 오늘 낚시에서 첫 성공을 해낸 것이다. 그것도 무려 30㎝가 넘는 숭어를 말이다. 아이들은 구경을 하느라 신이 났고, 아빠들은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흘깃흘깃 ‘남의 떡’을 살피는 눈치다. 아빠들 마음이 조급해진다. 자녀들이 ‘아빠는 왜 저런 거 못 잡아?’하며 채근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괜히 갯지렁이를 갈아 끼워보고 줄도 더 힘차게 채어본다. 하지만 마음처럼 고기가 낚인다면 얼마나 좋으랴. 속은 더 탄다.
한 곳에서 20~30분을 머문 후 VIP호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한곳에만 머무는 것보다 자리를 옮기며 조황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더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쪽은 아빠들이다.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역시 여긴 자리가 좋지 않았어….”
VIP호에서 잡은 물고기들은 번호가 적힌 그물에 넣어서 수족관에 보관한다. 물론 그 자리에서 회를 떠서 먹을 수도 있다. 배 식당에서 한 마리당 1000원만 내면 회를 떠주고 야채와 양념까지 준다. 물고기를 잡는 재미도 좋지만 바다에 나와서 직접 잡은 자연산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전문 낚시꾼이 아닌 이상엔 흔치 않은 매력적인 경험이다.
그렇게 서너 군데 자리를 옮겨가며 3시간가량 낚시가 계속된다. 자리가 좋지 않다던 아빠들은 월척은 아니지만 각자 한두 마리씩 작은 볼락이라도 잡아 나름 체면치레는 한다. 이런 곳에서 크기가 무슨 상관이랴. 그저 망망대해에서 물고기를 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빠 킹왕짱’, ‘우리 남편 최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서해에 붉은 낙조가 퍼질 무렵 오늘의 낚시체험은 끝이 난다. 각자 오늘 성과가 어떠할지언정, 모두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2층에는 푸짐한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비록 초호화 유람선에서의 저녁 파티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바비큐 파티는 그 어느 만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식사 후에는 풍선에 불꽃을 붙여 소원과 함께 하늘로 띄워 보내는 이벤트가 펼쳐진다. 도시와 달리 반짝반짝 별이 총총하게 떠 있는 하늘로 불꽃풍선이 날아가는 광경이 장관이다. 노란 풍선, 빨간 풍선 색깔은 제각각이지만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에 담긴 소원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다.
이제는 오늘의 마지막 이벤트만 남아 있다. 체험 내내 직원들이 따라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 쇼로 보여준다. 낚시에 빠져 미처 사진 찍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가족들의 환한 미소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과자를 먹으려 열심히 따라다니던 갈매기들은 멋진 배경이 되어 추억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스크린을 보며 오늘의 추억을 마음속에 담는 사람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깊어가는 여름밤을 낚시를 하며 바다 한가운데서 보낸 특별한 추억은 배가 육지에 닿아도,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