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청양] 백문이 불여일견!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생생한 체험 한 번이 더 오래 기억되고 훌륭한 학습이 된다. 이번 달엔 충북 청양에서 고추 따기 체험에 도전! 새빨간 고추를 야무지게 똑똑 따는 아이들의 손길에 감탄이 새어나왔다.
다음은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 주부의 실제 이야기다. 지방 출신의 남편과 결혼하여 시부모님께 인사를 간 그녀. 저녁을 차리기 위해 시어머니가 밭에 나가 고추를 따오셨는데 이를 받아든 채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님, 빨간 고추는 안 심으셨어요?” 하고 천진난만하게 물었던 것이다. 시어머니의 얼굴에 갑자기 짙은 먹구름이 끼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도시에서만 살다 보면 자연과 한없이 멀어지고 만다. 실제로 영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조사를 하였더니 매일 햄버거만 먹은 대다수의 아이들이 오이와 피망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였다는 충격적인 발표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최근 불고 있는 농촌체험여행의 열풍은 한편으론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오염되지 않은 땅 충남 청양에서 얼마 전 농촌체험마을을 새롭게 열었다고 한다. 매운 고추의 대명사 청양고추의 본고장 충남 청양에서 펼쳐지는 1박 2일간의 흥겨운 체험, 함께 떠나보자.
청양고추의 매운맛 보실래요?
청양 칠갑산 권역의 용두리는 마을을 둘러싼 산이 용의 형국이요, 그 용이 여의주를 물었다고 해 여의주마을로 불리고, 천장리는 한번 눈이 오면 녹지 않는다고 해서 알프스마을로도 불린다. 이번 체험여행은 이 두 마을에서 이루어지는데 청양고추 농사가 한창인 여의주마을에서부터 고추 따기 체험이 시작된다. 체험단을 맞은 최광석 권역위원장이 고추밭에 우리를 이끌고 간다.
“빨갛게 다 익은 고추를 따야 해요. 덜 익은 고추는 맛이 없고 너무 매워서 먹지 못해요. 그리고 고추 따던 손으로 눈을 비비면 엄청 매워요. 알겠죠?”
청양의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를 쐬며 자란 고추는 빨갛게 잘도 영글었다. 새빨간 고추를 골라 꼭지 위를 잡고 똑 하고 따야 되는데, 몇 번만 하면 아이들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비닐하우스에 들어서는 아이는 물론 엄마 아빠도 각오가 대단하다. 가족 모두 오리걸음으로 고추의 상태를 살피다 새빨간 고추가 포착되면 사정없이 따서 담는다. 어느새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봉투에는 고추가 가득하다.
“자기가 딴 고추 중에 제일 큰 거 들어보세요. 누가 제일 큰 고추 땄나요?” 권역위원장의 물음에 “저요! 저요!” 아이들은 하늘 높이 고추를 치켜들며 신이 났다.
“잘했어요. 어때요? 생각보다 힘이 들죠? 우리가 먹는 농산물 하나에도 농사꾼의 땀이 들어가는 거예요. 앞으로 고추 먹을 때에도 우리가 흘린 땀을 잊지 말아야 돼요.”
아이들은 자신이 수확한 고추가 신기한지 봉투 안을 몇 번이고 들여다본다. 그리고 체험장으로 이동해 그 고추로 고추전을 부쳐 먹는다. 평소에 맵다고 고추를 골라내던 아이들도 오늘은 한 판 더 부쳐 먹겠다고 욕심을 부린다.
배가 부른 아이들은 미니 장승 만들기를 시작한다. 용두리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장승깎기대회가 열릴 만큼 장승제가 발달된 부락이기도 해서, 장승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선생님의 강의가 더욱 생생하다. 서투른 솜씨로 통통한 나뭇가지에 눈, 코, 입을 그려 넣어 작품 완성. 미니 장승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음 체험을 위해 알프스마을로 출발한다.
우리 가족 허수아비가 최고
여의주마을에서 알프스마을까지는 자동차로 10분 정도 거리다. 알프스마을에 도착한 가족 체험단은 맑은 계곡에서 미꾸라지, 피라미 등을 잡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가족들은 콩밭 한 구역을 모두 차지한다. 콩밭을 매고, 허수아비를 여기에 세워 콩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체험 둘째 날의 임무다.
“콩은 쌍떡잎 식물이에요. 그래서 잎 사이로 열매가 맺히면 새들이 좋아해서 모두 와서 따 먹어요. 그러면 안 되겠죠? 그래서 오늘은 이곳에 허수아비를 세워 참새를 쫓을 거예요”
황준환 천장마을위원장의 설명과 함께 십자 모양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나무가 가족당 하나씩 주어진다. 먼저 짚을 가득 넣은 투명한 비닐을 나무 꼭대기에 올려 아래쪽을 끈으로 둘러주니 머리가 완성된다. 미리 준비해온 헌 옷가지에 짚을 채워넣고, 장갑을 끼우고 밀짚모자도 씌워준다.
모두 8개의 개성만점 허수아비가 만들어졌다. 이제 우리 가족 허수아비 발표 시간. 우현이네 가족 허수아비는 입술이 빨갛고 옷가지도 단정한데, 현주네 허수아비는 얼굴이 수수하고 옷도 너덜너덜하다.
“울 엄마 허수아비예요. 엄마가 이렇게 화장하면 아빠가 좋아하지 않을까요?” “저희 허수아비는 떠돌이 허수아비예요. 허수아비가 한 곳에만 있으란 법 있나요? 저희가 잘 때 밭을 돌면서 콩을 지켜줄지도 몰라요.”
가족 허수아비에 아이들은 자신의 소망을 담는 듯하다. 완성된 허수아비를 콩밭 사이마다 꾸욱 눌러 박아놓으니, 어느새 허수아비 천국이 되어버렸다. 참새가 이 밭 근처에는 얼씬도 못할 것 같다. 이번 콩 농사는 보나 마나 풍년이겠다.
마을을 넘나들며 흙과 함께 뒹굴었던 1박 2일 농촌체험으로 가족들은 여행과 학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