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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타고 세계여행] 러시아 세계에서 가장 긴 9288km 대질주 ‘시베리아 횡단열차’ 광활한 러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다 
[기차타고 세계여행] 러시아 세계에서 가장 긴 9288km 대질주 ‘시베리아 횡단열차’ 광활한 러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다 
  • 최지웅 기자
  • 승인 2009.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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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세계에서 가장 긴 노선을 운행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여행스케치=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Trans-Siberian Railway)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이다. 쉬지 않고 달려도 일주일이 걸리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우리나라와 러시아는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아직까지 교류가 많지 않은 탓인지 지리적 위치 이상으로 멀게 느껴지곤 한다. 우선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시작되는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로 가기 위해 배를 타기로 한다. 여기까지도 기차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불가능하니 비행기보다는 배를 택했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3등석 침대칸. 침대로만 된 객실이 낯설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러시아로 가는 바다는 그리 순탄치 않다. 동해의 거친 파도를 헤치느라 배가 흔들흔들 몸부림치는 탓에 울렁거리는 속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심한 멀미로 고생한 끝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 들어섰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아시아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유럽에 가깝다. 간간이 동양인이 보이기는 하나 대부분이 서양인이고 건물도 모두 서양식이다. 다만 서양식 건물 사이로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버스가 유유히 횡단하니 그 당당한 위용이 자랑스럽다.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승차권을 구입했다. 드디어 열차에 오른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시베리아 횡단열차 전 구간 개통 기념비.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여백이 아름다운 시베리아 벌판
좌석이 놓인 열차에 익숙한 탓에 침대만 놓여 있는 객차 안은 낯설기만 하다. 승무원이 침대를 만들 모포를 나누어주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간단한 영어라도 통할 줄 알았는데, 알 수 없는 러시아어로 답하니 난감한 노릇이다. 다행히 세계 공용어인 ‘보디 랭귀지’로 침구를 완성했다. 제대한 이후에 이렇게 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자는 건 처음이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열차가 장시간 정차하면 먹을 거리를 사려는 승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열차 안의 단촐한 식탁.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어느새 기차는 시커먼 밤을 뚫고 눈부신 아침을 달린다. 창 밖으로 넓은 시베리아 벌판이 이어진다. 인가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땅이다. 닭장 같은 아파트가 국토를 뒤덮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끝도 없는 여백에 가슴이 확 트인다. 그 옛날 시베리아를 달렸을 유목민들은 어떻게 방향을 잡았을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기차가 쉬지 않고 운행되면 승객들도 답답하겠지만, 다행히도 기차는 차량 점검과 물자 보급, 기관차 교대를 이유로 하루에 두 번 정도는 30분 이상 정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운행 시간이 길지 않은데다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서인지 잠시의 휴식조차 반갑지 않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는 휴식이 간절해진다. 휴식 시간이 되면 승객들은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며 시베리아의 무공해 공기를 양껏 마신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러시아 국내만 운행하지만 열차는 다국적인들로 붐빈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승강장에는 매점은 물론 노점상이 있어 필요한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있다. 노점상에서 파는 먹을거리 중에 야채도 있다. 겨울이 북극보다 더 춥다는 시베리아에서도 극히 짧은 여름을 이용해 이처럼 야채를 재배한다니 자연에 적응하는 인간의 지혜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주일 내내 열차를 타면 모스크바까지 갈 수 있지만, 기차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건 도무지 자신이 없다. 중간에 바이칼호를 볼 수 있는 이르쿠츠크(Irkutsk)에서 내렸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남은 여정에 몸을 싣는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역.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한국 라면 ‘하라쇼’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 안은 정적이 흐른다. 다들 오랜 여정이 지겹기는 마찬가지였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온 나에 대한 관심이 유독 남다르다. 내가 수첩에 쓰는 한글을 비롯해 배낭 속에서 나온 물건 하나하나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세계 최고로 여기는 듯하다. ‘Good’이라는 뜻의 러시아어인 ‘하라쇼’를 연발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횡단열차에서 먹는 음식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라면을 최고로 여긴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모스크바역은 규모가 크고 화려한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나도 우리나라 라면을 샀다. 차내에는 항상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어서 차를 마시거나 라면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러시아인이 라면을 먹는 방법은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다. 주식인 빵을 먹으면서 라면을 포크로 떠 먹는다. 내가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고 있으니, 객차에 있던 러시아인이 우르르 몰려와서 신기한 듯 구경한다.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것도 아닌데 어찌어찌하다보니 서로 마음이 통한다. 차내 사람들과 친해지니 여행이 더 즐거워지는 것 같다. 만주에서 오는 노선과 합쳐지는 치타(Chita)에서는 중국인들도 종종 기차에 오른다. 러시아 국내를 여행하는 열차인데도 어느새 중국인은 물론이고 중앙아시아인까지 다국적 사람들이 모였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끝도 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대평원.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하였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니 금세 시간이 지나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날이다. 차내에 있는 승객들은 도착 4시간 전부터 짐을 챙기면서 내릴 준비를 시작한다. 4시간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에서 부산을 가고도 남는 시간인데 뭐 벌써부터 정리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차내에서 사용한 침대 시트와 모포를 반납하고 정돈을 해야 하니 나도 하차 준비를 시작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긴 여정을 끝내고 새벽녘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이제까지는 온통 허허벌판이었지만, 모스크바는 서울 못지않은 대도시이다. 모스크바를 구석구석 둘러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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