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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외여행] 두 발로 110km를 걸어 만난 사람들 중국 윈난성 스토우청 니시족
[해외여행] 두 발로 110km를 걸어 만난 사람들 중국 윈난성 스토우청 니시족
  • 고승희 작가
  • 승인 201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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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여행스케치=중국] 중국 검색 포털사이트에서 윈난성(云南省)을 찾아보다 흥미로운 사진을 발견했다. 파란 하늘 아래 검푸른 산들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배낭을 맨 한 무리의 서양인들이 짐을 가득 실은 말과 함께 깊은 협곡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만년설산이 병풍처럼 이어지는 호도협(虎跳?)을 능가하는 장중함에 눈이 둥그레졌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이름도 낯선 스토우청(石?城)이란 산간마을을 출발해 모계사회 전통이 살아 있는 마을 루구호(?沽湖)까지, 총 110km를 걷는 여정이란다. 그것도 평지가 아닌, 해발 1720m부터 3400m에 이르는 높은 산들을 쉴 새 없이 넘나드는 난코스. 버스가 드물고 간판 달린 숙소도 없고 가끔 휴대폰도 먹통이 되는 산간 오지를 걷는단다. 어둑새벽에 길을 나서 해 떨어질 때까지 부지런히 걸으면 3일, 보통 사람 걸음으로 4~5일이 걸리는 길이라고. 이 길을 온전히 내 두 발로 걸어서 도착한다면? 무기력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한 달을 고민 끝에, 결국 그 길 위에 섰다.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라본 풍경.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육지 위 외딴섬, 스토우청

총 5일이 걸린 스토우청~루구호 트레킹은 솔직히 고난의 연속이었다. 힘겨웠던 여정이 달콤하게 추억되는 건, 길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다. 트레킹의 베이스캠프였던 스토우청이 여러모로 인상 깊다. 

일단 스토우청으로 가는 길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출발지는 해발 2416m 리장고성(?江古城). 리장고성에서 위룽쉐산(玉?雪山?5592m)을 향해 고도를 서서히 높여가다 해발 3140m 고지의 밍인(?音)을 넘어 1720m에 위치한 스토우청까지 차로 4시간가량 소요된다. 밍인은 북반부 최남단의 만년설을 이고 있는 위룽쉐산의 13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 포인트. 밍인을 벗어나면 진사강(金沙江)이 흐르는 깊은 골짜기를 따라 스토우청까지 차가 곤두박질치듯 내달리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리윈펑네 가족.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스토우청 마을 입구.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리장고성에서 곧장 스토우청까지 가는 버스는 없다. 리장고성에서 버스로 10분여 떨어진 샹산스창(象山市?)에서 6인용 용달차를 수소문해 타고 스토우청으로 향했다. 용달차 기사는 스토우청 주민으로, 이웃에게 주문받은 농수산물과 생황용품 등을 사다주러 샹산스창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여행객을 태워간다. 

스토우청 마을은 1720m 높이의 빈대떡처럼 평평한 산정에 자리 잡고 있다. 삼면을 높은 산들이 호위무사처럼 에워싸고 나머지 한 면에 진사강이 뱀처럼 길게 흐른다. 내려다보면 ‘육지 위 외딴섬’이 따로 없다. 

마을 입구에 돌을 다듬어 만든 독특한 성문이 있다. 소수민족 나시족(?西族) 전통복장을 입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대여섯 분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아마 성문이 우리네 시골 마을회관 같은 장소인 모양이다. 성문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꺼내자 앉아 있던 어르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냉랭한 태도에 그만 머쓱해졌다.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스토우청 마을 전경.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800여 년의 전통이 깃든 나시족 집성촌 
스토우청은 나시족의 집성촌이다. 주차장 부근 서쪽 산자락에 116가구, 스토우청에 108가구, 총 900여 명이 살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나시족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마을을 찾는 여행객이 부쩍 늘었단다. 밤낮으로 흥청거리는 관광지 리장고성 대신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나시족의 삶이 궁금한 이들이란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마을 터줏대감으로 알려진 ‘목(木)씨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녀 역시 나시족으로, 14년 전 산 너머 이웃 마을에서 시집왔다. 표준어를 더듬더듬 구사할 줄 아는 그녀가 5일간의 트레킹에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고산지대의 안전한 트레킹을 위해서는 고도 적응이 필수. 목씨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이 추천하는 마을에서 이틀간 머물기로 했다.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는 루구호.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다음날 아침을 먹고 마을 탐방에 나섰다. 골목에는 불에 굽지 않은 흙벽돌로 지은 나시족 전통가옥이 즐비했다. 마을 곳곳에 부채선인장이 우람하게 자라고 있다. 뾰족 솟은 가시 하나가 어른 엄지손가락만하다. 급할 때 이쑤시개로 사용해도 될 것 같다.  

동네를 어슬렁대가 주민과 마주치면 “니 하오(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럼 주민들은 나를 힐끗 쳐다볼 뿐 대체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계속되자, 나는 속으로 ‘거 참 인색한 마을’이라며 투덜댔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표준어를 할 줄 알지, 어른들은 평생 나시어만 사용해서 보통어를 잘 몰라.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수줍음이 좀 많아. 아가씨가 이해해.”

오해였다. 표준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한 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을 사람들이 차가워서가 아니라 서로 쓰는 말이 달라 마음이 전달되지 않은 것일 뿐이었다.  


마을 골목을 벗어나니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 논밭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진사강을 가까이서 보려고 1시간쯤 두서없이 내려오다 미로 같은 논밭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추수가 끝나고 황량해졌지만 남의 밭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까오 청 시! 까오 청 시!”

소리나는 방향을 쳐다보니 샹산스창에서 용달차를 함께 타고 오면서 친해진 청년 리윈펑(李云峰)이었다. 그가 일러주는 대로 걸어 겨우 미로를 탈출, 다시 그가 일하던 밭으로 들어가 물부터 한잔 청했다. 길을 헤매느라 꽤나 목이 탔던 것이다. 

갈증이 풀리자 함께 밭에서 일하고 계시던 그의 부모님이 눈에 들어온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자  그의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석류를 꺼내 건네신다. “씨에씨에(감사합니다)” 고마움을 표하는 나를 보고 허허 웃는 그의 부모님과 윈펑의 통역을 거쳐 즐거운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윈펑은 스토우청 탄생 배경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줬다.  

1277년에서 1294년 사이였단다. 원나라를 일으킨 몽고족이 윈난성 정벌에 나섰다. 리장 부근 토착 세력이었던 나시족 대부분은 원나라에 투항했는데, 스토우청 주변 지배 세력이었던 목(木)씨와 화(和)씨만은 결사항전을 결심. 해발 1720m 산정에 새로운 터전을 일구기로 결정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성채에 돌을 덧쌓아서 성채를 완벽히 세웠다. 마을로 통하는 출입구는 동문과 서문, 오직 2곳뿐. 지금도 두 문만 닫으면 철통 요새로 변신한다고. 성채 안쪽에 가옥을 짓고, 척박한 산자락을 대대손손 일궈내 만든 것이 계단식 논밭이다. 나시족은 이곳에 터를 잡은 지 벌써 800년 가까이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다.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스토우청 마을 사람들의 교통수단.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투박하지만 인정 넘치는 나시족
윈펑네 가족과 헤어져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 나시족 전통복장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옷매무새뿐 아니라 연세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도 고왔다. 나시족 전통복장은 앞태보다 뒤태가 아름답다. 북두칠성을 닮은 동그라미 일곱 개가 혁대에 그려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연잎에 앉아 있는 개구리 같다. 할머니는 마을에서 마주친 사람 중 처음으로 나의 “니 하오” 인사에 미소로 화답해주셨다. 미소에 용기를 내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시늉을 하니 이내 표정이 일그러지신다.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나시족 할머니가 나눠준 음식. 2014년 1월 사진 / 고승희 작가

그런데 돌아서던 할머니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셨다. 이제라도 사진 촬영에 응해주시려는가? 할머니를 따라 밭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도 손짓으로 앉으라고 말씀하신다. 할머니가 가리키는 바닥에 엉거주춤 앉자 대접 한가득 차를 따라주신다. 장작불에 갓 구운 고추랑 빵도 주시더니만 콜라병 뚜껑에 소금을 따라 고추를 찍어먹으라는 몸짓을 보인다. 건네주시는 대로 족족 받아 맛있게 먹자 다시 인자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시는 할머니. 아까 사진을 청했을 때 홱 돌아섰던 일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하마터면 또 섣부른 판단으로 이 마을 사람들의 본심을 오해할 뻔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겨 사진기를 가방에 집어넣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니 비로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부쩍 늘어난 여행객들이 밭을 헤집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불편을 겪었던 마을 사람들의 속사정도 듣게 됐다. 유물이나 유적지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직접 보면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저 본다고 알아지는 게 아니다. 먼저 마음을 열어야 상대방이 보인다. 겉은 투박해도 인정 넘치는 사람들의 속이. 

INFO. 리장에서 스토우청 가는 법
리장 샹산스창(상산시장)에서 스토우청으로 가는 용달차(6인용 1톤 트럭)를 얻어 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스토우청 주민이 운전하는 용달차는 매일 아침 8~9시경 시장 입구에 들어서 여행객이 모이면 출발한다. 용달차 비용은 한 사람당 00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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