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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이와 여행] 잘 노는 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된다 광양 농부네 텃밭도서관
[아이와 여행] 잘 노는 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된다 광양 농부네 텃밭도서관
  • 서지예 기자
  • 승인 2013.08.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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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여행스케치=전남] 전남 광양의 한적한 농가에 ‘농부네 텃밭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 댁을 닮은 소박한 시골집의 정경으로, 이곳에선 나무 위 오두막이, 연못의 개구리며 포동포동한 토끼가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잘 노는 게 힘’이라는 별난 도서관을 찾았다.  

요즘에는 마냥 뛰어노는 대신, 잘 짜인 프로그램을 내세운 체험 학습장을 찾는 아이들이 많다.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려는 부모들의 교육열이 작용한 탓인데 농부네 텃밭도서관은 이런 변화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다. 정해진 체험 프로그램도 없고, 지도해주는 강사도 없지만 주말이면 텃밭도서관 마당이 아이들로 가득 찬다. 재밌는 건, 명색이 ‘도서관’인데 책을 보러 오는 아이들보단 작정하고 뛰어놀 요량으로 찾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시골집처럼 생긴 텃밭도서관의 마당에는 나무 위 오두막과 작지만 수생식물이 가득한 연못, 그네 의자 등이 놓여 있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테마파크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덕분에 스스로 자연 속에서 놀 거리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해진 놀이가 없으니 어른들은 ‘이것 한 번 해봐라’ 하는 식으로 데리고 다닐 일 없이 그늘에서 편히 쉬면 그만이다. 부모들이 최신 서적으로 가득한 대형 도서관을 놔둔 채 아이 손을 이끌고 텃밭도서관을 찾는 이유다.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텃밭도서관은 도서관장이자 농부인 서재환 씨 집과 울타리 없이 붙어 있다. 아이들을 좋아했던 그가 처음 진상면 마을회관에 도서관을 연 것이 1981년, 그 후로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학교 옆으로 도서관 자릴 옮기기도 하고, 경운기에 작은 책 트럭을 싣고 달리며 헌책을 새 책으로 교환해주기도 했단다. 

“나 어릴 적만 해도 친구가 새 책을 갖고 학교에 오면 그거 한 번 빌려 보려고 한참을 구슬려야 했거든. 그렇게 어렵게 책을 봐서인지 아이들에게 책만큼은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 그게 도서관의 시작이야.”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연못 위를 지나는 줄을 잡아당기면 배가 전진한다.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마차로 변신한 경운기에 오른 아이들.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그러나 서 관장은 10여 년 전부터 아이들에게 독서보다 노는 것이 훨씬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텃밭도서관을 자연 속에서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에너지가 바닥날 때까지 뛰어놀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데 요즘엔 가만히 앉아 집중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있다고. 이곳에 와서 만큼은 자연과 살도 맞대고, 마음 내키는 대로 놀다 가라는 것이 그의 당부이다.  

텃밭도서관식 놀이에는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 텃밭이란 이름에서도 전해지듯 텃밭처럼 아담한 공간 안에 이리저리 놓인 자질구레한 놀잇거리를 가지고 놀아도 좋고, 우물 앞 물웅덩이에서 수영을 해도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서관을 감싸고 있는 풀과 나무로 재미난 장난감을 만들면서 놀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가지고 놀 때처럼 혼자 놀 수 없으니 자연히 처음 만난 아이들과도 어울려 놀게 된다. 놀 거리를 잘 찾아서 노는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재밌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서 관장의 ‘잘 노는 게 힘’이란 주장의 원천이다. 

“개굴~개굴, 지금 나 개구리 흉내 내고 있는 거예요.”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우물 앞 웅덩이에서 물레방아를 돌려보는 서 관장과 아이들.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아빠와 함께 우물가에서 흠뻑 젖어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5살 찬희가 묻지도 않았는데 살갑게 설명해준다. 도서관 마당에 걸린 해먹에 누워 연신 꼼지락거리는 모양새가 아까 잡은 개구리가 퍽 인상 깊었나 보다. 처음엔 무서워서 만지지도 못하더니 얼마 안 가 조그만 개구리를 팔뚝에도 붙였다, 손등에도 붙였다 하며 무한한 애정을 쏟는다. 형 희윤이는 2살 더 많다고 훨씬 적극적이다. 우물 앞에 물이 고여 있는 작은 물웅덩이로 들어가더니 아빠가 만들어준 물레방아를 시험하는 데 여념이 없다. 솜씨 좋은 아버지가 댓잎을 잘라 만들어준 작은 물레방아를 물줄기에 가까이 대자 바퀴가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별것 아닌 장난감인데 그 모습이 신기해 아이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아이들이라 재밌게 놀다가도 곧 다른 놀잇거리를 찾아 텃밭도서관을 기웃거리는데 서 관장은 연못 옆 정자에 앉아 이웃과 담소만 나눌 뿐이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이것 가지고 놀아라, 저것 가지고 놀아라 하고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저희들끼리 놀이를 개발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미 몇 차례 텃밭도서관을 찾은 적이 있다는 아이의 부모님도 이곳에서만큼은 마음껏 탐험하고 스스로 호기심을 해결하도록 자유롭게 아이들을 풀어놓는다고 했다. 

“여기 오면 어찌나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힘이 넘쳐나는지 몰라요. 집에서는 꼼짝도 안 하려고 하는데 말이죠. 신나게 뛰어다니는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하하”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놀다 지치면 책을 읽어도 좋다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옛날 물건을 모아 만든 박물관.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아빠, 어디 가?>의 자상한 아빠, 윤민수만큼이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이 능숙해 보이는 고우일 씨의 대답이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다가 아빠를 찾을 때면 대나무 잎을 이용해 메뚜기도 만들어주고, 연못에서 아이와 작은 배도 함께 타준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빠와 친해진다.

이곳에선 오래된 물건을 모아놓은 창고도 근사한 박물관이 된다. 쓰던 사람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은 맷돌, 풍금과 문이 달린 TV 등은 고물 취급을 받는 대신, 어른들에게 어릴 적의 향수를,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유물이 된다.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던 서 관장도 이 박물관만큼은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알고 보니 농기구가 커서 행여 아이들이 다칠까 염려돼서라고. 요즘 젊은 부모 중엔 아이들만큼이나 시골 생활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 서 관장이 나서서 놀이를 시연하는 일도 많아졌다. 활쏘기며 굴렁쇠 굴리기, 채소나 매실 따기 등 정해진 것 없이 그때그때 놀 거리가 바뀌지만 서 관장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재미나게 놀다 갈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자처한다.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나무 위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다. 2013년 9월 사진 / 서지예 기자

텃밭도서관의 책은 사랑채 옆 서가나 도서관에서만 읽으란 법이 없다. 어디서든 읽고 돌려놓기만 하면 되므로 노느라 치솟은 열기도 식힐 겸, 서가에서 책 한 권 뽑아 들고 그늘에 누워도 좋다. 보드라운 나무의 질감이 느껴지는 원두막에 벌렁 누워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거나 정자에 앉아 연못 구경을 하며 독서를 즐기는 일은 여느 도서관에선 찾기 힘든 즐거움이다. 


“70억 인구 중에 내가 제일 잘하는 거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거든. 근데 어른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억지로 결정하려 들지. 무얼 하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재밌게 하면 그만이야. 그러려면 잘 놀면서 힘을 길러야 하고.”

무심한 듯 아이들이 내키는 대로 놀도록 내버려두는 근본에는 재미나게 노는 것이 힘이란 철학이 확고하다. 텃밭도서관을 찾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그런 힘을 얻고 가길 바란다며 기자에게도 재밌게 살란 당부를 잊지 않는다.

INFO.
농부네 텃밭도서관 

입장료 무료(민박이나 식사는 소정의 금액을 청구함)
주소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도길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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