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평택] 복잡한 머릿속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다면 평택호를 거닐어보자. 넉넉한 호수의 품에 안기는 순간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생활을 정리할 여유가 없다. 책상 위에 서류뭉치가 쌓여가고 컴퓨터 바탕화면엔 폴더가 늘어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면 머릿속은 뒤죽박죽 엉키기 시작한다. 너저분한 책상에서 서류를 찾느라 허둥대고, 작성한 문서를 찾아 여기저기 클릭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쯤이면, 머리에선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지금은 재부팅이 필요해!’
단 한 시간만이라도 머리를 비울 수 있는 곳으로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몸과 마음은 휴식을 원하고 있다.
이럴 때 가면 딱 좋은 곳이 바로 평택호이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일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도 않아 마음을 차분히 할 여행지로 제격이다. 자신을 가장 편안한 상태로 둘 수 있는 ‘휴식 여행’이다.
차를 몬 지 두 시간이 안 되어 평택호 관광지에 닿았다. 호수를 사이에 두고 이쪽은 경기도 평택, 건너편은 충남 아산이다. 아직까지 아산호, 평택호 둘 다 통용되기는 하지만, 요사이 정확한 명칭은 ‘평택호’이다.
평택호는 진위천과 안성천이 만나 아산만으로 흐르던 물길이 방조제에 막혀서 이루어진 담수이다. 2km의 바닷길을 메우면서 24㎢의 거대한 호수가 생긴 것이다. 아산만 방조제의 배수 갑문을 중심으로 한쪽은 호수, 다른 한쪽은 바다이다. 호수와 바다를 한가한 갈매기가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멀리 배수 갑문이 보이는 둑에 먼저 올랐다. 바닷길을 따라 길게 뻗어나간 둑은 평택 신항만 조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란다. 바다를 메워 간척지를 만들고 있는 중이고, 지금 서 있는 이곳은 간척지의 외곽 방조제이다. 이 둑의 중앙에 조성된 계단을 오르면 자그마한 광장이 있다. 여기에선 바다와 뭍이 모두 보인다.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강태공이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고 있다.
반대편 호수로 건너왔다. 이제부터 호수의 풍경을 제대로 즐겨보려 한다. 햇살에 물결이 반사되어 호수가 반짝인다.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라 저절로 걸음에 속도가 붙는다.
수변 데크는 호수를 따라 길게 뻗어 있다. 1km는 족히 되어 보인다. 그런데 수변 데크가 시작하는 지점에 평택호 관광안내소라 쓰인 건물이 먼저 눈에 띈다. 다리를 건너 호수 위에 떠 있는 안내소로 걸음을 옮겨 평택호 관광 안내지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사진을 보았다. 이곳 2층엔 호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유리문을 밀고 전망대로 나가니 전망대 한쪽으로는 요트와 오리배가 정박해 있고, 나머지는 사방이 확 트인 호수의 풍경이다. 난간에 기대어 한참을 고요한 호수를 바라본다. 여름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요트를 즐겨도 좋겠다.
연한 갈색의 나무가 짱짱하게 짜여져 있는 수변 데크는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호수 쪽으로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그 모양이 둥글기도 하고 각이 져 있기도 하다. 호수 그대로의 모양을 살리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호수를 보고 싶은 사람의 욕구를 반영한 것 같기도 하다. 바닥 또한 평평한 것이 아니라 아래로 부드럽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구간이 있어 걷는 동안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발을 디딜 때마다 ‘통통’하는 경쾌한 울림이 있어 좋다. 그 경쾌한 발걸음에 귀를 기울이며 걷다가, 호수를 바라보며 머무르기도 한다. 그렇게 가다보면 함선 모양의 ‘아트’에 다다른다. 데크와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전망대는 이제 막 출항을 할 듯한 기세로 뱃머리를 호수 쪽으로 내밀고 있다. 함선 모양을 따라 길이 둘러져 있어, 계단을 밟고 올라 뱃머리에 서본다. 영화 <타이타닉>의 로즈라도 된 양 팔을 벌리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본다. 봄바람이 시원하고 촉촉하다.
수변 데크가 끝이 날 지점에 평택호예술관이 있다. 사계절 중에 봄의 풍경이 제일이라는 평택호예술관은 잔디밭과 꽃나무, 분수가 멋진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파라솔에,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관람객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평화롭다. 예술관 내 전시관은 미술작품을 상설전시한다. 피라미드 모양의 예술관 꼭대기 층에서는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명상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