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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자전거 타고 한강여행] 조선시대 말 기르던 곳, 지금은 그래피티 명소  안양천 젖줄 도림천
[자전거 타고 한강여행] 조선시대 말 기르던 곳, 지금은 그래피티 명소  안양천 젖줄 도림천
  • 김대홍 기자
  • 승인 2009.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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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거리의 예술가들이 그려놓은 그래피티. 감탄과 웃음이 절로 난다.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여행스케치=안양] 자전거 교통수송분담율이 1%만 상승해도 연간 5000억원 이상의 에너지 절감과 환경편익 등의 효과가 있고, 국민건강과 관련해서는 1조원 이상이라고 하지요. 친환경 여행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한강 여행, 이제 그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강에 물을 대는 1급지류하천은 여러 개다. 탄천, 중랑천, 안양천이 대표적이다. 1급지류하천엔 좀 더 작은 지류하천이 물을 댄다. 2급지류하천이다. 탄천엔 양재천이, 중랑천엔 청계천 등이 물을 댄다. 안양천에 물을 대는 곳 중 가장 큰 천은 도림천이다. 관악산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서울대를 지나고 신림동을 스쳐, 신림역-신대방역-구로디지털단지역-대림역-신도림역-도림천역과 나란히 달리다 안양천에 합류한다. 

주변 풀이 무성하고 국가에서 기르던 양마장(襄馬場)이 있어 조선시대에 마장천(馬場川=마장내)이라 불리기도 했던 도림천은 1990년대 이후 복개와 복원 논쟁을 거친 끝에 다시 복원 작업 중이다. 20여 년 동안 땅속에 갇혀 있던 천이 이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말쯤이면 새 신부처럼 모습을 드러낼 도림천을 살펴봤다.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꽃비 내리는 길 위에 발길을 멈추다.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국내 그래피티 명소, 도림천
신도림역에서 시작해보자. 서울에서 가장 혼잡한 역 중 하나다. 지금은 다소 명성(?)이 떨어졌지만 1996년까지만 해도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역 1위였다. 하루 평균 승하차 인원이 16만9000명으로 2위인 신림역보다 3만 명이나 더 많았다. 지금은 강남역과 삼성역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역에서 내려 천으로 내려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개성 넘치는 벽화들이다. 스프레이로 불특정 벽에 그리는 이런 그림을 그래피티(Graffiti)라고 한다. 1970년대 뉴욕 빈민가에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그래피티 명소로는 부산대 앞 지하철역, 홍익대 토끼굴, 신도림지하철역을 든다. 신도림지하철역 그래피티는 수준도 높지만 숫자도 만만치 않다. 숫자나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게 있는가 하면,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한 캐릭터도 있다. 

문제는 불법이라는 점. 2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맞을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강조하려는 듯 벽화 옆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본 시설은 공공시설물로서 낙서나 그림 등으로 훼손 시 관련법규(도로법 97조)에 의해 처벌 받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대림역 저류지. 깨끗해 보인다고 물에  잘못 들어가면 감전의 우려가 있다. 후덜덜!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신도림역에서 도림천 하류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한쪽은 자전거가 달리지만, 한쪽은 공사 중이라 막아놨다. 복원 공사 중이다. 넓은 땅엔 온갖 꽃이 자랄 예정이다. 도림천은 1996년 10월 10일 복개공사 기공식이 열리며 콘크리트 아래 묻히기 시작했다. 2001년까지 3.75km를 복개해 2차선도로를 4차선으로 넓힌다는 계획이었다. 출근길 교통난 해소를 위한다는 관의 발표에 주민들은 상가 활성화, 땅값 상승 등을 기대했다.

같은 기간 도림천 살리기 시민연대가 결성됐다. 이들은 교통난 해소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며, 마을 생태환경이 크게 파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와 조사 작업에 들어가 버들치와 가재가 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1999년엔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이 만들어졌다. 영화제를 열고, 생태탐사단을 운영했다. 서울대 미대, 서울미술고등학교와 함께 벽화도 그렸다. 그러자 주민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2002년 관악구청은 다시는 복개를 하지 않겠다는 하천정비계획을 발표했다. 이듬해 구청은 복원 기본계획안을 세워 시에 제출했다. 

한껏 부푼 꽃들은 싱그럽다. 이따금 바람이 불면 꽃비가 내린다. 꽃비를 맞는 가족들 표정이 무척 밝다. 안양천 합류지점까지 간 뒤 이번엔 반대편 길로 갈아탔다.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다. 도림천 자전거 길은 폭이 좁고 이용자가 많다. 보행자와 자전거가 같이 다니기엔 아무래도 불편하다. 복원작업을 할 때 양쪽이 만족하며 다닐 수 있도록 넉넉하게 길을 내야 할 것이다. 양쪽엔 고층건물이 빽빽하다. 14.2km 구간 가운데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대림천 상류 구간의 유채꽃. 꿋꿋하게 홀로 폈다.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조선시대 도림천 지역이 말을 기르던 곳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얼마나 풀이 무성했을까.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한양 부근엔 말을 키우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여의도도 그중 한 곳으로,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어 양(襄)말벌이라 불렸다. 지금 국회의사당 자리엔 양마(양말)산이 있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 장안동, 건국대 자리 또한 말을 키우던 곳이다. 

도림천은 지하철역과 나란히 달린다. 지하철 역사가 천장을 이루니 그늘진 구간이 많다. 여름철 더위나 비를 피하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림역 옆에선 맑은 물이 흐른다.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다. 대림역에서 생기는 자연수다. 살수차량에 물을 공급하는 간이저류란다. 맑은 물을 신기하게 쳐다보다 깜짝 놀랐다. 감전, 익사, 심장마비 등 우려가 있으니 절대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이 눈에 ‘콱’ 박힌다. 

서울대생들이 둥지를 튼 곳, 녹두거리
상류 쪽으로 방향을 튼다. 신대방역에선 길이 끊어진다. 여기서부턴 천 위 길을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봐야 한다. 아래는 한창 복원 공사 중이다. 신대방역 옆은 보라매공원이다. 1986년 공군사관학교가 떠난 자리에 공원을 만들었다. 매년 800만 명이 넘게 찾을 정도로 인기가 좋은 공원이다. 번데기에 군밤, 뽑기 같은 먹을거리들이 고픈 배를 유혹한다. 장기삼매경에 빠진 어르신들, 분수대에서 소금쟁이 잡느라 신이 난 어린이들, 풀밭에 앉아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이 제각기 봄날을 즐긴다.

놀기 좋은 곳이지만 곳곳에 한 시대를 드러내는 상징물이 세워져 있다. 산재희생자위령탑은 산재노동자들의 넋을 기린다. 1964년부터 2003년까지 업무상 재해를 당한 350만 명, 그 중 목숨을 잃은 6만2000여 명을 애도하는 곳이다. 4월 28일이 제4회 산재노동자의 날이다.

반탁반공순국학생충혼탑은 해방 정국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였던 반탁진영이 지난 역사를 기념하며 세운 탑이다. ‘반탁승리 김구’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불과 60여 년 전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아이들의 물놀이삼매경. 보라매공원. 2009년 5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신림역을 지나 신림2교부터는 다시 천 옆 도보 길이 나타난다. 근처 오르막길은 쑥고개다. 옛날 숲이 울창해 주민들이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었다 해서 숯고개라 불렸다. 쑥고개는 숯고개가 바뀐 이름이다.

천 도보 길이 시작되는 곳엔 마을 주민들이 그린 벽화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농구장에선 밤낮 상관없이 경기가 펼쳐진다. 

오래지 않아 녹두거리가 나타난다. 서울대생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술을 마시고 시를 읊고 문화를 만들었다. 작가 이인화는 <시인의 별>이란 작품에서 녹두거리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학생들이 ‘녹두거리’라 부르는 후줄근한 하숙촌 거리다. 녹두거리 입구를 흘러가는 복개되지 않은 시커먼 개천으로부터 이른 봄의 태양이 발효시킨 정겨운 악취가 모든 신입생들을 맞아주었다. 생선의 비린내와 쥐 썩는 냄새가 혼효(混淆)된 그 퀴퀴한 냄새의 물결을 헤치고 들어가면 녹두거리는 관악산을 향해 가파르게 뻗은 오르막길을 따라 대학생들을 상대하는 싸구려 술집과 만화방과 당구장, 순댓국집과 간이식당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있었다. 길가에는 누군가 토해놓은 오물과 개똥, 담배꽁초, 사과껍질, 구겨진 신문지, 비닐봉지 나부랭이가 흩어져 사열을 받는 병사들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은 흐리다. 천 위 차도로는 자동차들이 부지런히 달린다. 풀만 가득한 천 밑 도보 길은 쓸쓸하다. 어느 순간 감탄사를 내질렀다. 살짝 웅덩이가 생긴 곳에 백 마리는 족히 넘을 듯한 새끼고기떼가 노닌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이곳에도 엄연히 생명이 산다. 도림천 주민들이 이곳을 살리려고 그렇게 애를 쓴 것은 숱하게 이런 풍경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시가 밝힌 계획에 따르면 오는 12월 말이면 새로 단장한 도림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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