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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예술기행] 양양 일현미술관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바로 나
[예술기행] 양양 일현미술관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바로 나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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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알현미술관 앞 세워진 조형물.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양양] 양양에 이르자 시원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직은 쓸쓸한 동호리해수욕장을 거닐다. 카메라에 파도를 담아본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담은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해 그곳을 찾았다.  

일현미술관을 찾는 건 쉬운 듯 쉽지 않다. 동해안 등줄기를 따라가는 7번 국도에서 지척이지만 샛길로 들어서야 한다. 길가에 보란 듯이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만 정작 그것을 따라가면 ‘을지인력개발원’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건물을 보고 차를 되돌리기 일쑤다. 하지만 이럴 땐 이정표를 믿어보자. 바로 이 을지인력개발원 건물에 일현미술관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일현미술관은 교육동 3층에 있는데, 교육동까지 들어가는 길의 정원 곳곳에 예술작품들이 눈에 띈다. 어쩌면 미술관은 교육동 3층이 아니라 정문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일현미술관 전경.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우선은 미술관 내부를 둘러보기로 했다. 마침 어린이집에서 꼬마 손님들을 한가득 실어 내린다. 쓸쓸한 미술관 관람에 동행이 생겨 반갑다. 물론 작품 관람보다는 내가 든 카메라에 더 관심을 보이는 꼬마 관람객들이지만. 

미술관 내부는 생각보다 넓지 않다. 소장품들이 걸린 갤러리는 동선을 생각할 것 없이 그냥 통로를 따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미술에 조예가 깊다면 부족함 없이 깔끔한 관람이 되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아쉬울 만도 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미술관 관람이 끝이 났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가장 흥미롭고 볼만한 구경거리에는 미처 다가가지도 못했다. 밖으로 나와 왼쪽으로 향하면 일현미술관의 하이라이트가 드러난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전망대. 파란 캔버스에 뜬금없다 싶을 정도로 우뚝 솟은 하얀 전망대는 마치 미래에서 온 로봇의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바다를 앞마당 삼은 테라스.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그나저나 전망대이니 올라가긴 해야겠는데 이제부터 시련이다. 18.3m의 높이는 둘째 치고, 계단에 격자무늬로 구멍이 숭숭 뚫려 땅바닥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느낌,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느낌 그대로다. 어느새 엉덩이는 뒤로 쑥 빠지고 두 손은 양쪽으로 난간을 꼭 잡게 되니 올라가는 모양새가 썩 멋있지는 않다. 게다가 오금이 저려 아래를 바라보지 못하니 고개는 어정쩡하게 뒤로 젖혀진다. 순간 세차게 부는 한줄기 바람에 현기증이 확 일어난다. 고작 철제로 만들어진 이 구조물이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감마저 엄습해온다. 

이 전망대는 단순한 전망대가 아니다. ‘Sky is the limit’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는 예술작품이다. 전망대를 꽤 아찔하게 만들어놓은 것도 작가의 의도이다. 방금 느꼈던 공포와 아찔한 현기증도 의도된 것이다.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미술관 앞의 정원도 미술관의 연장이다.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공중에 아득하게 떠 있는 두 개의 공간은 전망대이자 예술품이다.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이 작품을 만든 프랑스의 건축가 디디에 포스티노는 일상에서 중력을 거슬러 사는 현대인들에게 아찔함과 현기증을 줌으로써 위치감각을 일깨우게 하려는 의도를 건축물에 담았다. 매일 몇 십m가 넘는 허공에서 생활하면서도 그곳이 하늘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먹고 자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18.3m의 건축물로 땅과 하늘의 아찔한 경계를 맛보게 한 것. 그런 의도를 몸으로 이해하니 이 전망대는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쉽고 짜릿한’ 예술작품이다.    

꼭대기에 이르면 사방이 확 트인 공간에 두 개의 분리된 공간이 드러난다. 한쪽은 통유리와 격자무늬로 하늘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방이고, 다른 한 곳은 바닥과 천장, 좌우가 폐쇄된 공간이다. 다만 앞뒤에 통유리만이 뚫려 있어 우리가 평소 생활하는 공간과 비슷하다(하지만 이 공간은 관리상의 문제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작가는 이 두 공간을 ‘이란성 쌍둥이’로 표현했다. 같은 높이에 같은 모양으로 들어서 있는 공간이지만 외부와의 경계를 차단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 안에 있는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 

‘시야가 오픈된 조망실에서는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탈의 감각을 느끼게 하고 싶었고, 사방이 막힌 조망실에서는 안정된 분위기에서 통유리 벽을 통한 무한한 해방감을 추구하려고 했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예술보다 카메라가 더 재밌냐?’ 미술관을 둘러보는 아이들.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앞쪽 통유리에 얼굴을 딱 붙이고 앞을 바라보니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뒤쪽 통유리로는 하늘과 산이 경계를 이루며 바라보인다. 발밑에서도 아득함이 느껴지니 마치 허공에 몸이 둥실 떠 있는 착각이 든다. 전망대 자체가 바람을 막아주는 구조가 아니니 허공으로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공포로 느껴지면서도 짜릿하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발 아래로는 자동차가 유유히 지나가고 머리 위로는 갈매기가 유유히 날아간다. 나는 지금 땅도 하늘도 아닌 경계의 공간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것이다. 그 낯선 경험이 두려움과 동시에 무한한 해방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아깝거니와 바람에 몸이 날아가버릴 것 같은 이 느낌도 선뜻 포기할 수 없다. 이제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유도 제법 생긴다.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18.3m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동해. 2009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계단을 내려올 때는 올라올 때와 달리 난간을 잡지 않았다. 항상 4층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행동이다. 다만 잠시 동안의 낯섦이었다. 

전망대를 나와 오른쪽으로 정원을 따라가면 바다와 어우러진 작은 조각공원을 만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올라올 때 보았던 작품들이지만 반대편에 서서 바다를 배경으로 다시 보게 되니 아까의 밋밋한 느낌과는 완전 딴판이다. 이곳에서 바다는 작품을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또 하나의 ‘경계’인 셈이다. 

우연히 둘러보게 된 미술관에서 ‘경계’에 대한 고찰을 얻는다. 더불어 이제껏 익숙함이란 것에 묻혀 얼마나 무감각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며 어찌 그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것은 바다이고 저것은 산이고 저것은 나무라고 생각했을까.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시선을 바꾸면 많은 것을 재발견한다.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이고, 여행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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