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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별한 바다 여행] 인천 앞바다에는 모래 거인이 산다 인천 대이작도 풀등
[특별한 바다 여행] 인천 앞바다에는 모래 거인이 산다 인천 대이작도 풀등
  • 전설 기자
  • 승인 2013.07.01 0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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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인천] 인천시 옹진군 대이작도에 가면 수평선 위에 길게 드러누운 모래 거인을 만날 수 있다. 평소에는 바다 밑에 잠들어 있다가 썰물 때만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풀등’이다. 바다 한가운데 쌓인 너비 1.15km, 길이 3.59km의 모래 지형이 하루 두 번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는데,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진귀한 생태 여행지다. 면적이 여의도의 몇 배가 넘어 날이 좋으면 사승봉도부터 자월도 서남단까지 이어진 장대한 모래 평원을 목격할 수 있다.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수심이 깊지 않은 큰풀안해수욕장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풀치라고 하지. 갈치 새끼 풀치. 섬에서 보면 생긴 게 바다 위에 갈치 얹어놓은 거 같잖아. 멀리서 보면 풀치인데, 가까이서 보면 진짜 어마어마해. 작년인가 대학생들이 ATV 타고 왔다 갔다 해본다고 갔다가 절반도 못 찍고 그냥 왔어. 여름에는 관광 온 사람들 다 데리고 가도 자리가 남아돌아. 넓기도 넓지만 바다 한가운데 또 바다가 있으니 놀기는 또 얼마나 좋아. 그니까 여름이면 다 풀등 올라가서 파라솔 꽂고 조개 줍고 하면서 물놀이한다고.”


풀등 보려고 아침부터 첫차 타고 서울에서 달려왔다고 하니, 벙거지를 쓴 노신사가 우수수 풀등 자랑을 늘어놓는다. “지금 가봤자 들물(밀물) 시간이라 바로 나와야 돼. 그러게 오기 전에 물때 좀 보고 오지, 그냥 왔어? 물 들어오면 배도 사람도 못 들어간다고. 다 물에 꼬르륵 잠겨버려서. 잠잘 덴 잡았어?” 뭍에서 왔다 하니 애정 어린 잔소리도 잊지 않는 게 섬 인심이다.

풀등을 보려면 작은풀안해수욕장의 풀등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썰물 시간 맞추기. 여행에 앞서 가장 물이 많이 빠지는 시간을 알아두어야 헛걸음을 면한다. 사람에게 물때를 맞출 수 없는 섬에서는 사람이 바다의 시계에 맞춰야 하는 법. 풀등 탐험은 물때에 맞춰 다음 날 아침으로 미루고 5분 거리의 작은풀안해수욕장에 내려선다. 작은풀안의 ‘풀’은 갯벌을 뜻하는데 썰물 때면 바다, 갯벌, 모래사장의 3단 놀이터가 완성된다. 호미 한 자루 꺼내 들고 바지락, 박하지(게), 고둥을 잡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결 고운 모래사장을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바다에 첨벙 뛰어들어 해수욕을 즐기는 대학생 무리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게 잡아요, 게. 한 바퀴 돌았더니 아주 묵직합니다. 잔뜩 잡아서 애들이랑 같이 라면 끓여 먹으려고요. 어제는 부지런히 돌아다녀 바지락을 한 아름 잡았죠. 저기 돌무더기에 가면 어른 손가락만 한 고둥이 지천입니다. 삶아 놓으면 애들 간식에 어른 술안주로도 딱이에요.”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장골마을에서 위쪽은 선착장 아래쪽은 계남마을.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3대가 함께 나왔다는 이영선 씨 가족은 바다가 꺼내놓은 먹거리로 두 손이 무겁다. 아빠 엄마가 저녁거리를 챙길 동안 아이들은 할머니 손을 잡고 맨다리로 바다를 건넌다. 수심이 얕은 바다가 파도에 들썩거릴 때마다 까르르.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에 귀가 즐겁다.

대이작도를 본격적으로 즐기려면 하룻밤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다. 뭍으로 나가는 배가 4시 반에 일찌감치 끊기기도 하지만 섬을 가로지르다 보면 들를 곳이 많다. 추정 나이만 25억 년이 넘는다는 최고령 암석을 지나 익살스러운 장승공원을 둘러보고 아들을 점지해준다는 삼신할미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기암괴석이 감옥처럼 둘러싸였다는 옥중골과 물맛이 신통해 회춘할 수 있다는 회춘골에는 섬사람들의 진득한 이야기가 한 보따리다. 한눈에 승봉도, 사승봉도, 자월도가 내려다보인다는 부아산과 송이산 트레킹 코스를 돌아보려면 하루를 다 써도 모자란다. 1시간이면 섬의 끝에서 끝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섬이 어찌나 수다스러운지. 길모퉁이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 모퉁이를 돌면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산 자가 망자를 배웅하는 ‘이별 모퉁이’라는 사연이 서려 있다. 섬의 이야기를 전해주려면 과묵한 아빠도, 말수 없는 엄마도, 덩달아 수다쟁이가 돼버린다.

첫날 섬을 방방 뛰어다니다 둘째 날 아침을 맞는다. 새벽 내 비가 내리더니 물안개가 자욱히 꼈다. 혹여나 배가 못 뜨는 건 아닌지. 누가 신기루 섬 아니랄까봐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 초조함 속에 드디어 출항. 희뿌연 안개를 헤치고 풀등이 장엄한 본모습을 드러낸다.


“안개가 심한 날은 멀리 가면 배를 못 찾습니다. GPS 안 가지고 다니죠? 워낙에 넓어 길을 잃을 수 있으니 길을 모르겠으면 모래사장에 찍힌 발자국을 되짚어 나오세요. 바다로는 들어가지 말아요. 안개가 짙어서 위험한 데다 구덩이가 낭떠러지처럼 깊습니다.”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정대적골 아래 풀등선착장.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대이작도 토박이라는 김유호 선장의 농담 반 진담 반의 당부를 듣는다. 진짜 사막도 아닌데, 육지가 코앞인데, 설마하니 길을 잃겠나. 그러나 안개에 휩싸인 풀등에 내려서자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신기루에 내려선 것인지, 간밤 꿈결에 다시 들어온 것인지, 바다 위인지 사막 위인지 모를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래전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는 금과 은의 섬을 인천 앞바다에서 보았다면 누가 믿어줄까. 모래벌판 위 밤새 다녀간 해저의 물결이 무늬로 남아 모래 정원을 만든다. 미처 나가지 못한 바닷물은 평원을 가로질러 근사한 물줄기를 그린다.

“아까 선장 아저씨 말 들었지? 멀리 가면 길 못 찾아. 바다 한가운데서 미아 되는 거야.” 엄마의 으름장에 아이가 겁을 집어먹는다. 하지만 어른들의 노파심과는 달리 풀등은 아이가 뛰어놀기에 최상의 놀이터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바다 아래 가라앉았던 섬은 발자국 하나 없는 깨끗한 민낯이다. 미처 바다로 나가지 못한 짱뚱어가 퐁퐁 뛰어오르고 불가사리는 모래사장에 별을 그려 넣는다. 모래 아래에선 개오지, 떡조개, 총알고둥, 금게, 큰구슬우렁이가 방울방울 숨구멍을 틔워놓는다. 쭈뼛거리던 아이들이 약삭빠른 갯것들과 달음질을 시작한다.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풀등 위로 바다의 물결 무늬가 촘촘하다.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섬 전체가 ‘생태 보전 지역’인 풀등에서는 뭍에서처럼 양껏 조개를 캐거나 잡지 못한다. 오늘 본 풀등이 해마다 조금씩 깎여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한때 풀등이 50만 평에 달하던 풍족한 시절에는 웅덩이에 갇힌 꽃게며 광어를 주워 담기도 했단다. 하지만 매년 토건업체가 풀등 주변의 모래를 퍼가고, 여행객이 풀등의 바다 생물을 모조리 잡아들이면서 풀등은 30만 평으로 줄었다. 바다 위 시한부 섬이라던 풀등이 실제로 시한부 생을 보내고 있다. 뭍에서도 캘 수 있는 조개를 캐느라 바닥만 보기에는 풍경이 너무 아깝다. 시선을 멀리 두고 바다에 둘러싸여 풀등 속을 걸어보자. 마치 바다 한가운데를 걷는 듯 몸이 떠오른다.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1967년작 <섬마을 선생> 촬영지 기념 벽화. 2013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아침까지는 코앞도 내다볼 수 없던 안개 섬 위로 해가 뜬다. 안개가 차츰 옅어진다. 아침에는 베일에 싸여 신비롭던 풀등이 볕을 받아 생기 있게 반짝거린다. 배는 그새 새 손님을 잔뜩 싣고 나타났다. 새 손님을 내려놓고 다시 뭍으로 데려가느라 쉴 틈이 없다. 다시 바다가 되기 전, 밀물 썰물이 만나는 4시간 동안의 분주함이다. 밀물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풀등은 다시 바다로 들어가 발자국을 지운다. 매일 아침 말간 얼굴로 내일의 손님을 맞는다. 


특징 하루 두 번 썰물 때만 남북 3.59km, 동서 1.15km의 풀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변 길이 최대 3.59km
요금 풀등 유선 운항료 어른 1만원, 어린이 7000원
편의시설 화장실 6동, 샤워실 3동, 해변 캠핑
주소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이작1리

Tip. 
대이작도 안에는 은행이나 현금인출기가 없기 때문에 경비를 넉넉히 챙겨서 들어가야 한다. 대중교통이 없으나 미리 숙소를 잡으면 선착장까지 픽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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