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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 유적 ⑨] 서울 속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슬람 중앙성원
[도심 속 숨은 문화 유적 ⑨] 서울 속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슬람 중앙성원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3.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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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지은 지 40년도 안 된 건물이 ‘문화유산’이라니,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우리와는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모스크라니. 하지만 서울 이태원에 자리 잡은 이슬람 중앙성원에는 지금도 많은 한국인이 해외여행이라도 하듯 찾아와  ‘남의 문화유산’을 구경하고 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의 출구를 나서는 순간, 어딘가 국적 불명의 낯선 도시에 떨어진 느낌이다. 다양한 피부색과 옷차림의 사람들, 동서양을 망라하는 레스토랑과 숍,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여러 종류의 외국어. 이곳에 무슨 숨겨진 문화유산이 있을까, 하는 의심은 잠시 접어놓으시고 이태원 언덕길을 조금만 올라가보시라. 낯설기만 한 아랍어 간판의 가게를 몇 개 지나면 대한민국 최초의 모스크, 이슬람 중앙성원이 나온다. 


이게 무슨 문화유산이냐고? 물론 아직 ‘우리’보다는 ‘남’의 문화유산에 더 가깝다. 서울 속에 숨어 있는 남의 문화유산. 하지만 이곳은 지금도 140여 나라, 13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의 뿌리를 볼 수 있는 장소다. 더구나  21세기 대한민국은 우리와 남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사실 애초부터 그 경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우리’란 끊임없이 남과의 교류와 융합 속에서 형성되어왔기 때문이다. 신라의 처용이나 고려가요 ‘쌍화점’ 속 회회아비를 생각하면, ‘5000년 역사의 단일민족’이란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공동체일 뿐이다. 남의 문화유산이란 곧 우리의 문화유산에 다름 아니다.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이국적 풍경으로 우뚝 서 있는 이슬람 중앙성원.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 이라는 거짓말
이슬람 중앙성원이 서울 이태원에 문을 연 것은 1976년. 한국 정부가 토지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이 건축비를 지원해 세워졌다. 열사의 땅에서 피땀으로 벌어들인 오일 달러에 그곳의 종교까지 섞여 들어온 셈이다. 그렇다고 이때 우리가 이슬람과 처음 접촉한 것은 아니다. 통일신라의 수도이자 동아시아의 국제도시였던 경주나 고려의 국제 무역항이었던 벽란도에는 이슬람 상인들이 활보했다. 지금도 신라 왕릉이나 고려가요를 보면 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후로 오랜 시간 우리에게는 잊힌 이웃이었다가,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다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서울의 중앙성원을 비롯해 부산, 광주 등 전국적으로 모두 10개의 성원이 있다. 

본격적으로 이슬람 중앙성원을 둘러보기 전에 이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오해부터 풀어보자.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격언(?)은 이슬람교를 포교하는 과정에서 거부하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다는 의미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이다.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며 이슬람의 호전성과 최근의 테러리즘을 설명하는 말로 인용되고 있지만 기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이교도를 탄압하지 않았다. 다만 세금을 조금 더 거뒀을 뿐이다.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느 이슬람 왕조는 세금이 줄어든다며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금지할 정도였다. 

이슬람이 사막에서 생겨난 종교이고, 사막의 유목민들이 자주 전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쟁보다 훨씬 더 평화를 사랑했다. 척박한 사막의 환경에선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막의 유목민들은 손님 대접이 후하기로 이름이 높으며, 무슬림들은 ‘앗살라무 알라이쿰(신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하기를)’이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물론 오사마 빈 라덴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벌이고 있지만, 그 숫자는 전 세계 무슬림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치다.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문양이 빼곡한 입구.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손을 잡고 모스크를 찾는 연인들
아시다시피 모스크는 성당이나 교회와 같은 예배 공간이다. 이곳에서 무슬림들은 하루 5번 기도 시간에 맞춰 예배를 드린다. 이 시간만 피하면 누구나 모스크를 자유롭게 방문해 둘러볼 수 있다. 다만 다른 종교 시설과 마찬가지로 경건한 마음과 태도를 갖는 것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반바지나 짧은 치마를 입은 사람은 입구의 부속 건물에서 긴 치마를 빌려 입어야 한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중앙성원은 다른 나라의 모스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슬람 특유의 둥근 돔 지붕 양옆으로 뾰족한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이 첨탑의 이름은 미나렛. 옛날 스피커가 없던 시절에는 사람이 이곳에 올라가 큰 소리로 예배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본당 입구에는 멋진 아랍 글씨가 쓰여 있다. 마치 한자의 서예나 중세의 영문 타이포처럼 한껏 멋을 부린 글씨의 내용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라는 뜻이란다. 이슬람 신앙의 근본을 이루는 ‘다섯 기둥’중 첫 번째인 신앙 고백 내용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사방이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가득하다. 그중 특별히 화려한 부분이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벽 장식(미흐라브)이다. 전 세계 무슬림들은 믿음의 중심인 메카 방향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어느 모스크에나 미흐라브가 있다.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이슬람 서점에 빽빽이 꽂혀 있는 코란.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 2013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모스크의 아라베스크 문양은 이슬람이 우상 숭배를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의 모양을 그리거나 새기는 것도 우상 숭배로 간주했기 때문에 기독교의 상성이나 상화와 달리 아라베스크 문양이 발달한 것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얼마 전 이슬람 중앙성원을 찾았을 때는 무슬림 몇이 누워서 쉬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스크는 예배당이자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다만 무슬림이 아닌 방문자가 서울에 있는 이슬람 중앙성원의 실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홈페이지에서 미리 방문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다시 바깥으로 나오니 마치 함께 해외여행이라도 온 듯 기념사진을 찍는 연인들이 보인다. 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서울 속 ‘남의 문화유산’을 열심히 관람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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