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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Special 숲 마을 기행] 아름다운 숲 마을 포항 덕동마을 사람이 만들고 사람과 함께 산 ‘사람의 숲 ’
[Special 숲 마을 기행] 아름다운 숲 마을 포항 덕동마을 사람이 만들고 사람과 함께 산 ‘사람의 숲 ’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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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수여한 포항 덕동마을 전경.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포항] 포항시 기북면 오덕1리 덕동마을. 생소한 마을 이름 뒤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이라는 타이틀이 늘 함께 따라붙곤 한다.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숲이기에, 얼마나 울창한 숲이기에’ 하는 의구심으로 떠난 마을 기행이었다. 

행정구역상으론 포항에 들어섰지만 바다는 산 너머에서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출 생각조차 않는다. 덕동마을은 ‘ㅅ’자 모양으로 뻗어 내려오는 산자락 깊은 곳에 있어 바다와는 거리가 멀다. 포항시이지만 그 분위기는 이웃 고장인 청송이나 영천 같은 내륙에 더 가깝다. 

921번 지방도를 달리다 마을 이정표를 보고 다리를 하나 건너니 훌쩍 키가 큰 소나무들이 손님을 맞는다. 송계(松契)숲이다. 마을의 대문과 같은 이 숲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당산 역할을 한다. 숲 앞으로 흐르는 용계천의 물소리가 숲의 풍광과 잘 어우러진다. 여기에서 작은 갈림길이 시작되는데, 왼쪽으로는 폐교된 후 청소년수련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덕동초등학교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마을 안으로 갈 수 있다. 

차를 세워두고 오른쪽 길로 들어서니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느 시골마을처럼 마당에선 ‘난닝구’ 들이 만세를 부르며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줄을 타고 있다. 더운 날씨 탓에 주인 없는 집을 지켜야 할 개들은 혀를 빼물고는 낮잠에 빠져 있다. 지나가도 아무 말하지 않을 테니 귀찮게만 굴지 말라는 듯 시큰둥한 표정들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덕동마을 입구. 사진 / 손수원 기자

조금 길을 오르니 돌다리가 놓인 용계정이 보인다. 용계정은 숙종 14년인 1687년에 세워진 정자다. 마을 한편에 이런 정자가 있는 것도 평범하지 않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정자가 평범한 하천인 용계천과 만나며 빚어내는 절경이다. 용계정에 서서 맞은편을 바라보면 푸른 이끼가 덮인 바위 절벽인 ‘연어대’가 병풍처럼 둘러 처져 있다. 규모는 작지만 절벽과 소나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풍경이다.

연어대가 있는 바로 그곳이 덕동마을의 두 번째 숲인 정계(亭契) 숲이다. 정계 숲은 마을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 외지인들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정계 숲은 마을 안에서보다 오히려 바깥쪽에서 더 잘 보인다. 마을을 감싸듯이 담장 역할을 하고 있는 숲이 바로 정계 숲이다. 

숲을 앞에 두고 개천을 아래에 두고 주민들과 함께 여흥을 즐기니 당시 양반이라면 꼭 정자를 세워 정취를 즐기고 싶었을 장소이다. 물길 쪽을 제외한 세 방향에 정자를 들락날락거리는 문을 낸 것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들락날락할 수 있게 하려는 뜻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본다. 

“동네 참 좋았제. 옛날에는 여 냇물가에서 멱도 감고 빨래도 하고 지냈지. 숲도 지금보다 훨씬 안 컸는교. 지금은 뭔 일인지 물도 적어지고 탁해지고 해서 뭐 볼 기 있나. 바깥으로 소문만 많이 났지 볼 거는 벨로 없는 기라.”

사진 / 손수원 기자
주민들이 물을 길어 먹던 회나무 우물터. 사진 / 손수원 기자

19살에 이 마을로 시집을 와 벌써 70년째 살고 있다는 이수교 할머니는 먹을 것을 잔뜩 싸들고 노인정으로 가는 길이다. 이 마을엔 30여 가구가 살고 있지만 환갑을 넘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진성 이씨인 이수교 할머니도 여강 이씨인 할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들어왔다.  

“하필이믄 여름에 왔능교. 저짝 우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서 가을에 오믄 더 멋지다 안 하는교. 하긴 도시 사람들이야 나무 삐쩍 마르는 겨울에 와서도 좋다고 그 카더만서두….”

용계정에서만 놀지 말고 솔숲도 한번 가보라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용계정 옆문으로 나온다. 땅에 한가득 그늘을 드리운 아름드리나무를 지나니 섬솔밭(島松)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작은 연못을 맞대고 족히 백 년은 넘었을법한 소나무들이 한데 모여 있다. 

물가엔 노란 창포꽃이 한창이다. 연못을 관찰하도록 만들어놓은 나무 데크는 인위적이지만 그다지 경관을 망치지는 않는다. 숲의 오른쪽으로는 합류대(合流臺)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가 있고 용계천이 제법 큰 계곡을 이루고 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멱 감고 놀던 곳’이 바로 이곳이지 싶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숲과 어우러진 고택. 사진 / 손수원 기자

섬 솔밭은 옛날 시골마을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숲이었다. 하지만 논밭을 반듯하게 정리하면서 이러한 솔밭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덕동마을의 섬 솔밭이 아직까지 이렇게 온건히 남아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덕동마을의 섬 솔밭은 240여 년 전, 마을 뒤편 자금산 중턱에 여강 이씨 문중 어른의 묘터를 만들면서 용계천의 물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된 수구막이 숲이다. 말하자면 자연적으로 생긴 숲이 아닌 주민들이 하나하나 나무를 심어 조성한 인공 숲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가 있기에 경지정리가 한창일 때도 숲이 남을 수 있었다. 

덕동마을에는 ‘소나무계’라는 특별한 계가 있다. 이 계는 350여 년간 덕동마을에 터를 잡고 있는 여강 이씨 문중에서 소나무 몫으로 땅을 내어줘 마을 사람들이 공동 경작하여 얻어진 소득으로 숲을 관리하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덕동마을에선 숲이 곧 사람과 같았던 것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용계정과 고목. 사진 / 손수원 기자

주민들은 일 년 농사를 마치곤 이 솔숲에 모여 마을 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마을 어른의 환갑잔치에도, 혼사에도 빠지지 않고 사람들이 모이는 마을 광장이었을 것이다. 마을 곳곳에 서 있는 수백 년이 넘은 은행나무며 향나무, 배롱나무들도 돌담과 한옥과 어우러지는 주민이었으리라. 

이렇듯 사람과 숲이 함께 사는데 그 모습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섬 솔밭 하나만 두고 보자면 여느 숲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과 함께 자라온 숲이라는 걸 깨닫고 나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은 여느 숲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 된다. 그러니 수만 그루의 나무를 보려거든 산을 찾고, 진정한 숲의 가치를 보려거든 덕동마을을 찾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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