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화성] 알다시피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낚시를 즐기려면 배를 빌려 먼 바다로 나가거나 물때를 맞춰 낚싯대를 드리워야 한다. 하지만 이제 제부항에서는 그런 걱정을 덜어도 될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피싱피어’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제부도로 들어가는 길, 서해안은 물이 빠진 채 탐스런 갯벌을 드러내놓고 있다. 평소라면 낚싯대를 드리우기 위해 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포인트를 찾느라 분주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제는 물때에 관계없이 언제든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다.
올 2월 피싱피어(Fishing Pier)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제부항에 들어선 시설은 쉽게 말하면 바다 쪽으로 난 구름다리다. 썰물에 물이 빠지는 지점보다 더 멀리까지 다리를 놓아 일 년 365일 내내 물이 들어차 있는 곳에서 낚시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부항에 처음 선보인 시설이지만 미국과 뉴질랜드 등 낚시가 대중화되어 있는 해외에서는 이미 가족휴양시설로 주목을 받고 있다.
피싱피어로 가려면 제부도의 조개구잇집이며 횟집 등이 즐비한 길을 지나 등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무료 주차장이 넓게 마련되어 있어 마음이 가볍다. 으레 시설이 들어서면 부가적으로 요금을 징수하기 마련인데, 제부항의 피싱피어는 주차뿐만 아니라 시설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도 일체의 요금이 없다. 그런 점에서 우선은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바다 쪽을 향해 서 있는 빨간 등대를 바라보며 조금 걸으면 드디어 국내 최초의 피싱피어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시설의 이름이 피싱피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려운 이름 대신 ‘제부항 바다 낚시터’란 부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낚시터라고 해서 꼭 낚시꾼들만 들어가란 법도 없다. 등대로 가는 방파제와 자연스럽게 이어진 다리는 낚시를 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제부도를 찾은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 있다.
제부항 피싱피어는 총길이가 77m 정도로 눈으로 보기엔 그리 길어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다리가 일직선이 아니라 ‘ㄱ’자 형태를 하고 있어 더 그렇다. 다리는 철제 기둥을 제외하면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 산책로를 연상케 한다.
다리가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서인지 다리로 들어서자 바람의 세기가 한층 강해진다. 이런 바람과 파도라면 다리가 흔들릴 법도 하지만 철 기둥을 박아 튼튼하게 지은 다리는 일체의 미동도 없이 안정적이다.
그래도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은 어쩔 수 없어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썰물인데도 바닷물이 일렁이고 있다. 멀리로 눈을 돌리니 작은 통통배들과 어우러져 요트 한 대가 유유히 바람을 타며 물길을 가르고 있다. 등대 밑의 작은 부두에선 막 따온 미역을 옮기는 어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다리의 끝엔 앉아서 쉴 수 있는 파고라가 꾸며져 있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잠시 의자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쉽게도 바람이 많은 날이라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없다. 혹시나 기다리면 오지 않을까 싶어 의자에 자리잡고 바람을 미끼 삼아 시간을 낚는다. 그렇게 20여 분 동안 시간을 낚다보니 낚싯대를 짊어진 여행객이 들어선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카메라를 들고 일어섰다.
인천에서 왔다는 김명호 씨는 제부항에 피싱피어가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 ‘물’이 어떤지 한번 와봤단다. 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거칠어 물고기를 낚는 것은 기대하지 않고 그냥 낚싯대나 드리워볼 심산이다. 능숙하게 낚싯줄을 풀어 바다에 던진 김씨는 제부 앞바다가 조황이 좋은 포인트 중 하나라는 귀띔을 해준다.
“여기야 고기 잘 낚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요. 우럭이나 농어, 광어도 잡히고요. 오늘은 날이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물 빠지는 것 걱정 없이 낚시를 할 수 있으니 자주 와야겠네요.”
낚싯대엔 10여 분째 입질 한 번 오지 않고 있지만 김씨는 아랑곳없이 낚싯대 끝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만만치 않아 이내 주섬주섬 낚싯대를 챙겨 든다. “다음 주에 다시 와야겠네요”라며 멋쩍은 미소를 짓던 김씨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 구경거리가 생길 거라며 해질 때까지 기다려보란다.
고기도 낚이지 않는 이곳에서 무슨 볼거리가 더 남았단 말인지 몰라 잠시 멍하니 있으니 이번엔 낚싯대 대신 카메라를 짊어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선다.
“이곳 일몰이 장관 중의 장관이지요.”
그렇다. 제부항에서 바라보는 서해 일몰이 하이라이트로 남아 있었다. 바다 저편,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 위로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섬인지 육지인지 모를 기다란 땅 옆으로 붉은 태양이 저문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세운 사람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제부항엔 새로운 해넘이 명소가 탄생한 셈이다.
최근엔 이웃 궁평항에 제부항의 3배 규모의 피싱피어가 완공되어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과 서해 일몰의 절경을 낚으려는 사진가들의 즐거운 자리싸움이 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