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태안] 우리 선조들은 맨손으로 고기를 잡았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둑에 가두는 ‘독살’을 생각해낸 덕분이다. 그런데 친환경 고기잡이 ‘독살’ 체험이 요즘 인기다. 특히 태안의 별주부마을은 독살의 수와 복원 상태 면에서 체험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
쉽게 말해 독살은 해안에 돌로 둑을 쌓아 물고기를 잡는 원시어업이다. 밀물일 때 조류를 따라 물고기가 둑 안에 들어왔다가 물이 빠지면 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히는데, 이때 둑 안에 들어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방식이다. ‘석방렴’이라고도 불리며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에 대나무를 엮어 물고기를 가두는 ‘죽방렴’과 함께 가장 원시적인 고기잡이로 꼽힌다.
“내가 11살 때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디, 그 전까지도 한참 독살 어업을 했어. 듣기로는 증조할아버지 젊었을 때만 해도 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족대도 변변히 없었으니께. 독살 안에서 작살로 내리치지 않으면 긴 노끈에 낚시바늘을 달아서 물고기를 잡았던겨. 지금이랑 비교가 안 될 만큼 둑 안에 물고기가 징미나게(혼자 다 가져가지 못할 만큼 독살에 물고기가 많아서 징을 쳐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정도) 들어찼지. 조기만 해도 못다 먹어서 놀래미나 광어 같은 것은 놓아줬을 정도였으니께.”
6대째 태안의 별주부마을을 지켜온 김용태 씨는 성황을 이뤘던 독살에의 추억을 곱씹는다. 한때 물 반 고기 반이었던 독살은 그러나 연근해에서 별의별 그물로 물고기를 죄다 잡아들이면서 그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자연히 독살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어업으로 그 기능도 희미해졌는데, 최근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해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됐다. 일본에서만 하더라도 국가문화재로 보호할 만큼 중요한 해양문화로 여겨지는 독살을 다시 복원해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서해안, 그것도 충남에 유독 독살이 집중되었을까. 한때 충남에는 그 수가 무려 1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독살이 많았는데, 이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낮은 수심의 해안이 넓게 펼쳐져 독살 어업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산란장 역할을 하는 갯벌이 풍부한 것도 한몫했다. 그중에서도 태안 일대는 온전하게 보존된 ‘진짜 독살’이 남아 있는 곳이다.
사실 해안의 돌둑을 일컫는 말은 ‘돌살’이 그 명칭인데 태안의 것만 ‘독살’이라 부르고, ‘돌살’보다는 ‘독살’이 더 친숙한 것을 보면 그 명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태안의 별주부마을은 최근 2~3년간 7개의 독살을 복원했고, ‘원형을 제대로 재현했는지’, ‘체험하기 편리한 조건을 갖췄는지’ 하는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 이제 독살 체험을 하러 들어갑니다. 바닥에 조개나 굴 껍질이 많아서 다들 신발을 꼭 신고요. 여기 있는 족대랑 다람치(짚으로 엮은 망태기) 하나씩 가져가시면 됩니다.”
김장열 사무장이 체험객을 이끌고 별주부 권역 해안으로 향했다. 물이 빠진 해안에는 탐스러운 검은빛의 돌둑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뻗어 있다. 독살은 해안과 바다 사이에 신비로운 울타리를 그려놓았다.
체험객들이 첨벙첨벙 발을 담그며 독살 안으로 입수한 시간은 오전 11시. 오늘의 독살 체험은 물이 최대한으로 빠지는 오후 1시까지 가능하다. 독살이란 게 밀물일 때 들어온 고기를 썰물일 때 건져 올리는 작업이라, 하루에 두 번 그것도 한정된 시간에만 할 수 있다. 따라서 물때를 맞추는 것은 필수다. 지금은 적당히 물이 빠져서 어른의 허벅지까지 올 정도인데, 점차 시작이 지날수록 해안은 바닥을 보일 것이고 물고기는 꼼짝없이 제 몸을 드러낼 게다.
하지만 체험객들이 원하는 것은 힘없이 바닥에 몸을 누인 물고기를 줍는 것은 아닐 터. 팔딱이는 물고기를 잡는 맛을 보고 싶은지라 부지런히 족대로 물고기를 몰아간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체험의 유형도 참 가지가지다. 예민하게 물고기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때를 기다리는 ‘심사숙고형’, 이쪽 둑에서 저쪽 둑까지 족대로 마구 쓸어버리는 ‘막무가내형’, 물고기잡이는 일찌감치 접고 “내가 물고기네, 네가 물고기네” 하며 마냥 물속에서 노니는 ‘자포자기형’까지 모두 둑 안에서 즐거운 모습이다.
방법은 차치하더라도 운도 따라야 하는지라 어떤 이는 손만 넣어도 팔뚝만한 놀래미를 척척 건져 올리는데, 어떤 이는 내내 열심인데도 걸려드는 것은 자잘한 멸치뿐이다. 그래도 멸치를 그대로 입에 넣고는 “달다, 달아”를 연발하는 것을 보면 물고기의 크기와 재미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해안에서 신나게 체험하는 이들과는 달리, 둑 위에 홀로 남겨져 머리칼을 흩날리는 한 아이가 있다. 혼자 있는 게 안쓰러워 다가가 물었더니 “아빠는 저기에서 물고기 잡고 있어요” 하며 둑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물이 덜 빠져 위험하기도 했을 테지만, 아버지는 아이도 잊을 만큼 물고기잡이에 한참 신이 난 게 분명했다.
“월척이다!” “잡았다!” 연이은 함성이 들린 것은 물이 조금 더 빠진 12시경. 물이 빠질수록 아무래도 고기를 잡을 확률은 높아진다. 오늘 최고의 성과를 거둔 김정웅, 윤나리 부부가 무려 일곱 마리의 월척이 담긴 다람치를 기자 앞에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통통하고 실한 놈으로 참 잘 잡았다. 1시가 넘으니 해안은 훤히 바닥을 드러내고, 모두가 짐을 추스른다. 물고기가 작건 크건 많건 적건, 둑 안에 모인 고기들은 모두 제 주인을 찾은 셈이다.
독살은 둑 밖으로 나가는 고기는 놓아주고 둑 안에 들어온 고기만을 건져 올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원시어업법이다. 절대 조급하게 안달을 내거나 쫓아가 잡지 않고, 물살에 흘러 들어온 고기만을 갖고 그도 많으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나눴다. 이 놀랍고도 현명한 원시어업을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는 의미가 남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