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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겨울 바다 이야기] 바다에 해가 물드는 강화 석모도 일주도로
[겨울 바다 이야기] 바다에 해가 물드는 강화 석모도 일주도로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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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석모도 바다 전경.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석모도] 섬이라 하기엔 너무나 가깝고, 그렇다고 육지라 하기엔 배가 없으면 닿지 못하는 섬, 석모도. 그 섬에 닿으면 전혀 복잡하지 않은 길에 오를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막힘 없는 강처럼 이어진 일주도로를 달리며 새해의 겨울 서정을 마음에 담아보았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까지 불과 10분 남짓 운행하는 배에 오르니 사람보다 갈매기가 먼저 손님을 알아본다. 아니, 사람보다는 ‘새우깡’을 먼저 알아보는 것일 테지만 이렇게라도 반겨주니 겨울 바다로부터 초대장이라도 받은 양 고맙기까지 하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 석포리 선착장까지는 불과 1.5km의 거리. 배를 탄 시간은 불과 10분 남짓이지만 마음은 이미 머나먼 외딴섬에 정박한 나룻배처럼 여유로워진다. 석포리 선착장을 나오자 온몸을 꽁꽁 싸맨 아낙들이 외지인들을 상대로 인삼막걸리며 새우튀김을 팔고 있다. 하지만 섬으로 들어오는 이보다 장사꾼들이 더 많은 모양새이다 보니 “삼촌, 이리 와봐, 많이 줄게” 하는 소리에도 흥이 나지 않는다. 선착장 앞엔 보문사 행 마을버스가 하릴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드문드문 버스에 오르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조차 1시간을 꽉 채워야 출발하는 시골버스다. 하지만 누구 하나 기사를 재촉하는 이가 없다. 택시도 없는 이 섬에 승용차 없이 들어오면 나라님이라도 느긋해질 수밖에 없다. 

황량한 풍경만 남겨진 옛 삼량염전과 소금창고. 사진 / 손수원 기자
황량한 풍경만 남겨진 옛 삼량염전과 소금창고. 사진 / 손수원 기자

선착장에서 나와 곧장 왼쪽으로 내달리면 일주도로가 시작된다. 석모도는 뛰어가는 토끼의 모습을 꼭 닮았다. 석포리 선착장은 토끼의 꼬리 쪽에 붙어 있는데, 19km남짓 되는 일주도로는 토끼의 몸통을 한 바퀴 도는 모양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려니 앞에서 뜬금없는 자전거경주대회가 펼쳐지고 있다. 이곳의 일주도로는 찻길이자 한적한 자전거길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MT 왔는데 자전거 일주 1등 하면 저녁에 소주 한 박스 준다기에….”  
아무리 그래도 오르막길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오르는 모습이 참 열정적이다. 누군가의 저 땀방울이 오늘 저녁엔 소주 한 박스로 바뀌어 있으리라. 

처음부터 바다를 끼고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오른쪽으로 해명산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내달린다. 바다보다는 광활한 평야가, 갯바위보다는 황금빛 갈대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보문사 눈썹바위 아래 전망대. 사진 / 손수원 기자
보문사 눈썹바위 아래 전망대. 사진 / 손수원 기자

석모도엔 유난히 평야와 갈대가 많다. 이는 석모도가 원래 세 개의 섬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간척사업을 통해 세 개의 작은 섬을 하나의 섬으로 묶었다. 그래서 석모도의 행정 명칭도 ‘삼산면(三山面)’이다. 토끼의 머리 부위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상주산이, 몸통 부위에는 상봉산과 해명산이 솟아 있다. 

길을 따라 달리다 민머루해수욕장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바다도 바다지만 해변으로 가는 길목에서 석모도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희미하게 그 모습을 살펴볼 수 있지만 예전엔 반듯한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었을 넓은 땅은 한때 서해안에서 가장 품질 좋은 천일염을 생산했던 삼량염전이다. 

현재는 염전이 폐쇄되어 붉은 칠면초와 갈대가 땅을 뒤덮고 있어 ‘정말 염전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의문은 해수욕장 입구의 다 쓰러져가는 소금창고를 보면 금방 풀린다. 염전을 폐쇄한 이유는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란다. 내년 중에는 문을 열 예정이라는데, 그렇게 골프장이 세워지고 2013년경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까지 만들어지면 지금의 석모도의 한가로운 풍경을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강화도에 이어 석모도까지 육지로 편입되어버리는 것이 썩 내키지만은 않는다. 

보문사 입구엔 작은 장이 선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보문사 입구엔 작은 장이 선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염전을 지나면 석모도 유일의 해수욕장인 민머루 해변에 이른다. 운 좋게도 해변에 이르니 물이 빠진 덕에 갯벌이 다 드러났다. 좌우로 펼쳐진 해안선이 1km, 물이 빠져 드러난 갯벌의 폭이 또 1km다. 광활한 갯벌을 한눈에 가득 채워도 다 차지 않으니 총천연색의 풍경이 순식간에 흑백의 풍경으로 바뀌어버린다.

저 멀리 바다 위를 떠다니는 통통배는 마치 갯벌 위를 가로지르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수평선에 알알이 박힌 주문도, 아차도, 볼음도 등의 섬 또한 갯벌 위로 고개를 쏙 내민 모습이다. 이런 풍경 덕분에 민머루해변의 일몰은 서해안 3대 낙조로 꼽히기도 한다. 

민머루해변에서 나와 길을 달리면 이윽고 왼쪽으로 바다가 나란히 달린다. 석모도 일주도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며, 어디서나 일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길을 따라 달리면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손꼽히는 보문사 입구에 이르는데,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한 경내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경관도 일품이지만, 절 위쪽의 눈썹바위에서 보는 낙조가 더욱 절경이다.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옛 이발관엔 의자가 달랑 하나뿐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옛 이발관엔 의자가 달랑 하나뿐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보문사 앞에는 작은 시장이 펼쳐져 있다. 이곳 아낙들에게 좌판을 차리는 일은 숨 쉬는 것과 같아서, 관광객이 많든 적든 매일 이렇게 나와 산나물이며 과일 등을 팔고 있다. 콩고물 듬뿍 묻힌 호박엿을 하나 사서 쪽쪽 빨아 먹으며 눈썹바위까지 올라간다. 가파른 계단을 20여 분쯤 오르자 입안에선 호박엿 때문인지 뭔지, 단내가 폴폴 난다. 

눈썹바위 밑에 이르러 아래를 바라보니 광활한 바다에 섬이 커다란 점처럼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이대로 저녁이 되어 일몰이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눈썹바위에선 마애석불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는 불자와 바다를 구경하는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저녁 즈음 찾았더라면 장엄한 일몰을 볼 수 있었을 것을 아쉬워하며 보문사를 내려온다. 

석모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인 민머루해변에서 조개를 캐는 여행객들. 사진 / 손수원 기자
석모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인 민머루해변에서 조개를 캐는 여행객들. 사진 / 손수원 기자

보문사에서 원점인 석포리 선착장까지는 금방이다. 일주도로가 토끼의 귀까지는 올라가지 않는 탓이다. 여기서부터는 일주도로를 잠시 벗어나 길이 나 있는 곳으로 들락날락하며 ‘탈선’을 즐겨보자. 어디로 들어가든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나오면 일주도로와 만나기에 마음 놓고 구석구석 숨겨진 경치를 찾아다니면 그만이다.

하리로 가면 영화 <시월애>를 촬영했던 하리 저수지를 만날 수 있고, 석모리를 지날 때면 추억 속에 가둬두었던 시골 이발소며 작은 구멍가게가 그림처럼 불쑥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석모도의 길 위에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무심한 듯 차창 밖으로 흘리는 풍경 하나하나에 서해와 석모도가 보낸 초대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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