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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겨울 바다 이야기] 강릉 안목 · 사천 커피거리
[겨울 바다 이야기] 강릉 안목 · 사천 커피거리
  • 최혜진 기자
  • 승인 2009.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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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천 커피.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 = 강릉] 안목해변에는 동전 몇 개로 ‘낭만 타임’을 즐길 수 있는 커피 자판기가 즐비하고, 사천·영진해변에는 바다가 좋아 눌러앉은 ‘커피 고수’들이 로스팅 커피전문점을 속속 열었다. 이렇게 강릉의 해변과 거리는 커피 향으로 채워지고 있다.

동전 몇 개로 즐기는 ‘낭만 타임’ 
경포해수욕장에서 정동진 방향으로 10여 분 정도 달리면 안목해변이다. 안목은 항구와 해변의 정취를 둘 다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방파제와 붉은 등대, 그 옆으로 500m에 이르는 황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모래사장 위로 맥주 거품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파도가 쉬지 않고 밀려왔다 쓸려 나간다. 

자판기가 즐비한 안목항 커피거리. 사진 / 최혜진 기자

듣던 대로 해변과 나란히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서 자판기가 끊어질 듯 길게 늘어서 있다. 동네 슈퍼 옆에,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자판기 커피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커피 한 스푼, 설탕 두 스푼, 프림 두 스푼이 빚어낸 이른바 ‘다방 커피’의 황금비율. 누구라도 동전 몇 개만 있으면 이 부드러운 갈색 음료로 낭만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누구의 입맛이라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지극히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맛 또한 자판기 커피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자판기들이 모두 똑같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닐 터. 유독 커피를 ‘맛있게 타주는’ 자판기가 있었고, 그렇게 한번 꽂힌 자판기만 유독 고집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안목항은 자판기 단골손님이 많은 ‘맛있는 커피’로 유명하다.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뜨끈한 커피를 ‘별다방 ’
‘콩다방’ 커피와 비교하지 마라. 사진 / 최혜진 기자

일단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커피 한 잔을 뽑아서 해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음미해본 커피의 맛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맛이다. 하지만 가슴이 시릴 만큼 푸른 겨울 바다를 앞에 두고 마시는 커피를 그저 혀끝의 미각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온몸이 움츠러드는 날씨에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가는 뜨끈뜨끈한 커피는 움츠러든 어깨를 스르르 풀어주고, 가슴 속까지 든든하게 채워준다. 

주위를 둘러보니 홀로 바닷가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나가던 길에 차를 세우고 잠깐 여유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자판기 커피만큼 달콤한 휴식도 드물 것이다.  

아기자기한 외관이 발길을 끄는 ‘카모메’. 카페 내부에서 보는 바다 풍경도 아름답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안목항에 자판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경포해수욕장의 자판기가 잘된다는 소문에 안목에도 자판기를 설치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그런데 시내와 가장 가까운 해변이라 접근성이 좋고, 바다를 보며 커피를 즐기려는 젊은 층의 욕구와 맞아떨어져 이른바 ‘대박’이 터진 것. 지금은 자판기가 30~40개 정도이지만, 5~6년 전에는 무려 80대가 넘을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커피 지도’ 따라 성지 순례
자판기 커피에서 시작된 ‘강릉과 커피의 인연’은 로스팅 커피 전문점이 등장하면서 더욱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이유야 제각각이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커피 명장들이 하나둘 강릉에 둥지를 틀었고, 지금은 직접 원두를 볶는 30여 곳의 로스팅 커피숍을 비롯해 크고 작은 커피 전문점이 무려 100여 곳에 이른다. 얼마 전 안목해변 일대의 커피 전문점을 중심으로 제1회 강릉커피축제를 열기도 했다. 

볶기 전의 생두. 사진 / 최혜진 기자

커피축제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커피 지도’에는 안목항부터 영진해변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커피 전문점들이 꼼꼼하게 표시되어 있다. 축제 이후에 이 ‘커피 지도’가 강릉 커피 여행의 필수 정보가 되었다니, 나 또한 지도를 펴고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커피전문점을 하나하나 짚어갔다. 직접 원두를 로스팅하는 전문점을 중심으로 안목항의 ‘커피커퍼’, 강릉 시내의 ‘언덕위의 바다’, 사천해변의 ‘카모메’, 영진해변의 ‘보헤미안’까지 ‘커피의 성지 순례’ 코스를 짰다. 

이들은 직접 로스팅을 하는 만큼 원두를 볶는 개성도 남다르다. 언덕위의 바다의 이병학 씨는 손으로 직접 로스팅을 하는 ‘수제 로스팅의 대가’이다. 가스레인지 위에 ‘통돌이’ 로스팅 기구를 올려놓고, 손으로 돌려가며 원두를 볶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의 야무진 손끝에서 탄생한 커피는 쓴맛이나 신맛이 거의 없는, 연하고 담백한 맛이다. 원두를 그날그날 300~500g씩 볶아 항상 신선한 커피 향이 살아 있다. 

‘언덕위의 바다’ 이병학 씨는 로스팅 기구를 손으로 돌려 원두를 볶는다. 사진 / 최혜진 기자

국내에서는 드물게 커피 농장을 운영하는 안목항의 ‘커피커퍼’와 해변을 바로 앞에 둔 풍경이 일품인 사천의 ‘카모메’를 지나,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영진해변의 ‘보헤미안’에 닿는다. 카모메가 바닷가를 바로 앞에 두고 있다면, 보헤미안은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 자리해서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커피숍 입구에서부터 그의 커피를 맛보려는 마니아들의 긴 줄이 박이추 씨의 명성을 실감케 한다. 

‘보헤미안’의 박이추 씨는 원두의 양, 볶는 시간 등을 꼼꼼하게 체크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로스팅을 한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박이추 씨는 커피계의 전설로 불리는 ‘1서(徐) 3박(朴)’ 중 한 사람으로 ‘일본식 핸드드립의 고수’로  통한다. 그의 로스팅법은 단 1초, 1g도 어긋나지 않는 정확함에 있다. 로스팅만큼이나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커피를 내리는 일. 그는 항상 ‘머리를 비우고 팔에 힘을 빼고 마음을 다해’ 커피를 내린다. 

이렇게 뽑아낸 보헤미안 믹스 커피는 언덕위의 바다에서 내는 커피에 비하면 다소 진한 편이다. 그런데 그냥 진한 것이 아니라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경지’라는 것이 마니아들의 평이다. 

손으로 내려야 맛있다! ‘카모메’의 핸드드립 커피. 사진 / 최혜진 기자

그에게 “왜 하필 강릉이었냐”고 물었더니, “이곳이 도시를 떠나 커피의 맛에 집중할 수 있는 거처였다”는 답이 돌아온다. 애초부터 ‘강릉과 커피의 필연적인 관계’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무리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동해의 넉넉한 품엔 분명 ‘커피와 나의 거리’를 좁히는 묘한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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