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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맛 따라가는 여행] 대구 막창골목 쫀득쫀득 고소한 돼지 막창, "바로 이 맛 아입니꺼?"
[맛 따라가는 여행] 대구 막창골목 쫀득쫀득 고소한 돼지 막창, "바로 이 맛 아입니꺼?"
  • 최혜진 기자
  • 승인 2010.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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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대구 막창골목.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 = 대구] 누가 경상도 음식을 ‘맵고, 짜고, 맛없다’했는가. 여기 조용히 토박이들의 입맛을 점령하고 외지인들의 발길마저 끌어들이는 ‘대구의 맛’이 있으니, 바로 20년 전부터 대구의 뒷골목을 주름잡기 시작한 ‘막창’이 그것이다. 

복현동 골목은 ‘막창의 고향’
동대구역에서 차로 5분 거리, 경북대 앞 복현동 거리 초입에선 벌써부터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미식가들이라면 쉬이 지나치지 못할 이 매력적인 냄새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돼지 막창’. 이곳 복현동 막창골목은 20년 전부터 ‘대구의 맛’을 조용히 퍼뜨리고 있는 ‘막창의 고향’이다.   

싱글벙글막창 김희봉 사장은 복현동 막창골목의 터줏대감이다. 사진 / 최혜진 기자

큰 도로를 살짝 비켜난 좁은 골목 안은 앞뒤좌우 사방이 죄다 막창집이다. 큰손막창, 종가집막창, 산골막창, 오거리막창, 싱글벙글막창 등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막창전문점들은 저마다 ‘원조’라는 수식어로 손님들을 불러 세운다. 하지만 미리 사전조사를 해둔 덕분에 망설이지 않고 ‘싱글벙글막창’으로 향했다. 대구 토박이들에게 막창의 ‘본좌’를 꼽아 달라 했더니, 하나같이 이곳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 15년쯤 되었지요. 아마 이 골목에서는 제일 오래됐을 겁니다. 당시 여섯 곳이던 막창집이 지금은 스무 곳이 훌쩍 넘을 정도로 커졌어요. 규모로 보나 맛으로 보나 막창으로는 복현동이 대표이지요.” 
싱글벙글막창 김희봉 사장은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와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직 후에 막창전문점을 시작했단다. 당시 복현동엔 세 곳의 막창집이 있었는데 싱글벙글막창을 포함해 세 곳이 더 들어서면서 총 여섯 곳이 되었고, 이때 막창골목의 기틀이 다져졌다고 한다. 그런데 싱글벙글막창이 유독 성황을 이룬 탓에 주변 가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났고, 이후 후발주자들이 차린 막창집이 무려 20여 곳으로 불어났다. 그 사이 대구 막창은 이 지역의 맛을 대표하는 메뉴로 자리 잡았고, 싱글벙글막창은 막창골목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노릇노릇 숯불에 구워지는 돼지 막창. 사진 / 최혜진 기자

그런데 듣자 하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격이 아닌가. 옛날 원조집들을 모두 밀어내고 후발주자들의 침범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맛의 비밀이 무엇일까. 
“돼지막창이 곱창 중에서도 항문에서 가까운 30cm 정도를 말하거든요. 그러니 잡냄새를 어떻게 없애느냐가 관건이지요. 특별한 비법이라기보다는 그저 부지런히 닦아내고 한 번이라도 더 손질을 했습니다.” 

대구 막창은 굽기 전에 손질을 하고 삶아내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요사이 대구에는 막창을 미리 삶지 않고 날것을 바로 구워 먹는 이른바 ‘생막창’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유행처럼 번졌던 생막창들의 인기가 주춤한 것도 돼지 특유의 잡냄새를 어쩌지 못한 탓이다(물론 고유의 비법을 터득해 살아남은 집도 있다). 따라서 막창의 맛은 굽기 전에 잡냄새를 확실히 제거하는 손질이 관건이다. 

막창은 여학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사진 / 최혜진 기자

김 사장은 “굵은 천일염으로 오랫동안 씻어내는 것이 첫째 비법”이라 말한다. 아무리 월계수잎이나 된장을 넣고 삶아도 외부 재료로 막창 자체의 냄새를 제거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깨끗하게 잘 씻어낸 막창을 쫀쫀하게 삶는 것도 중요하다. 덜 삶으면 냄새가 남고, 많이 삶으면 흐물흐물해진다. 가장 쫄깃쫄깃한 맛이 나는 적절한 ‘때’를 찾고 기다리는 것 또한 ‘막창 고수’의 노하우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손님들이 하나 둘 테이블을 잡고 막창을 지글지글 굽기 시작한다. 그 소리와 냄새가 퍼지면서 코와 귀가 동시에 반응을 한다. 숯불에 구워지며 수분이 증발하고 숯 향이 더해져 더욱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 날 터.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사이에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상추쌈 위에 쫄깃한 막창을 올려서 한입에 골인! 사진 / 최혜진 기자

이윽고 숯불에 겉이 바삭하게 구워진 막창. 노릇노릇 기름기가 도는 게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당장이라도 입으로 가져가고 싶은 심정인데, 여기서 잠깐! 잘 구워진 막창은 된장 소스에 흠뻑 샤워를 하는 것이 다음 순서다. 이것이 대구 막창의 독특한 맛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이자, 서울 왕십리 막창과 차별화된 점이기도 하다. 서울 사람들이 즐기는 왕십리 막창은 먼저 고추장 양념을 버무려 연탄불에 굽지만, 대구 막창은 숯불에 노릇하게 구운 다음 된장 소스를 찍어 먹는다. 그러니 이 된장 소스 또한 대구 막창 맛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된장 소스는 흔히 풋고추를 찍어 먹는 일반 된장과는 다르게 약간 질감이 묽다. 송송 썬 양파, 마늘, 쪽파, 고추가 듬뿍 들어가 화끈한 매운맛으로 느끼함을 잡아주고, 여기에 땅콩가루까지 살짝 얹어져 고소함과 씹히는 맛을 더했다. 막창을 된장 소스에 듬뿍 찍어 오물오물 맛을 보니, 숯 향이 고루 밴 쫄깃한 육질과 구수한 소스가 어우러져 입 안에서 착착 잘도 감친다. 한우 곱창과 같은 진한 고소함도 느껴진다. 아무튼 이런저런 수식어를 다 빼고 딱 잘라 말해 소주 생각이 간절하다. 

된장 소스에 푹 찍어야 맛있는 원조 대구 막창. 사진 / 최혜진 기자

막창 2인분을 너끈히 먹어치우는 사이 어느덧 막창 골목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지금은 막창집마다 칸막이가 처져 있지만, 예전엔 가게 앞 노천에서 막창을 구워 먹는 수많은 인파들이 진풍경을 이루었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이 지긋한 손님들에게는 변함없이 인기지만, 대학생이나 젊은 여성들이 이처럼 압도적인 숫자라는 것은 사실 좀 의외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기분 좋게 소주 한잔을 꺾고, 큼지막한 상추쌈에 막창을 얹어 입속에 척척 넣는 모습이 소탈해 보인다. 

“대구 막창 유명한 건 전국에서 다 아는 거 아니라예? 쫀득한기 맛도 있고, 살도 안 찐다 카든데. 대구 사람 중에서 막창 안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기라예.” 
대구 토박이 김지형 씨는 ‘기가 막힌 막창 맛을 보여주겠노라’ 포항 친구들까지 불러들여 오늘 자리를 마련했단다. 실제로 막창은 돼지고기 부위 중에서도 지방이 없는 부위라 다이어트식품으로도 그만이다. 함께 ‘막창 친구’가 된 그녀들도 입 안 가득 상추쌈을 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낡은 풍경을 고수하는 20년 전통의 석촌막창. 사진 / 최혜진 기자

동쪽에도 막창, 서쪽에도 막창  
대구의 북동쪽에 복현동 막창골목이 있다면 남서쪽엔 서부정류장 막창골목이 있다. 밤이 깊어갈 무렵, 복현동 막창골목을 나와 서부정류장으로 향한다.   

서부정류장 막창골목은 지하철 성당못역 출구와 가까운 대아막창에서 이호선막창, 서민막창, 석촌막창으로 이어진다. 복현동과는 다르게 큰 대로변에 일자로 늘어서 있어 눈에 더 쉽게 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석촌막창은 이미 손님들로 북적인다. 

막창 손질이 한창인 김연희 사장. 사진 / 최혜진 기자

“사장님, 여기 3인분 더 주이소!” “여기 소주 한 병도예!” 
“아따, 쫌만 기다리봐라, 지금 간다 안 하나?” 
밤이 깊어갈수록 막창집의 분위기도 무르익는다. 벌써 테이블마다 한두 명씩은 거나하게 취해 목청이 높아졌다. 어느 테이블에라도 슬쩍 끼어 소주잔을 내밀면 흔쾌히 한잔하고 가라 할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이 정도 손님은 일도 아이다. 옛날에는 막창 묵는다꼬 한참을 기다렸다 문만 열믄 물밀듯이 들어왔다 안 하나.”
대구 사투리가 귀여운 김연희 사장은 벌써 20년째 막창집을 운영해왔다니, 대구 막창의 역사를 따져보아도 ‘원조 중의 원조’로 꼽을 만하다. 이 일대가 모두 포장마차였을 무렵부터 막창을 손질하는 기술을 익혀 처음 가게 문을 열었고, 그 이후 막창의 인기는 연일 치솟았다고 한다. 

담백하고 쫄깃한 석촌막창. 사진 / 최혜진 기자

“소주가 1500원 하던 시절인데 우리가 처음으로 소주를 1000원쓱 팔았제. 500원이라도 싼께 소주 묵으러 왔다가 막창 함 묵어보고는 맛있따꼬 소문이 싹 퍼지기 시작한기라.” 
당시 막창이 1인분에 3000원씩 하던 시절이었으니 서민들의 안주로는 더할 나위 없었을 터. 하지만 그 이후 막창집이 우후죽순으로 불어나 서부정류장도 대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막창타운’을 이루게 됐다. 덕분에 손님의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지만 막창집 장사는 예전 같지 않단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에겐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가게보다는 깨끗한 인테리어와 시설을 갖춘 새로운 가게가 눈에 더 쉽게 띌 것이다. 

하지만 석촌막창은 일부러라도 여전히 낡은 풍경을 고수하고 있단다. 그것이 오랜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과 같아서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막창 맛을 잊지 못한 손님들이 오랜만에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찾아오기도 하고, 그 단골들이 타향으로 가서도 입소문을 내어 서울에서도 오고, 부산에서도 온다고 한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막창의 맛 또한 변함없이 유지하고자 노력한다고 한단다.

막창과 함께 ‘대구 아지매’들의 수다 한판이 벌어졌다. 사진 / 최혜진 기자

그렇다면 소문난 석촌막창의 맛은 어떨까? 그 맛이 궁금해 대구 ‘아지매’들의 모임에 슬쩍 끼었더니 큼지막한 상추쌈을 입에 넣어주신다. 석쇠가 아닌 불판에 구워서 복현동 싱글벙글막창에 비하면 약간 밋밋한 것도 같지만, 오히려 그 담백함이 20년 단골들이 주장하는 한결같은 ‘원조의 맛’이란다. 역시나 예민하게 후각을 더듬어보아도 잡냄새는 느낄 수 없다. 또한 막창을 내올 때 떡이나 감자 등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서비스가 푸짐해서, 막창 기름에 구워 먹는 것도 별미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그 고소한 맛이 혀끝에서 감돈다. 아무래도 겨울이 가기 전에 ‘추워야 제 맛’이라는 막창을 먹으러 다시 한 번 대구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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