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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 타고 세계여행]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 터키를 달리다
[기차 타고 세계여행]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 터키를 달리다
  • 최지웅 기자
  • 승인 2010.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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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터키의 국부인 아타튀르크가 이용했던 객차. 사진 / 최지웅 기자

[여행스케치 = 터키] 세계 어느 곳을 간다 한들 터키만큼 한국인을 대접해주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한국에 대한 무한 애정과 관심이 놀라울 따름이다. 덕분에 고향에 온 듯 편안한 마음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를 모두 즐겼다.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야간 침대열차를 탔다. 객차 안은 방으로 나누어져 있고 방 안에는 2층 침대가 놓여 있었다. 배정 받은 방에는 스페인에서 온 청년이 있었다.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둘 다 의문이 생겼던 점이 있었다. 심야에 열차가 국경을 넘는터라 ‘과연 입국심사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스탄불 시르케지역 승강장. 사진 / 최지웅 기자
왕궁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지은 블루모스크. 사진 / 최지웅 기자

열차가 출발하고 밖이 어두워지자 곧 잠이 들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곤히 자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승무원이 출입국 심사를 할 테니 여권을 달라고 한다. 잠시 후 같은 방에 있는 청년도 승무원에 불려 나갔는데, 한참 있다 돌아와서는 비자 비용으로 15유로를 지불했다고 한다. 나는 돈을 내지 않았다고 하니 그가 내심 놀라는 눈치다. 한국과 터키는 무비자 상호협정이 되어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자신만 돈을 낸 것이 영 억울한 모양이다.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밝은 빛에 눈을 떴다. 열차는 이미 이스탄불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윽고 지중해와 비잔틴 양식 성벽을 지나 종착역인 이스탄불 시르케 지역에 도착했다. 시르케 지역은 과거 오리엔탈 특급열차의 종착역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고풍스럽고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다. 역 앞으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이 펼쳐져 있다. 

블루모스크 내부. 사진 / 최지웅 기자

이스탄불은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이 공존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백만 불짜리 박물관이 널려 있다. 왕궁이 있던 자리에는 블루 모스크를 새로 지었고, 훌륭한 경관을 가진 언덕 위에는 화려한 톱카피 궁전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톱카피 궁전을 둘러보는 중에 궁전 바로 옆으로 철길이 지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항구까지 철길을 놓아야 한다는 한 독일 기술자의 요청을 왕이 허락했기 때문이란다. 

톱카피 왕궁 옆을 지나는 철길. 사진 / 최지웅 기자

터키의 ‘유럽’ 대륙에서 ‘아시아’ 대륙으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의 접경 지역에 있는 만큼 그 둘의 문화를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배를 타고 좁은 해협을 지나 아시아 쪽 관문인 이스탄불 하이다르파샤역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다시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로 가는 야간열차를 탔다. 오랫동안 유럽을 여행하다가 아시아로 넘어온 기분이 색달랐다. 

아침 일찍 앙카라역에 도착해서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마침 커다란 전광판에서 ‘터키 철도의 미래’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었다. 열차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터키는 고속철도로 터키 내의 주요 도시는 물론 서쪽의 그루지아를 연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고속철도 차량이 소개되는 중에 우리나라 KTX II와 한빛350(HSR-350x) 차량이 등장해서 놀랐다. 터키는 우리나라의 현대로템과 기술제휴로 열차를 생산할 예정이란다. 

터키의 수도에 자리한 앙카라역. 사진 / 최지웅 기자

다큐멘터리를 본 후에 짐을 숙소에 맡기기 위해 역을 나섰다. 그런데 가는 길에 우리나라의 석탑과 비슷한 조형물이 보였다. 이슬람이나 유럽에서는 이런 형식의 탑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의문을 품고 안쪽으로 가보았다. 탑 아래 한글과 터키어로 “한국전쟁 때 전사한 터키군 병사들을 기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주변에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과 출신 지역도 함께 적혀 있었다.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면서 여권을 보여주었더니, 직원이 총을 쏘는 자세와 축구 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터키와 대한민국은 친구입니다”고 말한다. 터키에서 만나는 이들이 이처럼 하나같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반겨주니 여행이 더욱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이스탄불을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누는 보스포러스 해협. 사진 / 최지웅 기자

오후에는 현재 터키공화국을 만든 국부인 아타튀르크의 영묘로 향했다. 그는 앙카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묘지에 잠들어 있었다. 아타튀르크는 유럽 열강의 침략으로 오스만제국이 약해진 후에 현재의 터키공화국을 세운 사람이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역을 포함한 관공서는 물론 지폐에도 나와 있던 모델의 주인공이라 궁금하던 참이었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인 존경심만큼이나 보안검색은 철저했다. 하지만 역시 한국인인 나에게는 악수만 하고 보내줄 만큼 너그러웠다. 

이곳에서는 그의 업적과 함께 터키의 발전상을 알 수 있었다. 아타튀르크는 처음으로 아랍 문자로 사용하던 양력과 숫자를 로마자 표기로 바꾸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또한 중동의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달리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세속주의를 채택하였다. 덕분에 여성들이 이슬람을 상징하는 히잡을 착용할 의무가 없다. 다만 오랜 기간 이슬람 율법대로 살아온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만이 히잡을 두르고 다닌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KTX와 꼭 닮은 터키의 디젤전동차. 사진 / 최지웅 기자

다시 따뜻한 지중해로 넘어가기 위해 아다나로 가는 야간열차를 탔다. 다음날 아침에 아다나역에서 내려서 열차를 갈아타려고 승강장에서 앉아 있는데,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안 역무원이 갈아탈 열차를 가리키며 “코레(Kore:대한민국)”라고 외친다. 

과연 열차는 현대로템에서 생산한 디젤전동차였다. 차내를 살펴보니 내부는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비슷했지만, 좌석은 KTX와 똑같았다. 마크도 찍혀있고, 곳곳이 한글로 표기돼 있었다.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우리나라 차량을 보니 반가움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내부가 이렇다 보니 열차가 달릴 때에도 흡사 우리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터키군 병사들을 기리는 탑. 사진 / 최지웅

항구도시 메르신에 내려서는 터키를 상징하는 음식인 케밥을 먹으러 갔다. 터키에는 지역마다 케밥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스켄더 케밥이 가장 유명하다. 얇게 썰어서 익힌 고기 위에 토마토소스를 뿌리고 요구르트 소스를 찍어 먹는 음식이다. 

‘형제의 나라’이기 때문일까. 밥도 입맛에 잘 맞는다. 고기는 부드럽고 소스가 매콤하면서도 달달했다. 잘 먹는 내 모습이 복스러웠는지 직원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인’이라는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음료수를 더 내어 주고,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라고 말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한국인을 환영해줄까? 터키 어느 곳을 가도 한국인은 VIP 대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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