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 남해] 겨우내 무채색으로 일관했던 남해도 봄을 맞아 노랑, 분홍, 보라 등 갖가지 색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장평소류지는 이른 봄 유채와 벚꽃, 튤립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색을 뽐내며 ‘봄꽃 집합소’로 변신한다.
봄이 되면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개나리를 보러 갈까, 벚꽃을 보러 갈까, 유채를 보러 갈까.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한다 해도 후회는 없지만 이왕이면 한 번에 다 볼 수는 없을까?
남해군 장평소류지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치 ‘봄꽃 깜짝 파티’라도 벌이는 듯 이른 봄부터 부산스럽다. 유채, 벚꽃, 튤립까지 온갖 봄꽃들이 서로 경쟁하듯 제 몸을 치장해서 때가 되면 ‘짠’하고 형형색색 화려함을 뽐낸다. 그러나 눈부신 빛의 잔치도 4월이 지나면 슬그머니 퇴장을 해버리니 상춘객들의 마음이 바쁘다.
우선 남해에 입성하기 전부터 드넓은 유채꽃밭이 마중을 한다. 사천에서 남해로 넘어가는 창선·삼천포대교 아래에 초양도·늑도에 만발한 노란 유채가 봄꽃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빨간 아치 모양의 다리 아래로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샛노란 유채의 향연. 바닷바람에 유채꽃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이리저리 몸을 흔들면 상춘객의 마음도 바람을 따라 한들거린다.
여기서 그만 유채 향기를 맡으며 도시락이나 까먹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목적지가 있기에 서둘러 소류지로 향한다.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 드디어 남해군 입성. 여기서 남해읍으로 향하는 19번 국도를 따라가다 국제탈공연예술촌 옆의 대형주차장을 만나면 차를 세우고 소류지까지 걸으면 된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다초저수지’로도 불리는 장평소류지는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아랫마을 농경지에 물을 대던 작은 저수지였다. 그러던 것을 남해군이 저수지 주변 5300㎡의 대지에 10만 송이의 튤립을 심고 유채를 파종해 대형 꽃밭을 조성한 것. 그런데 저수지와 어우러진 꽃밭의 풍광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의 단골 출사지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작년까지 무려 24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인기를 톡톡히 누리며 새로운 봄꽃 명소로 등극했다. 과연 카메라를 들고 가족끼리, 연인끼리 온 상춘객들로 저수지 주변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샛노란 병아리를 닮은 유채도 아름답지만, 소류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꽃은 단연 튤립이다. 검붉은 꽃잎에 흰색 줄이 선명한 드리밍 메이드, 튤립의 대표격인 노란색의 골든 아펠톤부터 핑크 다이아, 인젤, 그라나타, 스프링 그린, 린반 덴마크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한 튤립의 모양과 색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이 훌쩍 지나버린다.
여기에 더해 튤립밭에서 고개를 들면 푸른 저수지, 그 너머에는 가녀린 연분홍색의 벚꽃나무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작가들이 선호하는 출사 포인트. 온 세상의 봄기운을 모두 모아놓은‘봄꽃 집합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봄꽃을 한데 모아놓고 맘껏 구경하고 나니 마치 수십 가지 반찬을 올린 남도 한정식을 받은 것처럼 배가 부르다.